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o

'사회과학/인터넷'에 해당되는 글 16건

  1. 제 5장 배경
  2. 제 3장 절차
  3. 제 2장 각론
  4. 제 1장 총론
  5. 어째서 갈등을 특정공간에 묶기는 어려운가.
  6. 커뮤니티 운영론 (최종)
  7. 커뮤니티 운영론 (8)
  8. 커뮤니티 운영론 (7)
  9. 커뮤니티 운영론 (6)
  10. 커뮤니티 운영론 (5)

제 5장 배경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제 3장 절차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제 2장 각론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제 1장 총론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어째서 갈등을 특정공간에 묶기는 어려운가.

사회과학/인터넷
이전에 필자는 여러 커뮤니티들에서 카페 내 갈등의 해결에 지쳐 마침내 아예 자리를 펴주고 '이 곳에서 싸우라'는 취지의 콜로세움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 운영진들이 그런 콜로세움을 세울 때 바란 것은, 그곳에서 모든 갈등이 해결되고, 설령 해결되지 않는다 해도 좋으니 커뮤니티에만 악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란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갈등은 결코 그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언제나 뛰쳐나왔으며 커뮤니티를 흔들고 운영진을 당황케 하였다. 기실 이는 당연한 결과로, 갈등이 그 안에 머무르리라 생각하는것은 매우 편의적 발상이었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갈등이 자연적으로 해결되는 일은 거의 없다. 갈등은 양측 중 한측이 파멸하거나, 혹은 갈등의 요소를 없애지 않고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갈등을 적절하게 조율하거나 필요에 따라서는 강압적으로 해결하는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양측은 곧 자신들의 자원을 총동원하기 시작할 것이며 이것에는 논설, 변론, 친분, 끈기, 호소 등의 수많은 기법이 사용된다.

이러한 일들은 매우 지치는 것이며,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갈등상황에 익숙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기에 그들은 갈등이 견디기 힘든 수준이 되었을 때, 공적인 운영진을 찾아서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거나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다른 회원들을 끌여들여서 지지를 부탁하며 대중에 호소한다. 이런 과정에서 운영진이 끼어들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해도, 회원들은 그들의 호소를 보고 갈등을 읽은 뒤 이에 대해 저마다 옳고 그름을 말하거나 갈등으로 인한 불편한 심정을 투덜거리며 커뮤니티 내에 이를 확산시키기 마련이다.

요컨데 갈등상황에 처한 회원들은 갈등의 해결을 위해서(또는 자신이 올바름을 증명하기 위해서) 언제나 주변으로부터 가능한 지지를 얻으려고 하면서 갈등에 대한 정보를 뿌리고, 상대도 이에 대응하여 새로이 해석된 말을 내놓는다. 그리고 회원들이 이에 관심을 가지며 몰려드는 것을 운영진이 차단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갈등에 대한 통제도 또한 실패하는 것이다.

결국 운영진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콜로세움내의 갈등은 결코 그 안에만 머물지 않게 된다. 만약 이를 해결하고 싶다면 콜로세움을 만들 것이 아니라 아예 주변으로부터 차단된 검은 상자를 만들고 그 안에 둘을 집어넣는 건데, 사실 이렇게까지 하느니 차라리 운영진은 애초부터 분쟁에 대한 해결 절차를 만들고 스스로 거기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다.

기실 운영진의 역할이 곧 갈등의 조율이고 자원의 배분과 정책의 선택인데, 이를 그만두는 것은 운영진으로서 본분을 어기는 일이다. 콜로세움은 결국 운영진이 더 이상 갈등을 처리하고자 할 의지가 상실되었음을 표시한 것일 뿐이다.

커뮤니티 운영론 (최종)

사회과학/인터넷
- 蜜柑 -

Steven Pinker,《Language instinct》

---------------------------------------------------------------------------------------------------------------

과거 유럽인들이 외부 세계를 향하며 최초로 상상한 그림을 보면, 매우 기이한(이를테면 눈이 하나밖에 없거나 머리가 없고 가슴에 얼굴의 형상이 달려있거나 하는) 생명체들이 존재했다. 아직 유럽이 세계를 알지 못했을때 그 미지를 향한 상상은 일찍이 존재하지 않던 가상의 생명들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 그들이 도달한 미지의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얼굴로 재잘거리며 다가왔다. 이 신세계의 주민들은 외눈박이도 아니었고 한 다리로 걷지도 않았으며 인디펜던스 데이에 나오는 외계인처럼 알 수 없는 전파를 보내고 있지도 않았다. 이들 사이에 최초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데에는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언어로 말하며 소통하고 사회에 사는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많은 사람은 서로 이야기하며 감정을 나누고 친구와 떠들며 마음의 안정을 얻는 반면 혼자 있고 따로 떨어져있다고 느낄때 고독해하고 두려워한다. 이처럼 인간은 함께 돕는 존재인 것이다. 세계 어느곳의 인간이라도 그러길 바라는 것이다.

이제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보자. 커뮤니티community란 무엇인가? 커뮤니티는 곧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다. 소통이며 대화하길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며 같이 있고자 하는 마음의 발현이다. 서로 같은 관심사를 지닌 사람끼리 모여서 만들어지는 공동체이며 탄생부터 내재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과 정보의 전달이다.

본 글은 커뮤니티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일깨우기 위해 쓰여졌다. 처음 커뮤니티를 개설하는 사람은, 잘못 회원을 괴롭히려고 한 게 아니라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널리 알리길 바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렇지 못하게 되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기실 따지고 보면 누구라도 악해지고 싶어하지 않으며 잘못된 길을 걷고 싶어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으며 소통치 않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으며 미움에 익숙해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유로운 대화와 소통이 그저 자연적으로 생겨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자유로이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수많은 구조적 장치와 제도적 기반, 그리고 회원 개개인의 존중의 노력을 요구한다. 커뮤니티론은 오로지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며, 만약 본 글이 이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언제라도 즉시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나도 말할 수 있게 하고 그대도 말할 수 있게 하라." 이것이 커뮤니티의 대원칙이다. 나 때문에 그대가 말할 수 없어서는 안되며 그대 때문에 내가 말할 수 없어서도 안된다. 커뮤니티의 죽음이란 대화가 없어지는 것이다. 소통이 끊기는 것이다. 모두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서로 다른 수많은 사람이 어우러질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모든 커뮤니티의 목적이다.

커뮤니티 운영론 (8)

사회과학/인터넷
 제 환공이 사냥을 떠났다가 길을 잃었다. 도중에 한 노인을 만나서 이곳이 어디냐 묻자 노인이 대답하기를,
 "제 이름을 따서 바보의 골짜기라 합니다."라 하였다.
 이에 환공이 기이하게 여겨 물었다.
 "전혀 그리 보이지 아니한데 어찌 바보라 불리십니까?"
 "이전에 소를 키워 송아지를 낳았습니다. 시장에 가서 송아지를 팔고 망아지로 바꾸어 오니 이웃 청년이 '소가 망아지를 낳을 리가 없으니 이것은 그대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빼앗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러자 환공이 웃으며 "그게 사실이라면 노인은 정말로 바보요. 어찌 그러고도 관아에 신고치 않은게요?" 라고 하자 노인이 별 말 없이 나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다음날 환공이 이 이야기를 하자 관중이 옷깃을 여미며 말했다.
 "그 노인은 바보가 아닙니다."
 "바보가 아니라니 무슨 말이오?"
 "백주대낮에 남의 망아지를 빼앗아가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것은 관청이 백성을 지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불온한 일을 신고치 아니함은 이미 백성으로부터 권위를 잃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소중한 망아지를 빼앗기고도 입을 다무는 일이 생기겠습니까? 한시바삐 관리들을 다시 다스려야겠습니다."

『說苑』
-------------------------------------------------------------------------------------------------------------------

흔히 권위라는 말은 고압적, 강제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나쁜 의미로 쓰이기 좋다. 이를테면 권위적인, 권위주의인, 등이 그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은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을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말보다 더 신뢰하며 가급적 보다 권위있는 사람이 자신의 일을 처리해주길 바란다. 왜 그러한가?

사전에 따르면 권위는 제도, 이념, 인격, 지위 등이 그 가치의 우위성을 공인시키는 능력 또는 위력이라 되어있다. 이것은 권위라는 것이 단순히 위와 아래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부여 될 만한 자에게 부여된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변호사를 믿는 것은 그가 단순히 변호사라는 명칭을 가졌임에 근거한게 아니라, 변호사라는 명칭과 자격증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법에 대해 더 잘 안다는 사실을 보장하기에 그러하다.

이러한 권위는 일의 능률적인 처리에 기여한다. 모든 일엔 전문가가 있으며 문외한이 있기 마련이다. 훌륭한 운전수가 그 자신의 뛰어난 운전실력 만큼의 법학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겠는가? 그럴 필요가 없다. 운전은 운전수에게 맡기면 되며 법률은 변호사에게 맡기면 된다. 이처럼 권위가 부여받을 만한 자에게 부여된다면 사회는 매우 효율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효능에도 불구하고 종종 권위가 비웃음의 대상이 되며 그 신뢰를 잃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권위와 실제 사이에 어떠한 불일치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 권위를 지닌 자가 권위에 마땅한 일을 하지 못하거나, 혹은 마땅하지 않은 자에게 권위가 부여된다면 무엇으로 그 부여된 권위를 믿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권위엔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신뢰를 얻는 방법은 무엇인가? 만약 여러분이 어떤 음식점을 갔는데 음식이 맛이 없었다면 이후로 그 음식점을 찾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자주 즐기던 단골 음식점에서 하루 잘못하여 맛없는 음식이 나온다고 해서 이후로 찾지 않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에 이미 신뢰가 쌓여있기 때문에, 하루 정도 맛없는 음식이 나오는 것은 실수의 범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데 신뢰라는것은 한 번 잘했다고 쉬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한 번 못했다고 바로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일의 경중과 처리를 항상 적절하게 해야하며 필요한 자에게 필요한 만큼 주며 넘침에서 덜어서 부족함에 주며 실수는 해명하고 고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그러나 회원을 위한답시고 지나치게 모든 사항을 밝히려 할 것은 없다. 회원들이 특별히 궁금해하며 납득시켜야만 것이 아니라면 필요한 사항만 짚어서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주어야 한다. 전문가는 비전문가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는 다만 고객에게 알려주어야 할 것을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다(떠맡길 것이라면 애초에 전문가가 무슨 소용인가?).

때문에 제대로 된 전문가라면 고객들에게 이해와 신뢰를 요구할게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끌어내야한다. 그 분야에서 권위를 얻고자 하는 사람이 할 일은 자신이 해당 분야에 있어서 누구보다 잘 알거나 업무를 잘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결과로서 보여주는 것이다. 때문에 과정을 일일이 세세하게 말할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항을 짚어서 정리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가능하면 변명할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하나, 기실 변명할 일이 생기지 않을 수는 없다. 때문에 변명할 일이 생긴다면 훌륭한 변명을 해야한다. 변명이란 책임의 회피를 위한 도구가 아니며 듣지도 말하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책임의 소재를 명확히 해주며 잘못의 원인을 밝히고 후일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변명은 회원이나 고객을 위한 변명이 아니다. 상대가 이해해준다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나 이는 어디까지나 요행일 뿐, 어찌되었건 한번 실패한 것은 그것으로 끝이며 상대가 아예 변명을 듣지 않는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기실 실수는 어찌 되었건 돌이킬 수 없는 것이고, 다만 스스로 이후에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변명이 필요한 것이다. 상대가 요구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변명을 하여 필사적으로 이유를 찾고 할 수 있는 최고의 변명을 하여 반복치 않는 것이 진정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겠는가? )

커뮤니티 운영론 (7)

사회과학/인터넷
 덕으로 교화하는 일은 위로부터 아래로 행해지며, 먼저 태어난 사람으로부터 나중에 태어난 사람에게로 베풀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인자하지 않으면 자식이 효성스럽지 않고, 형이 우애롭지 않으면 동생이 공손하지 않으며, 남편이 떳떳하지 않으면 아내가 순종치 않는다.
 아버지가 인자한데도 자식이 거스르고, 형이 우애로운데도 동생이 오만하며, 남편이 떳떳한데도 아내가 업신여긴다면, 이들은 천성이 흉악한 인간들로, 형벌을 가하여 두려워하게 해야지 가르치고 선도해서 태도를 바꾸어놓을 대상이 아니다.

『顔氏家訓』

-----------------------------------------------------------

 오늘날 인간의 질병에 의한 사망률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게 암(癌 : cancer)이다. 본래 육체는 세포의 분열(탄생)과 성장, 그리고 (수명이 다하여) 사멸함을 반복함으로서 유지된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스러운 체계가 어떠한 이유로 손상되어 사멸되어야 할 세포가 죽지 않고 과다 증식하게 되어 주위 조직을 파괴하면 육체가 이를 견디지 못하게 되는데 이러한 상태를 암이라고 한다.

 가장 건강한 사람들조차 몸 속에 암을 지니고 살며 이들 암세포는 언제라도 다른 신체조직에 전이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암은 누구에게나 발병할 가능성을 갖추고 있으며, 기실 대부분의 인간은 암에 걸리지 않는다기보다는 암이 발생하기 전에 늙어 죽는 것이라 하는게 보다 사실에 가까운 표현일 것이다. 이것이 세포 자체에 내재된 속성인 이상 이를 극복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로 인하여 큰 문제를 겪지 않는데, 왜냐하면 신체에는 암세포가 발생하자마자 자체적인 신체 메커니즘을 통하여 상궤를 벗어난 세포를 파괴하도록 하는 자체 방어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진화는 암이 애초에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 온전한 수명을 누리고 나서 죽을 수 있도록 안배하는데에 성공하였다.

* * *

 본래 커뮤니티에서 운영진이 제대로 그 직무를 수행하고 중심을 잡아 올바르게 처신하고 있다면 대부분의 회원은 굳이 불만을 지니지 않으며 분란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그러나 모든 회원이 그런것은 아니다. 운영진이 아무리 훌륭하게 운영을 하고, 회원들이 얼마나 선량하건 간에 분란을 일으키는 회원은 반드시 존재한다. 이들이 바로 암이다. 커뮤니티를 개방적이고 활기찬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들었다면 이러한 불의한 자들이 반드시 따라올 수 밖에 없다.

 많은 커뮤니티 운영자들은 저러한 회원들을 적절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여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아예 새로운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렵도록 하여 커뮤니티의 입구를 좁히고 그 뒤 검문소를 설치하여 철저하게 암을 발본색원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강한 항암제는 신체도 손상시킨다. 암이 크게 진행되어 커뮤니티 전체를 감염시키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러한 제재는 정상적인 세포들을 쓸데없이 파괴하는 꼴이다. 만약 운영진이 이러한 태도를 계속하여 고수한다면 그들은 어느날 문득, 커뮤니티의 수명이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저러한 흉악한 회원들이 들어오는것은, 커뮤니티가 그 본연의 목적에 맞게 적절하게 운영되고 있다면 당연히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이러한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운영진이 커뮤니티를 훌륭하게 운영하고 싶다면 결코 저러한 회원들을 회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운영진은 잘못된 회원을 구별해내어야 하며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되는지를 생각해야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관용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면 암은 그 최초의 진원지로부터 온 몸으로 퍼져 끝내는 모두에게 최악의 사태를 만들어내고 말 것이다.

 운영진은 이러한 잘못된 회원들을 교화하려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운영진 스스로가 올바른 행동을 하고 있고, 다른 회원들도 크게 무리치 않고 있음에도 흉악한 언행을 일삼는다면 그들을 인도하는것은 가정과 학교에서 할 일이지 기업이나 동호회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운영진이 이러한 잘못된 자들을 걱정하여 배려하면 수많은 선량한 회원들이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불의를 띄우고 올바름을 파괴하는 행위이며 본本을 버리고 말末을 챙기는 것이다.

 암이 암인 이유는 그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주변 세포들에게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존하며 타인과 관계치 않는다면, 혹은 관계터라도 피해를 주지 않고 반발치 않는다면 무엇이 문제이겠으며 누가 이를 따지겠는가? 그러나 거듭 이야기하거니와 피해를 줌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고려치 않을 것을 생각하고 필요한 것을 제약하여 당장 피해가 오지 않는다, 때가 아니라 말하면 도대체 누가 회원들을 지키고 누가 커뮤니티를 보호할 것인가?

 독기를 쐬면 독을 품는 법이다. 불의를 보면서도 참을 자는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잘못된 말과 지나친 행동이 쏟아짐에도 평온히 버틸 수 있는 사람은 그보다 적으며, 모욕 당하고 인격을 손상당하면서도 분을 억제할 수 있는 자는 극히 드물다. 이러한 수모를 자주 겪으면 각박하고 깐깐하게 될 것이며 이렇게 독이 흐르며 전염된다. 결국 이전에 극히 적게 존재하던 암세포는 무한으로 증식하게 되어 온 몸을 점할 것이니 그 지경에 와서 누구를 탓할 것인가?

* * *

커뮤니티 운영론 (6)

사회과학/인터넷
하루는 제 경공齊 景公이 대에 올라가 재상 안영晏嬰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 사람을 보고 말했다. "저 자는 (내가 말하는 것에 좋아하고 내 의견에 동의해주니) 나와 화합和한다." 이에 안영이 "그는 군주와 화하는게 아니라 동同합니다."라고 말하자 제경공이 '화함과 동함의 차이에 대하여 묻고싶다.' 하였다.

안영이 말하기를 "화함은 음식으로 말하자면 짠 맛, 단 맛, 매운 맛, 쓴 맛, 등이 함께하여 하나의 먹거리로 되는 것이며 음악으로 따지면 서로 다른 수많은 소리가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노래가 되는 것이니 그 조화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하는 것은 음식으로 따지면 오로지 짠 맛만 나는 것이며 음악으로 치면 오로지 하나의 음만 나는 것이니 즐길 것이 못됩니다. 지금 저 자는 자신의 의견이 없이 군주가 말하면 옳다 하고 아첨하며 스스로의 말을 하지 아니하니 이것은 스스로와 군주를 함꼐 망치는 것으로서 경계해야 마땅합니다."하고 함에 경공이 "좋다."고 하였다.

----------------------------------------------------------------------------------------

많은 커뮤니티에서는 흔히 회원들에게 예를 강제하려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더 큰 오류는 애초에 그들이 예라고 생각하여 요구한게 예가 아님에 있다. 커뮤니티에는 서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출생과 배경이 다르며 입장과 언행도 언행이 같을 수 없다. 이처럼 언행이 다른 사람들이 있을때 그들에게 동일한 언행을 강제하여 통일시킬 필요가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기준으로 회원의 언행을 평할지에 대해 논의치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그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이 기준은 마땅히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보편과 특수 사이에서 올바른 위치를 잡을 수 있어야 하며 그와 동시에 해악을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선은 마땅히 조화和이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의견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동일한 어체와 동일한 행동을 하도록 하는것도 가능치 않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다양성이 사라지고 단일한 시계視界에 의해 그 바라봄이 왜곡되면 그 폐해가 어디에 이를 것인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양성을 추구한다하여 모든 종류의 맛을 아무렇게나 넣으면 그 음식은 도저히 먹을 것이 못 될 것이다. 연주에 있어서 잘못된 소리가 나타나면 전체의 맥이 깨져버리듯이 회원의 언행에도 다르나 조화로운게 있고 같으나 잘못된 것이 있다. 그렇기에 균형이 있고 조화가 있고 맥이 있다.

소금을 넣지 않는 이유는 소금의 짠 맛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소금을 더 넣으면 음식을 망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을 판정할 때엔 그 일 자체만을 잘라내서 판정하려 할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고 주변과 중심을 함께 봐야만한다. 만약 그러한 치도를 모르고 관대함을 문약함과 착각하며 엄중함을 가혹함과 구별치 못하면 조미료와 음식을 다 같이 망칠 것이다.

조화를 알면 서로 다름이 공존케 할 수 있다. 조화를 모르면 다름을 거부할 것이니 그러면 일률적으로 동하거나 반대를 거부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진정 서로 다른 이가 함께 있게 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본분을 따르고 해악을 걸러내어 선을 그어야 한다.

커뮤니티 운영론 (5)

사회과학/인터넷
황제(黃帝) 때, 대외(大隗)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나라를 다스리는 능력이 뛰어났다. 황제는 그가 재주있다는 말을 듣고, 방명(方明), 창우(昌寓), 장약(張若)등 여섯 명을 데리고 그를 찾아나섰다. 구자산(具茨山)의 한 산골짜기에서 일곱 사람은 길을 잃었다. 마침 곁에 목동이 한명 보여서 그에게 구자산으로 가는 길을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목동은 "압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시 그에게 대외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물으니, 목동은 역시 "압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구자산과 대외에 관해서 일곱 명에게 상세히 얘기해 주었다. 황제는 이 목동이 나이는 어리지만 말에 조리가 있어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너는 천하를 다스리는 이치를 아는가?" 그러자 목동이 대답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도 내가 말을 키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해로운 말을 없애면 됩니다."

『太平寰宇記』
-------------------------------------------------------------------------------------------------------------------

어떤 조직에서든 거의 모두 곤란한 인물이 하나 이상은 끼어있기 마련이다. 그들의 존재목적은 마치 일을 그르치기 위해서 있는 듯하다. 운영진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기실 최고운영자가 그 지닌바 권한을 충분히 행사하여 올바르지 못한 자를 끌어내고 그렇지 않은 자를 중용한다 해도 이러한 자들이 하나 이상 들어오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이들은 굳이 말하자면 업무의 파괴자이며 조직의 적이다. 이러한 파괴자의 능력이 비범한 이유는 파괴가 그 반대보다 쉽다는데 있다. 장인이 긴 시간을 들여 만든 명품 도자기도 당나귀 한마리가 한번에 부술 수 있다. 만일 조직안에 이런 못된 당나귀가 하나라도 있으면, 아무리 뛰어난 장인들이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좋은 성과를 보일 거라 기대하긴 어렵다.

구정물에 술을 한 컵 부으면 여전히 구정물이다. 그러나 술에 구정물을 한 컵 부으면 술은 구정물이 된다. 당나귀와 장인의 관계도 이와 같다. 최고운영자가 당나귀에게 제약을 가하느냐의 여부는 조직의 업적과 효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만일 커뮤니티에 당나귀가 있다면, 운영진은 마땅히 그 당나귀를 제거해야 한다. 만일 여러가지 이유로 이렇게 할 수 없다면, 적어도 묶어두어야 한다.

당나귀들이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업무의 파괴에 그치지 않는다. 도자기가 부숴져도 다시 구워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당나귀가 계속하여 도자기들을 파괴하고 일을 방해한다면 장인들이 계속하여 열과 성을 다해 일을 하리라 기대해선 안되며 이것은 궁극적으로 조직 자체의 와해로 향한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면 무엇으로도 돌이킬 수 없다. 이를 거스르려 할 때 최고운영자는 조직 전체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났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처럼 그 해악이 지대함에도 만약 당나귀를 제거할 수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는 현재까지 주로 권한에 대해 논의해왔다. 그러나 커뮤니티가 항상 권한으로만 돌아가는것은 아니다. 지닌 권한의 적절한 행사법, 그것이 정당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도덕성과 인간에 대한 이해, 그리고 나아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상호작용, 마지막으로 운영자 본인의 신념이나 최소한의 책임감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이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가급적 권한에 대해서만 논한 이유는 이러한 품성은 뛰어난 안목과 깊은 경험을 전제치 않고서는 성립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필자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은 어떻게 하는게 보다 옳은지에 대해 쉽게 판단내리지 못하며 그에 대해 깊게 생각치 못하고 처리하기 마련이다. 이제 권한 외의 부분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자.

어떠한 조직이 마련되어 충분히 돌아가려면 그 권한이 정해져야 함은 마땅하다. 많은 사람을 하나의 목표에 매진하게 하는 방법의 하나는 명분이고 다른 하나는 권한이다. 훌륭한 명분은 다수의 사람에게 정신적 지주로서 작용하여 자신들의 행동에 정당함과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수의 열정을 최대의 효율로 뽑아내는데에 함께 필요한게 조직화된 권한이다.

그러나 운영자가 아무리 법규에 따라 훌륭한 운영을 하고, 권한을 통하여 일을 하여도 이를 통해 모든 해악을 걸러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간혹 법을 어기진 않으나 없는것이 더 나은 자가 있다. 그들은 법으로는 잡을 수 없는 해악이다. 법으로 잡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골치가 아프다.

법규로서 이러한 해악을 잡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다수가 믿는 도덕이 반드시 올바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전에 논한 바와 같이 다수가 믿는 올바름義이 실천되었을 때 항상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흐른다고 할 수는 없다. 무엇이 옳은가의 문제는 가장 훌륭한 학자들조차 대답하기 어려우며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기대하기는 힘든 일이다.

그 두번째 이유는 법규는 보편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혹한 커뮤니티가 선량한 회원에게도 가혹하기 쉽듯이 관대한 커뮤니티는 해악에게도 관대하기 쉽다. 만약 해악을 잡기 위해 회칙과 법제를 보완하면 그것은 마치 농약과도 같아서 해충을 잡는 만큼 작물에도 손상을 입힐 것이다. 이 일이 처리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렇다고 하여서 해악을 방치한다면 해충이 곧 작물을 갉아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세번째 이유는 조직이 반드시 권한만으로 돌아가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조직이 상호관계와 신뢰에 기반하는 비율이 높을수록 이는 양날의 칼이 되어 당나귀의 활동에 도움을 주게 된다. 신뢰를 기반으로 할 수록 상호간의 벽이 낮아지며 활발한 의사소통이 일어나고 이것은 업무의 효율성에 크나큰 도움을 줄 수 있다(만약 이러한 조직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훌륭한 자산인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열린 소통의 경로로 해악이 들어오면 순식간에 전체가 마비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조직에서 특정자를 쫒아낸다는 것은 다른 모두에게도 영향을 주기 쉬우며 조직의 가장 뛰어난 자산에도 손상을 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충을 줄일 것인가? 해충이 지나치게 들끓어 작물을 얻을 수 없는 지경이라면 모를까 단순히 저러한 해악이 소수 있다고 하여 약을 치지는 않는다. 법제는 보편적이기에 반드시 작물에도 손상이 가는 이유에서이다. 이렇게 작물에 손상을 입히지 않으면서도 해충을 잡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그들을 집게로 잡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약으로 처리할 수 없는 해충에 대한 최선의 방법이다.

이제 그 집게는 무엇인가? 그것은 최고운영자 자신이 지닌 권위이자 신뢰이다. 권위는 거부를 거부하며 신뢰는 믿음으로 믿게한다. 최고운영자가 스스로의 그 공정함과 정당함을 행사했으며 직분에 걸맞은 행동을 취해왔다면 사람들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비록 법제의 측면에서 애매하다고 해도 회원들은 전례에 따라 운영자를 따를 것이다.

선으로 남을 이끄는 것을 가르침이라 하고 남과 화합하는 것을 유순하다한다. 이에 반해 불선으로 남을 이끄는 것을 타락시킨다 하고 남과 화합하는 것은 아첨이라고 한다. 이 짧은 문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일컬어 유순하다고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일컬어 아첨한다고 할 수 있는지 판단내리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며 그것을 안다 해도 타인에게 납득시키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