Serio

(흠.. 이거 제목이 뭐가 좋을까.)

사회과학
최근 정국은 상당한 혼란에 빠져있다. 특히 근 일년에 걸쳐 시내에서 시위대를 보는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며,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시위를 함은 불만이 있어서이다. 그리고 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것은 경찰이다. 말 그대로 사회가 10년 전으로 돌아가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을 강력히 비난하는 것은 틀리지는 않았으나 문제의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명박이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며 그가 원인으로 생긴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해도 이처럼 온갖 공권력을 단번에 과거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현재 시위대를 진압하는 경찰조직에 대해 생각해보자. 참여정부 시절, 농민시위에서 전용철, 홍득표 두 사람이 죽는 일이 있었다. 인권위에서는 경찰의 과잉진압이 원인이라고 했고, 이러한 조사가 발표되자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 성명을 내며 사과하고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이 사과에 대해서는, 시위대가 일상적으로 휘두르는 폭력 앞에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힘들게 직무를 수행하는 경찰의 사기와 안전을 걱정하는 분들의 불만과 우려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공권력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폭력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이 스스로 이러한 분위기로 몰아갔음에도 경찰에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남용될 경우 국민들에게 미치는 피해는 더욱 심각하기 때문에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기에 특별히 더 무겁게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이러한 노력은 분명 옳은 방향이었을 것이다. 경찰도 인권위의 조사결과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것은 노무현까지의 이야기이다. 이명박 대통령 이후로 경찰은 그야말로 폭주하고 있고 아我와 적敵을 갈라버렸다. 이는 공권력으로서 도저히 용납해서는 안될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도 그러하다. 당연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압박은 이명박에게 당연히 아무런 도움이 안됬고, 그가 바란 바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의 표적수사를 받고 결국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명박 대통령은 강력한 역풍을 받았다. 이미 부족한 도덕성이 그 숨통조차 끊겼다. 그렇다면 누가 원해서 노무현을 수사한 것인가?

지난 참여정부 5년동안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의 지나친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알다시피 검사가 작정하면 사람 하나 잡는건 일도 아니다. 노 대통령은 민주화된 법제에서라면 이처럼 검찰에 권한이 집중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대로 시행했다. 검찰은 그들의 권한을 제한하려는 모든 시도에 반항하였으나 어쨌건 대놓고 정권을 공격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물러나고 정권이 교체되고 나자 검찰은 보복했다. 그것도 스스로도 놀랄만큼 강력하게.

일련의 사태들이 보여주는 바는 명백하다. 이명박 정부가 검경을 포함한 각 조직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검찰 스스로 자기 자신을 추스릴 수 있느냐는 일단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물론 어찌되었건 이명박은 대통령이고 그의 권한은 막강하다고 할 수 있다. 검찰의 행동에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지는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결국 임기제이고 오래갈 수 없다. 이명박은 자신이 물러난 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가 검경에 대한 제한에 나선다면 그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현 정부는 레임덕에 빠져있다. 레임덕은 흔히 임기말에 생기는 권력의 누수라고 알려져 있고 실제로도 대부분 그러했다. 그러나 이례적으로 취임 1년만에 이명박 정부는 레임덕에 빠져버린 것이다. 이것은 이례적일수는 있으나 놀랄 일은 아니다.

반드시 행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국가 체제에서 가장 강력한 두 기관이 그야말로 모든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고 혼란에 빠져있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폭주하는 원인은 여기에 있다. 경찰조직도 불명확한 상부의 의지에 따르고 있는 쪽에 가깝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정치권력이 무너졌는가?

이러한 문제를 다시 조망하기 위해 조금 시대를 거슬러올라가 보자. 과거에는 대통령의 권력이 매우 강력했다. 이를테면 전두환 당시 재계 7위에 올라있던 국제그룹 해체를 상기해보자. 대통령이 작정하면 재벌 하나쯤 날아가는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법계도 감히 거역할 수 없었고 국회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수십년이 흘렀다. 오늘날 대통령들은 독재시기만큼 강력하지 않다. 군인 출신들은 정치에서 물러났고 대통령도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막걸리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아마 현재의 대통령이 어떤 재벌그룹(이를테면 S모라던가..)을 해체한다는건 상당히 생각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시민사회에서 정치권력이 약화되는 것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크게 나쁜 일은 아니다. 시민들은 마땅히 자유로와야 하며 국가가 시민들의 그러한 자유로움을 부당히 제약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처럼 약화된 정치권력의 공백이 제대로 매워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빈 자리에 곳에 들어온 것은 시민들도 아니었고 민중도 아니었다. 재벌권력이 정치권력을 조롱하고 사법권력과 영합하는 이런 상황은 어떻게 보면 독재 대통령보다도 훨씬 질이 나쁘다. 적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해결책은 정치권력이 제자리를 찾는 것이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그 본래 가져야 할 통제력을 다시 지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정치권력이 약화된 이유는 무엇인가?

옛 군부독재시대라면 권력은 총부리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군부시대 대통령은 그렇게 권력을 잡았고 또한 그것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그렇지는 않다. 민주사회에서는 마땅히 인민의 지지를 얻는 자가 권력을 잡을 것이다.

그러나 현 정치세력 중에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는가? 집권당인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행동을 자세히 보자. 그들은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것도 경제 제일주의를 표방하는것도 아니다. 나라를 망치고 싶어하는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은 그저 바라는 것도 없고 목적하는 것도 없을 뿐이다. 정치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고 긴 안목도 없다. 눈앞의 이익에 매달리고 있다. 하나의 정책조차 만들 능력이 없다. 말 그대로 단순한 잉여다.

지난 대선을 다시 떠올려보자. 지금 보아도 이명박 당시 후보가 내놓았던 공약은 참으로 비현실적이고 한편으론 진부하기까지 했었다. 이 얼마나 건설(!)적이고 시대착오적인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당선된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다른 후보들은 이명박 만큼도 못했기 때문이다.

정동영 후보를 포함해서 다른 야당 후보들은 사실상 아무런 그림도 제시하지 않았다. 자신이 뭘 하겠다는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말할 만한 것도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도 생각하지 않았을 테니까)

갑자기 삼수를 선언한 이회창 후보도 그러했고 민노당조차도 스스로의 공약으로 무능함과 멍청함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비현실적이라는 점에선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을 능가하기까지 했다. 인민들은 고를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대안도 없었다.

과거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는 하나의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것은 조국의 근대화였다. 부당한 가난에서 벗어나자는 것이었고, 구미, 일본만큼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박정희가 이 기치를 위해 실제로 얼마만큼 행동하였고 얼마만큼 도움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이 분분하다. 그러나 이 모든 논쟁이 표현하는 바는 아직도 그가 현대 한국에 드리운 만큼의 무게감을 지닌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정희는 국민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을 제시했다.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민주사회로 이행한 후 나타난 정치인들이 옛 독재시대 만큼도 국민들에 미래를 제시치 못한다는 사실은 어떠한 의미에선 기묘하기까지 하다.

오늘날까지도 박정희라는 존재와 그가 내건 슬로건이 유효한 이유는 그것을 대체할 만한 다른 아무런 것도 등장하지 않음이 한 원인이다. 이명박 후보는 이처럼 모든 정치인이 목적을 잃고 해매는 그 중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비젼을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이 어떻게 해야 옳은 선거가 되었을까. 선거를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제도는 제도만으로 유지되는게 아니다. 그 제도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 그리고 제도를 구성하는 수많은 사람과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고 그로부터 이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절차적 정당성이 국민의 뜻에 반하는 무능한 대통령을 방어하는 개념이 되어버린 이유는 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