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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국채 개입

사회과학/경제학
얼마전에 정치 여권에서 30조 이상의 국채를 발권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를 들으니까 떠오르는게 있어서 올려둔다.


http://www.kh-web.org/fin/

위는 일본 정부의 부채량을 보여주는 사이트이다. 저 사이트의 신빙성은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 일본 정부가 막대한 부채를 진것은 사실이다. 물론 일본 관료들이 그저 돈쓰는걸 좋아해서(물론 그런 이유도 없지는 않겠지만) 저런 빚이 형성된 것은 아니다. 정부가 국채를 뿌려야 할 상황이었다는 경제적 위기감이 어느정도 뒷받침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정부의 국채 발행은 반세기 이상의 경제학적 이론 기반이 있다.


경제에 대한 정부 개입은 본래 빅토리아 시대 말기까지도 용납되지 않던 이야기이다. 1차 대전의 통제경제가 비록 빛을 발하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쟁이라는 상황의 여파였고 대전이 끝나자마자 다시 각국의 정부는 그 역할을 최소화하도록 권고받았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하려고 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신고전학파의 믿음이 깔려있었는데 그 이론(물론 학자에 따른 다소의 논점 차이는 있다)에 따르면 정부가 손을 놓고 있어도 공급과 수요는 서로가 서로를 촉진하므로 가만히 놔두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일시적인 불일치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일치되는 상황에 이를 거이며, 경제는 계속하여 성장할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1929년 대공황의 발생으로 막을 내렸다. 신고전학파의 이론(당시엔 경제학 그 자체였다)에 의하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공황상태가 발생한 것이다. 기존의 이론에 따르면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거대한 공급과 수요 사이의 불일치가 드러나면서 순식간에 자본주의 세계는 심각한 균열에 직면해야 했다. 이러한 현상을 처음 예지한것은 멜서스이지만 이론적인 정합성으로 보면 마르크스가 그 시조이다. 마르크스의 주장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자본가들은 무언가 제품을 생산해야 이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냥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이 생기지 않는다. 경쟁력을 위해서는 제품의 가격을 낮추거나 질을 높여야(혹은 둘다 해야)만 한다. 그러한 방법을 위해서는 생산 기술을 발전시켜야하고,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생산과정에 노동자를 빼고 기계를 도입한다거나 아니면 아예 자동화된 공장(노동자는 최소화되므로 인건비가 줄어든다)을 건설한다거나, 내구력이 좋은 제품(예를 들면 한 10년을 사용해도 멀쩡한 밥솥이라거나)을 생산한다거나 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 모든것은, 결과적으로 수요를 감소시킨다. 노동자가 해고되면 그는 수입이 줄어들었으므로 소비량을 최대한 줄이고 절약하려고 할 것이며, 질 좋은 물건은 작정만 한다면 수십년 써먹을 수도 있기에 새로운 물품을 구입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은 공급의 증가와 함께 수요의 감소를 발생시키므로 공급의 성장을 수요가 따라가지 못하며, 이러한 격차는 불황(심하면 공황)을 불러오게 된다. 그러나 그 당시엔 세이의 판로설(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 - 물론 이때가 제국주의 시대인것을 감안하면 판로설도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편일지도) 등이 그러한 마르크스의 예언을 억눌렀으며, 실제로 주기적인 불황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신고전학파에 도전할만한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어찌되었건 유럽 경제는 발전하고 있었기에).

하지만 대공황은 신고전학파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공황은 그것이 1차 대전 이후 9년간의 황금기 뒤에 일어난 타격이었다는 점, 그리고 이 공황이 결과적으로 베르사유 체제를 파멸시키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보이지 않는 손은 파산하였고 한편에서는 생산량이 넘쳐서 팔지 못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그 물건들을 구입할 돈이 없어서 절망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상황에서 신고전학파는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했다. 이 때 등장한것이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로 추앙받는 케인즈이다. 그는 마르크스가 예언한 것과 비슷한 발견을 하였는데 이것에 대해서도 짧은 소개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

경제가 성장하는 상황(즉, 호황기)에서는 수요와 공급 모두 증가한다. 공장주는 계속해서 물건을 생산하려 할 것이며, 생산을 늘리는 방법으로는 공장 설비를 증가시키는 방법, 기술을 발전시키는 방법 등이 있지만 이것들은 단시일에 확보되지 않으므로 노동자를 추가 투입하는 방식(요컨데 8시간 돌리던 공장을 12시간 돌린다던가)을 사용하여서 생산을 증가시킬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고용이 늘어나므로 노동자들은 보다 많은 봉급을 받게 되고, 그들은 보다 많은 소비를 한다. 이것은 결국 수요를 증가시키며 증가된 수요를 위해서 공급도 늘어나는 선순환이 반복됨으로써 호황은 이어지는데 이것이 끝없이 계속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소비엔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노동자들의 소비액의 절대량은 늘어나겠지만 봉급이 늘어나면서 총 봉급에서 소비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오히려 낮아진다.

요컨데 노동자가 100만원을 받고 있었다면 그는 70만원을 소비하고 30만원은 저축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런데 호황이 계속되면서 노동자의 봉급이 150만원으로 늘었다. 그러면 그는 기존 비율(70%)대로 105만원을 소비하고 나머지 45만을 저축할까? 처음엔 그럴지도 모른다. 아마 노동자는 봉급이 100만원일때 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을 구입할지도 모른다. 늘어난 봉급으로 냉장고를 샀을지도 모르고 TV도 구입했을 것이다. 어쩌면 컴퓨터를 구입했을 수도 있고 책상을 들여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들을 다 들여놓고 나면 더 이상 뭔가 사고 싶어도 살 것이 없다(물론 쓰고자 하면 당연히 쓰겠지만 우리는 이 노동자가 정상적 판단력을 지녔다는걸 전제로 생각해두자). 아마 이 노동자는 그 뒤로는 80만원(약 53.3%)을 소비하고 70만을 저축할 것이다.

이것은 수요의 증가보다 공급의 증가가 더 빠르게 일어나는 원인이 된다. 신고전학파는 이 상황에서는 저축액의 공급이 늘어나므로 금융시장에서 이자율이 낮아지고 결국 저축된 돈이 투자를 일으킨다고 하였다. 이 말은 공급이 더욱 늘어난다는 이야기고 이것이 공급가격을 낮추므로 수요가 늘어난다는 이야기였겠지만, 당연하게도 생산 원가엔 한계가 존재한다. 때문에 이런 호황이 계속된다면 균형 가격이 생산 원가보다 더 낮은 위치에 존재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이러한 불일치가 덮어질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물품을 생산해도 팔리지 않게 될 것이며 자본가들은 생산을 중단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호황기의 종말과 불황(나아가 공황)의 시작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론을 통해서 케인즈는 호황이 계속되는것은 불가능하며 수요와 공급은 일시적인 상황을 제외하고 항상 일치한다는 신고전학파의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물론 이러한 공황도 계속되지는 않는다. 불황기에는 수요와 공급 모두가 줄어들면서 호황기에 일어난것의 반대 현상이 발생한다. 즉, 수요보다 공급이 더 빠르게 줄어들면서 어떠한 순간에 이르면 다시 수요와 공급은 일치하며 불황은 끝나고 다시 회복기가, 이어서 호황이 도래한다(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순환경제현상이다). 이처럼 케인즈의 이론은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공격은 결코 아니다. 또한 케인즈는 이 순환경기 현상에 대한 간단한 해결책도 함께 제시했다. 상기의 이론에 따르면, 불황기의 원인은 공급을 수요가 따라가지 못하는 데에서 발생한다 것이다. 원인을 알았으므로 해결책도 알아낼 수 있다. 누군가가 대규모로 소비를 하면 되는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대규모의 소비자로 기능할 수 있는 존재를 알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정부이다.

(장소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일반적으로 정부는 GDP의 수십%에 이르는 거대한 예산을 집행하는 대규모 소비자이다. 정부도 물론 서비스를 제공한다. 치안과 국방 등이 그것이다(물론 이 외에도 도로, 항구, 공항 등은 정부가 제공한다고 보아도 좋다). 하지만 신고전학파는 정부의 특성상 비효율이 계속된다는 사실과 이에 대비되는 시장의 효율성을 지적하며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할것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케인즈는 정부가 경제에 개입해야 되는 상황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불황기가 시작되면 정부가 돈을 쓰고, 그것은 그 자체로 수요이면서 또한 정부가 소비한 돈이 국민들의 주머니로 들어감으로써 국민들의 소비수준(적어도 공황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의)을 계속 유지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것은 경기의 추락을 어느정도 억제하게 되므로 대공황과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케인즈의 이론에 따르면 정부가 쓰는 소비는 반드시 전체 공급을 부양할 정도일 필요는 없다. 이는 소비의 연쇄작용으로 인해 정부가 실제 소비하는 양보다 훨씬 많은 소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만약 어떠한 공공건물을 짓는다고 해보자. 이를 위해서 정부가 노동자에게 100달러를 지급한다면 노동자는 이 100달러를 가지고 근처의 식료품점에서 빵을 구매할 것이다. 식료품 가게의 주인은 이렇게 올린 매출로 식료를 추가 주문하여 가게에 비치할 것이다. 정부는 100달러만 지출했지만 이러한 연쇄과정을 통해서 소비는 수 차례에 걸쳐 일어난다.

이러한 재정 정책에서 중요한것은 정부는 '적자를 보아야'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가 세출을 위해서 세금을 올린다거나 하면 오히려 국민들의 소비가 줄게 된다. 따라서 정부는 빚을 얻어서 재정을 확장하고 이로써 경기를 부양시켜야 한다. 또한 호황기에 이르면 반대의 정책을 펴야한다. 경기가 과열되면 그만큼 이후 다가올 불황의 쇼크도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호황기 정부는 긴축 정책을 폄으로써 과열을 방지하고 흑자가 되도록 재정을 유지하여 시장에서 생기는 문제를 보완한다.

처음 이러한 주장은 엄청난 비난을 당했다. 어느 정도 케인즈주의를 따랐다 볼 수 있는 뉴딜 정책을 추진했던 루즈벨트 대통령은 자본가들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고소당했으며 케인즈 또한 공산주의자냐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당시 공산주의는 극도로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도 오래가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미합중국 정부는 군비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셔먼 탱크를 수천대씩 생산하였고, 폭격기와 전투기도 만들었다. 이들이 사용할 폭탄도 만들었으며 항모와 함재기를 찍어(...)냈다. 또한 정부는 징집제를 실시하여 총 1,400만을 징집하였고 이 병력을 위한 식량, 군복, 총과 총탄, 그 외 수많은 무기와 보급품이 생산되었다. 전쟁중에 정부가 군비를 지출하는것은 당연한 것이기에 공산주의라는 비난을 염려할 일도 없었다. 이러한 소비는 미국 경제가 되살아나는 한 바탕이 되었다. 마침내 2차 세계 대전의 종결 후, 미합중국은 세계 총생산의 50%를 차지하는 세계 최강 경제대국의 위상을 회복하였으며, 직접 케인즈주의의 위력을 확인한 모든 제 1세계는 케인즈주의로 개종하였다. 이후 오일쇼크 등으로 신자유주의가 대두될때까지 자본주의의 황금시대가 열린다.

지금까지 서론치고는 참 긴 이야기를 했다. 이후 케인즈주의는 통화주의학파 등에 의해 비판을 받게 되지만 그것은 여기서 다루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 이후 경제학에서는 '시장 실패'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이유중 하나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인데 그 이전까지는 시장에 맡기면 보이지 않는 손이 그것을 해결해 준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또한 각국 정부는 대공황의 은행 도미노 파산을 막기 위한 각종 법규와 제도를 마련하였으며, 증시가 순식간에 폭락하는 일을 막기 위한 방법도 도입하였다. 오늘날 IMF같은 기구는 국제적 공조를 통해 국가가 견디기 힘든 정도의 쇼크에도 대비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반드시 그 방향으로 기능하지는 않지만).

자, 이제 일본 정부의 부채에 관해서 논해보자. 일본은 2차 대전 이후 1990년대까지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그 과열현상에 관해서 걱정한 사람은 소수였으며 미국에서조차도 일본에서 배우자는 이야기를 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길면서도 떠들썩했던 호황은 마침내 장기적인 불황을 가져왔다. 헤이세이 천황의 즉위와 함께 일어났다 해서 헤이세이 불황이라 불리는 이 불황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이것을 잃어버린 10년이라 한다... 아니 전세계적 공황상태로 인해 날려먹은 20년으로 불릴 기미까지 보인다.

이처럼 불황인 상황이니 일본 정부가 돈을 써야 하는것은 당연하다. 이 상황에서 만약 정부가 적자를 막기 위해서 긴축 재정을 하게 되면 경제는 더욱 공황상태에 빠질 것이며, 그러면 조세량은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정부가 부채를 얻어야 할 상황은 분명히 있다.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도 그러한 예인데, 빚을 얻은 뒤에 그것으로 무언가 투자를 해서 투자액 이상을 환수할 수 있으면 빚을 져서라도 투자를 하는게 맞다. 일본 정부의 투자는 사회, 경제 인프라를 다지는 사업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이것은 이후 일본 경제가 되살아나는 버팀목이 된다.

일본의 국방비는 GDP의 1%이하로 억제되고 있었고 그 엄청난 예산은 건물을 짓거나 항구를 건설하거나 또는 복지를 실시하거나 하는 일 등에 사용되고 있었다. 단시일이라면 탱크를 생산하건 철도를 깔건 경제학적 효과(유효수요의 상승)는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경제적 인프라를 다지는데에 돈을 쓰는것이 경제 효과면에선 훨씬 유리하다. 미사일은 경제적으로 아무 쓸모가 없지만, 도로와 공항, 항구 철도 등의 인프라는 매우 쓸모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 정부가 90년 이후 빚을 잔뜩 진 것은 당연하고도 합리적인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는)선택이다.

물론 이것이 별 필요 없어도 국채를 잔뜩 발행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필요할땐 써야하고 일본은 바로 그 필요한 때에 사용을 했다는것이 여기서의 논지다. 다만 필요할 때에 사용을 했지만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사용하였는지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듯 보인다.


필자가 역사적 배경과 함께 일본 정부의 지출에 대해 논한 이유는 이것이 현 한국의 재정정책에도 충분히 참고와 교훈이 되리라 보기 때문이다. 말했듯이 일본 정부는 필요하다 판단되는 때에 소비를 했다. 그러나 그러한 지출의 상당수는 부적절한곳에 사용되었다. 오히려 사회간접자본의 과다화는 이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증가시켰고 이는 더욱 부담을 가중시켰다.

여권에서 국채를 발행하자는 주장에는 일단 동의한다. 현재 한국 상황은 국채의 발행에 아직 여유가 있고 현 경제 상황에서 추가적인 소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적절한 때에 소비하는 것과 적절한 곳에 소비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다. 특히 현 정부가 기이할 정도로 운하와 건설에 집착하는 모습을 볼 때 이렇게 발행한 막대한 재정을 운하와 건설에 소비하려고 하는게 아닐지 생각하면 크게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