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o

중국의 의도

사회과학

요약 : 중국은 유사시 한반도 전체를 제압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고, 이거에 방해가 되서 THAAD를 싫어하는거임.

 


I. 서설

 

최근의 국제정세 이슈에서 한반도의 긴장이 매우 높아지고 있음은 굳이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리고 그 계기는 북한의 핵개발이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당황한 것은 북한의 핵실험이 아니었다. 물론 북한의 핵실험은 매우 곤란한 일이지만, 한편으론 많은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도끼 만행, 잠수함 침투, 미사일 발사, 연평 해전, 연평도 포격 등을 당한 한국의 입장에서 사실 북한의 도발은 그 자체로는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 정부와 주요 정치세력을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북한의 핵실험이 아니라, THAAD 배치에 대한 중국의 극심한 반발이었다.

 

당혹감에 휩싸인 한국 정부는 중국에 THAAD의 레이더 범위에 중국은 거의 포함되고 있지 않으며, 또한 THAAD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닌 다만 북핵에 대한 방어무기라고 설명했다. 더군다나 THAAD는 중국이 미국을 타격하는데도 거의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이미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 미국을 향한 중국의 미사일은 한반도를 지나가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은 그런 설명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으며, 다만 중국의 안보이익에 막대한 침해가 발생한다는 기존의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지도에서 보듯 THAAD의 레이더는 중국을 위협할 수준이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한국인들은 중국이 어떤 오해를 가지고 있고, 그 오해만 풀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한국은 이미 THAAD에 대해 중국에게 설명을 했다. 그리고 굳이 그런 설명이 없더라도, 베이징이 THAAD가 어떤 체계인지 모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국은 THAAD에 대해 아무런 오해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이 사실들을 모두 모순되지 않게 설명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우린 다음 두 명제를 말 그대로 이해하면 된다.

 

1. THAAD는 미국 본토 방어에도 도움되지 않고 중국 내부를 스캔하지도 않으나 한국의 미사일 방어능력을 증강시킨다. 
2. 중국은 바로 그것을 싫어한다.

 

요컨데, 베이징은 한국의 방위능력이 강화되는것 그 자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많은 한국인들은 바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행복회로를 돌렸고, 그게 바로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다. 중국은 아무것도 오해하고 있지 않다. 오해하고 있는것은 한국이다.

 


II. A2/AD와 도련선

 

이미 중국의 이른바 A2/AD전략에서는 도련선이라는 개념이 제시되어있다. 이 도련선은 굉장히 패권주의적으로 그어져있다. 이 선은 중국의 영해와 영공을 한참 벗어나 여러 타국의 머리 위를 지나간다.한국인들은 이 도련선의 내부에 한반도가 들어있음을 보고 다소간 불쾌해했지만, 사실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실제로 한국의 국방정책 역시 어디까지나 북한만을 주적으로 하고 있으며, 대중전쟁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극동아시아 국가들이 크게 관심을 두지 아니한 이 A2/AD전략은 사실 중국이 정말로 진지하게 추구하고 있는 목표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다만 그 전까지는 중국의 힘이 그렇게 강력하지 아니하였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 처럼 본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완충지대는 다른 국가에서도 추구된 바가 있다. 스탈린이 만들어낸 철의 장막이나 일본 제국의 주권선-이익선 개념이 그에 해당한다. 이 철의 장막 뒤에서 브레즈네프 독트린이 시행중인 동안 동유럽국가들의 주권은 크게 제약되었다. 소련은 언제든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국가의 수도에 땅끄를 보내어 무력진압을 시도할 수 있었으며, 실제로 이는 프라하에서 이루어졌다. 일본의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일본의 주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바깥에 추가적인 어떤 세력권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독립국인 조선을 이익선에 포함시켰고, 조선을 병합한 이후로는 만주까지 이익선을 북상시켰다. 이렇게 일본은 조선과 만주 두 곳을 모두 정복하였다.

 

이같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러시아나 일본이 문제되지 않는것은, 이 두 국가의 역량이 크게 약화되었기에 가능하다. 소련 붕괴 이후로도 러시아는 완충지대를 원했지만, 현 러시아의 국력상 한계 때문에 동유럽 국가들에게 실체적인 위협이 되지 못하니 문제가 적다. 일본 역시 더 이상 제국을 꿈꿀 수준의 국력을 가지지는 못하고 있으며, 이후로 평화헌법이 폐지된다고 하여도 일본의 이같은 지위엔 큰 변화는 당분간 없을 것이다.

 

이에 비해 중국은 실질적으로 한국, 일본, 대만 등에 위협이 될 국력을 갖추고 있고, 실제로 자국이 주창한 도련선을 이들 국가들에게 강요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미 중국의 남중국해에 대한 주권 주장은 그들이 실제로 도련선 개념을 실행에 옮기고자 준비중이라는 사실을 매우 잘 보여준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남중국해는 중국의 도련선에 매우 명확하게 포함되어있다.)

 

이 문제에 대해 미국 역시 자국의 안전을 위해 양안, 즉 태평양과 대서양을 지배하려 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이 만든 패권체제 하에서 미국의 동맹국들, 즉 태평양의 한국이나 일본, 호주 등은 오히려 수혜를 입었지 피해자라고 볼 수 없으며, 대서양 지역의 NATO동맹국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소련의 동유럽 지배나 일본제국의 식민통치와는 매우 상황이 다르다. 한국은 현 미국의 패권에 대한 체제만족국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중국이 만들어나갈 패권체제가 한국에 만족스러울 것이라면, 사실 중국에 붙는것도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그러나 중국이 만드는 패권체제는 지금 미국이 제공하는 패권체제와는 매우 다른 형태가 될 것이고 그것이 타국에 어떻게 시현될 지는 공산당 치하의 티베트, 대만에 대한 위협, 근래의 사드에 대한 반발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III.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

 

이 도련선이 타국의 머리 위를 마음대로 지나다니는 것은, 중국 수뇌부가 이를 그을 때, 외교적 고려 없이 철저히 군사적·지정학적으로 그었기 때문이다. 슐리펜 계획이나 지헬슈니트 계획에서 그러했듯, 이 선은 군사적인 유리함만을 따져서 그어졌을 뿐, 국제관계를 고려한 것이 아니다. 요컨데 중국의 제1도련선에 한반도가 포함된 것은 남한이 친미국가라서(즉 중국의 잠정적 적이라서)도, 반대로 한국이 잠정적인 친중국가라서도 아니다. 한국의 스탠드와는 무관히 그저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가 중국에게 막대한 군사적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중국에 의해 한반도가 제압되었을 때, 미일 연합군은 상륙작전 외에는 지상군을 투입할 수가 없으며. 현 상태에서 중국의 막대한 국력을 고려할 때 상륙작전은 성공할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고 봐야된다. 베트남 등 타국을 통해서 중국에 지상군을 투입할 수는 있겠지만, 베트남은 미국과의 동맹국도 아닐 뿐더러, 설령 베트남이 친미로 돌아선다 하여도 최소한 지상전에서 베트남 전역은 한반도 전역에 비하면 중국에게 큰 위협을 주지 못할 것임은 명백하다. 나아가 베트남이 아예 이를 거부하게 되어 제대로 된 지상 교두보도 없을 경우, 경우 미일 연합군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미중 모두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힐 핵전쟁이고, 둘은 한일해협을 사이에 두고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다가 장기적으로 어쩔 수 없이 현 상태를 인정하고 다시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미국이 한국을 버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미국은 매우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한반도를 지키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감내해야 할 정치적 댓가가 감당할 수 없게 커진다면 – 이를테면 이미 함락된 한반도를 되찾기 위해 핵전쟁을 불사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면 –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남한의 군사적 역량이 남아있고 미일 연합군의 교두보가 확보되어 충분히 한반도를 지켜볼 만한 상황이라면 굳이 물러날 이유가 없겠지만, 이미 한반도 전역이 종결된 상황이라면 미국이 핵전쟁까지 감내하려 할지의 여부는 생각만큼 확실하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최소한 중국군의 몇몇 수뇌부는 전역을 이렇게 종결시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어떤 한국인들은 수 십만의 재래식 병력과 수 백만의 예비군을 가진 남한이 중국에 의해 그렇게 쉽게 제압되지 않을거라고 반론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전의 특성상 선제공격의 위력은 엄청나다. 이미 걸프전에서 무기체계의 차이가 얼마나 큰 효과를 보이는지가 입증되었으며, 특히 중국은 걸프전의 전훈을 깊이 연구한 국가중 하나이다. 중국은 걸프전의 전훈에 입각하여 직접적 섬멸이 아니더라도 수 십만 이상의 대규모 군대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영감을 받았을 것이며, 이를 한반도에서 재현하고자 할 가능성이 충분히 높다.

 

그러나 중국의 육군력이나 해공군력으로는 한반도를 전면적으로 무력화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한국 공군 자체도 매우 강력하고, 유사시 미국, 나아가 일본 등이 참전하여 중국군을 견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바로 비대칭 전력이며, 특히 중국 수뇌부는 탄도미사일을 해법으로 선택했다. 중국은 A2/AD전략에서 탄도미사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요컨데 중국은 미국의 해군력에 같은 해군력으로 맞설 수는 없으나, 탄도미사일을 배치함으로 도련선 내에 미국과 그 동맹국의 해군이 돌아다니는 것을 훨씬 저렴한 군비로 견제하고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무기는 한반도 내 공군기지와 주요 시설도 사거리에 두고 있을 것이며, 실제로 중국은 최소 600기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한반도에 발포하기 쉽도록 준비하고 있다.

 

현재 베이징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려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즉, ‘한국의 재래식 전력은 탄도미사일 또는 이후에 도입될 최첨단 무기를 통한 선제공격으로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을 것이고, 이로서 남한의 지휘체계와 통치기구를 조기에 파괴하여 무력화할 것이다. 이 공격과 동시에 중국은 미국과 일본이 대응하기 전에 압록강을 건너 지상군을 투입시킬 것이며(당연히 베이징은 이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군사통행권을 요구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던 받아들여지지 않던 압록강을 도하할 것이다) 남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를 통제한다.’ 이같은 시나리오에서 남한은 예비군을 동원할 시간조차 얻지 못할 것이다.

 

이상으로부터, 우린 다음의 시나리오가 중국 수뇌부 내에서 진지하게 검토되고 있을 가능성을 검토해야한다.

 

1. 한반도에서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 경우 중국의 전략목표는 북한 정권의 온존이 아닌, 한반도 전토의 제압이다.

 

2. 전자의 목표를 최소한의 희생으로 얻기 위해서 중국군은 미군의 증원이 있기 이전에 단기전으로 승부를 봐야되고, 그 단기전을 위해서는 다소간의 무리수를 두는 것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그 무리수에는 전략핵은 없겠지만 확실히 탄도미사일은 존재하며, 어쩌면 전술핵의 사용까지도 고려되어있을 가능성이 크다(그리고 이것이 중국 수뇌부가 한국의 THAAD배치에 강경히 반대하는 이유일 것이다).

 

3. 중국은 한반도에 우선 최대한의 전력을 집중시켜 북한과 남한 모두를 제압한다. 여기서 미국과 일본의 해공군은 탄도미사일로 최대한 억제함으로 이동중인 지상군을 보호한다. 중국군은 다른 전선(베트남, 인도, 러시아 등)이 동요하기 전에 조기에 작전을 종결시키고, 이후 북한과 남한 모두에 친중적인 정권을 만들거나 군정을 실시하여 안정화한다.

 

4. 미일은 이미 제압된 한반도에 지상군을 투입하여 해방시킬 수 없을 것이며, 전술하였듯 핵전쟁을 택하거나 아니면 중국의 새로운 세력권을 장기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 반도판 슐리펜 작전이 중국의 의도대로 될 지 어떨 지는 당연히 모르는 것이다. 어쩌면 한반도에 자세력을 투사하고자 하는 이 계획이 중국을 파멸로 이끌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 베이징이 이 ‘오판’을 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당장 지금 중국이 한반도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북한과 남한에 대한 양비론을 펴며 양측 모두를 견제하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역사적으로도 이런 사례가 많다. 런던 조약을 통해 사실상 비무장지대가 된 벨기에는 그 지정학적 이익을 얻고자 한 독일에 의해 침공당했다. 이는 군사적으로는 나쁜 결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벨기에의 저항에 맞닥뜨린 독일은 군사적 목표의 달성을 위해 이들을 잔학하게 학살했다. 이 레이프질에 비판이 쏟아지자, 독일군은 참으로 경악스러운 태도로 답했다. ‘그들은 강대한 우리의 진격을 방해했다. 그들이 우리를 막는다고 해봐야 죽는건 그들 뿐인데, 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들인가!’

 

물론 독일의 이 군사적으로 합리적인 결정은 결국 영국, 나아가 미국의 참전을 불러왔다. 대전이 끝난 후, 누가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인지에 대한 평가도 뒤바뀌었다. 그러나 당시 넘처흐르는 국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국뽕에 취해있던 독일인들은 벨기에가 죽을 것이 분명한데 저항에 나서는 것을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며 그들을 무지한 멍청이들이라고 평가했다. 그로부터 수 세대가 지난 지금, 중국인들이 그다지 다르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여기서 문제는 그 오판이 중국에게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은 ‘오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오판의 대가는 중국만이 치르지 않는다. 슐리펜 계획은 오판이었지만, 그 오판이 그저 실행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벨기에는 막대한 희생을 치루어야 했다. 한미연합군과의 대결은 중국에게뿐 아니라, 한미에게도 재앙이 될 것이다.

 


IV. 중국의 실제 행동

 

이 전제하에서 본다면 지난 수 십년간의 베이징의 행동과 최근 수 년간의 안하무인적 태도도 쉽게 이해가 된다. 남한이 중국에게 그다지 무례한 행동을 한 적이 없음에도 중국 수뇌부에서 공공연하게 미국만 없다면 남한을 손봐줬을 것이라는 황망한 소리를 한 것은, 중국에게 통제되지 않는 정권이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거슬렸기 때문에 나온것이라고 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중국이 자국에서 이미 레이더를 설치하여 한반도 전체를 살피면서도 THAAD의 레이더 범위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미 중국의 가상적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이르쿠츠크에 조기경보 레이더를 배치하였음에도 중국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러시아보다는 미국을 신경쓰고 있다고 하여도, 그렇게 치면 이미 일본에도 MD체계를 강화할 만한 대형 레이더들이 설치되어있다. 혹자는 한반도에 배치된 레이더와 일본에 설치된 레이더가 다르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 차이가 아무리 크다 하여도 저 정도의 신경질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를 보일 중국이 일본에 설치된 레이더에 대해서 지나치리만큼 무감각한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중국의 이 요상한 태도는 본디 레이더 설치 그 자체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보면 별 문제 없이 해석된다. 레이더는 그저 핑계고 남한에 THAAD가 설치되어 자국의 탄도미사일 무기가 지닐 위력이 반감될 것으로 예상되자 그것을 반대하기 위해 적당한 아무 주장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THAAD의 레이더 범위가 사실 중국 대륙에 거의 닿지 않음에도 중국이 저 난리를 치는것도 이와 동일한 맥락이다.

 

(일본에 초대형 레이더를 설치하는 동안, 중국은 전혀라고 할 만큼 무반응이었다.)

 

중국 정부가 양비론을 펴며 남한 뿐 아니라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서도 견제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중국이 유사시에 한반도 전체를 제압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중국은 평양에 대한 세부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베이징은 결코 북한을 좋게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한미연합군과의 무력충돌이 현실화된다면, 눈치볼 필요가 없게 된 중국은 북한에 대한 군사투입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북한 정권이 핵무기를 가지면 당연히 이같은 중국의 전략에 큰 방해가 된다. 국제적으로 어떤 비난을 받아도 북한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 중국이 일단 북한에 대한 제재에 나서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히 중국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보아야 한다.

 

중국이 통일 한국을 원하지 않는 이유도 쉽게 설명된다. A2/AD 전략 하에서 도련선 내부, 그것도 가장 핵심 지역인 제1도련선 내에 독자적인 자기이익을 가지는 통일한국의 존재는 중국에게 있어서 결코 기쁜 일이 아니다. 도련선 내에 북한과 같이 불안정하고 약소한 국가가 있는 것이 중국에게는 더 좋으며, 반대로 남한과 같이 내부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강소국이 중국에게는 더 불만스럽다. 이렇게 반토막난 남한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느끼는 상태인데, 그들이 통일되어 인구와 국토가 크게 늘어나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다. 중국은 압록강에서 미군을 보는 것을 싫어해서 통일 한국을 반대하는 것일 뿐 아니라, 나아가 중국과 이해관계를 달리할 국가가 도련선 내에 등장하는 그 자체가 싫다는 것이다. 설령 이북에 미군을 단 한명도 진입시키지 않겠다고 하여도 중국은 한반도 통일을 반대할 것이다.

 

지난 몇 년간의 첩보전에서 중국이 남한의 군사정보를 빼내기 위해 집중적으로 노력한 것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정보부서가 한국 외교관들을 상대로 벌인 공작은 결코 일상적인 수준의 그것이 아니라, 정말로 중국이 한반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행된 것이라 해석하면 어렵지 않게 풀린다. 요컨데 중국은 애초부터 남한을 언제든 군사적으로 제압할 것을 고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현 동북아 정책이 현상유지(Status Quo)에 가깝다는 사실은 현재까지의 가정에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중국은 앞으로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적어도 중국 수뇌부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으로서는 전술한 것처럼 전격적으로 북한이나 남한을 정말 제압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약 10년에서 20년 뒤 중국군의 전력이 더욱 강화되고 첨단무기로 무장하게 된다면 중국은 미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원활하게 한반도에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게 되며, 워싱턴이나 도쿄가 제대로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반도 전역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 지금 현상유지를 원한다는 사실은 중국이 장기적으로 자신의 도련선에 한반도를 포함하려 한다는 사실과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인터뷰중에 나온 시진핑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시진핑이 한국은 중국의 일부라고 말했다’고 인터뷰에서 전했다. 한국인들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서 대체 그 말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 의문을 품었다. 일부는 트럼프가 시진핑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맥락에서 한 소리를 잘못 알아들었을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굳이 더 말할 것도 없지만 트럼프는 국제정세에 대한 이해가 매우 박약하고 한반도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가 한반도 정세에 대해 듣지도 않은 이야기를 상상해서 만들어내기엔, 그 상상의 재료가 되야 할 배경 지식이 사실상 없다. 그리고 그가 시진핑에게 별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도 않던 시점에서, 굳이 시진핑을 엿먹이려고 어떤 말을 지어냈을 가능성도 별로 없다. 즉, 시진핑은 정말로 그런 말을 했을 것이고,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트럼프는 아무 생각 없이 인터뷰에서 그 소리를 지껄였을 것이다.

 


V. 결론

 

한국은 중국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한국은 지금까지 계속 행복회로를 돌려왔다. 그 행복회로의 내용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 참피들은 한국은 중국이 북한보다 남한에 더 호의적이고, 장기 파트너로 북한보다 남한을 택하려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북핵 문제가 발생하고 남한이 이에 대응하자 중국은 외교적으로 차마 하지 못할 말들을 남한에 퍼부었다. 중국은 그냥 원래부터 남한을 파트너로 볼 생각이 없었고 다만 말 잘 듣는 종속국을 바랬다고 보면, 혹은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서 외교적으로 고립되도록 만드는게 목적이었다고 보면, 이 문제는 아주 쉽게 설명된다.

 

두 번째 참피들은, 중국과 미국은 서로간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는 호혜관계이므로 신냉전과 같은 적대적 관계로 보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양국은 협력을 통해 국제사회의 제반 문제를 풀어나갈 것이라는게 그런 주장의 결론이었다. 물론 양측의 교류단절은 모두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겠지만, 그러나 첫 대전의 사례에서 보듯 자유무역의 발전이 전쟁을 막아주지는 못한다. 더군다나 최근 북한 문제가 꼬여가는 것만 보아도, 중국이 미국과 협력해서 주요문제를 풀어나갈 것이라는 주장은 현실성이 높지 않다. 마찬가지의 문제로, 최근 한국의 THAAD배치로 인해 동북아의 대립이 더 커진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이 주장은 마치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암살하지 않았으면 1차 대전이 터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과도 같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1차 대전의 시작은 이미 대부분의 유관국가가 전쟁계획을 수립한 상태에서, 어디에서 어떻게 위기가 촉발되어 시작하느냐의 문제일 뿐이었다. 한국이 동북아의 에피담노스라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갈등의 격화가 에피담노스의 탓이라고 주장하며 양국 사이의 충돌을 막거나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세 번째 참피들은, 설령 미중간의 패권경쟁이 있다고 하여도 한국은 해당이 없으며 이 둘 사이에서 한국은 줄을 잘 타면 된다고 생각했다. THAAD배치 직전까지만 하여도 대륙이 일본을 적대할 지언정, 남한에 대해서는 별다른 구체적 적대행동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행보를 보면, 중국은 그냥 처음부터 한반도 전체를 제압하고 싶어하고 있으며 남한 정권의 존재 자체를 눈에 가시로 여기고 있다. 전술하였듯 남한 정부가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는 중국의 도련선 기반 사고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문제에 있어 남한은 번외자가 아니라 당사자이며, 지리상 일본보다도 훨씬 위급한 처지에 있다. 이 상황에서 한국이 균형외교로 나서 중국에게 기울면 중국이 남한을 아이고 이뻐라 해줄거라고 주장하는건 ㄹㅇ 답이 읎는 소리다.

 

한국인들은 그 동안 희안하리만큼 중국의 선의를 믿는 경향이 있었다. 한국인들은 중국인을 짱깨라고 멸시할지언정, 그들이 한국에게 ‘실체적인 위협’이 될 거란 가능성을 거의 생각하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고쳐져야만 한다. 중국은 한국에 대한 가장 명백하고 강력한 실체적 위협이며, 그걸 그다지 숨기지도 않고 있다.

 

 

VI. 보론

 

1. THAAD가 미군만 지킬 것이라는 주장

 

THAAD및 그에 딸린 레이더의 배치를 두고 MD체계에 편입하려는게 고작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그게 목적이면 다만 레이더만 설치하여도 상관없는 일이고 THAAD까지 배치할 필요는 없다(이 둘이 반드시 같이 움직여야 할 이유도 없고). THAAD는 실제로 한반도를 방어한다. 그러나 THAAD가 주로 미군 기지만을 보호하고 한국의 민간인을 제대로 지켜주지는 못할(않을) 것이라는 지적은 매우 높은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THAAD를 더 배치해야 한다는 의미일 수는 있어도 있는 THAAD를 없애야 한다는 의미일 수는 없다.

 

또한 더 나아가, 미군에게 이익을 주어 중국이 쉽게 한반도를 제압할 수 없도록, 최소한 제압 과정에 큰 피해를 주게 만드는 그 자체로서 THAAD는 이점이 있다. 냉전 당시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국가는 소련과 동등한 수준의 핵전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때문에 영국이나 프랑스는 소련의 주요 대도시를 날릴 만큼의 핵능력을 보유하고 핵전쟁시 사용하겠다는, 이른바 ‘모스크바 기준(moscow criteria)’과 같은 전략을 택하고 이를 널리 공포했다. 이 전략은 핵공격이 있을 시 자국의 멸망을 막아주지는 못하지만, 소련이 양국에 핵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은 충실히 수행했다. 같은 원리로, 슐리펜 작전 당시 독일군의 진로에 독일군의 진격을 매우 둔화시킬 수준의 요새가 있었다면, 설령 그 요새가 결국은 독일에 의해 함락될 수준이라 하여도 전력집중을 통한 단기전을 저지하는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이는 영국의 참전가능성을 높여가면서까지 벨기에를 침공할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독일의 입장을 변화시켰을 것이다.

 

이를 고려할 때, THAAD의 배치를 통해 민간인을 지키는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지만, 중국이 얻을 수 있는 전략적 이익을 포기시키는 것에 논점을 준다면 그 효과는 분명히 있다. 중국이 어떠한 전략적 이익도 얻을 수 없게 된다면 굳이 한국의 민간인들을 상대로 미사일을 투발할 이유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 한국에서는 이런 방식을 택하여 베이징이 오판을 하지 않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2. 비용부담의 문제

 

THAAD나 주한미군에 대한 분담금을 두고 한국인들은 마치 통수를 맞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사실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에 문제가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일단 트럼프 대통령은 사안을 일일이 챙기는 자가 아니며, 그가 매우 진지한 태도로 실무라인과 협력하여 그같은 태도를 보인 것이 아닌 이상 벌써부터 과민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실제로 THAAD 비용을 내라는 구체적인 협상을 요청한것도 아닐 뿐더러, 설령 협상이 시작된다고 하여도 그 시점에서 양측은 아마 합리적 범위 하에서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어차피 미국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점점 쇠퇴하는 상황에서 패권을 계속 유지하고자 한다면 동맹국들의 분담을 늘일 수 밖에 없다. 그 때 분담을 누가 얼마나 하느냐가 논점이 될 수는 있겠지만, 분담 자체가 논점이 될 수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는 미국민들이 스스로 느끼는 부담을 점차 힘겨워하고 있었다는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 트럼프야 이런 문제를 다룰 능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때문에 트럼프 집권기에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분담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으나, 미국의 주류 정치인들 역시 이런 문제를 인식해야 할 시점이 올 것이고, 지금과 같이 공연히 큰 소리나 치는 방식에서 벗어나, 정말로 체계적인 방식으로 미군의 역할을 재조정하러 나설 가능성은 높다. 중국의 압력이 가중됨에 따라 미국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유럽지역에서 전력을 빼내어 극동지역으로 더 많이 재배치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NATO 동맹국들의 부담도 늘어나겠지만, 아시아 동맹국들의 부담 역시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분담을 어떻게 하느냐가 논점이 되는데, 이는 단순히 한국 혼자만이 미국과 1:1협상을 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한국은 일본과 군사협력을 증진시키고 함께 미국과 협상에 나서야 한다. 즉 지금까지는 한국과 미국, 또는 미국과 일본 사이의 각각 협상이 이루어지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이런 방식보다는 삼국의 협력을 보다 긴밀하게 만들어 효율적인 군사배치를 이루어 군비를 합리적으로 분담해야 한다. 다만 이 부분은 정부의 협상력이 필요한 부분이라 할 것이다.

 

3. 동아시아 외교

 

유감스럽지만 한국은 일본과의 과거사를 운운할 시기가 아니며, 아베 정권의 시대착오적인 군국주의적 주장을 일정 지지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지게 된 군비부담이 결코 적지 않음을 생각하여 불평을 하겠지만, 그것이 한국에게는 오히려 좋을 것이다. 일본의 재무장 정도에 얼마나 한국이 찬성하느냐는 중국의 차후 행동에 따라 대응하면 된다. 중국이 더 많은 탄도미사일을 배치하고 더 많은 군비를 쓸 수록, 한국은 일본의 재무장에 더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한편 스스로도 군비를 증강시키고 미국에게 더 이익이 되는 행동을 취함으로서 중국의 오판을 막아야 한다.

 

만약 압력의 가중이 정말 심각해진다면, NATO와 같이 동아시아에도 새로운 군사동맹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동아시아의 친미 세력은 단지 미국과의 합동훈련만 할 뿐, 서로 협력하는 연합국이 아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더 많은 군사적 공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새로운 군사동맹은 한국의 외교적 선택지를 극도로 낮출 것이므로 가급적 반대하는 편이지만, 중국의 오판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다면 그런 것을 가릴 상황이 아니게 된다. 이 새로운 군사동맹이 가입국을 얼마나 늘이느냐가 중요하며, 한국과 일본, 호주를 중심으로 아마 필요하다면 필리핀이나 베트남과 같은 국가들도 가입시킬 수 있을 것이며, 정말 필요하다면 대만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은 한국이 중국에 맞서서 강경한 태세를 보여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국 정부는 군비를 강화하며 동시에 중국을 상대로는 평화공세를 펴야 한다. 이 평화공세는 필요하다면 다소간의 비굴함을 띠어도 상관없다. 한국이 중국에게 칼을 겨누고 있다고 베이징이 생각하게 해서는 안되며 중국이 실질적으로 힘을 빼는 제스쳐를 취한다면(이를테면 탄도미사일을 줄이는 식으로) 한국도 그에 호응할 것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베스트팔렌적 질서 하에서 주권국은 동등하지만, 현실이 그럴 이유는 없다. 생존이 달린 문제에는 당연히 기민함이 필요하다.

 

 

4. 북한 문제의 해결

 

북한 정권은 매우 교활하게 움직이고 있다. 근래에 와서 북한이 핵무기를 다시 개발하고 도발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은 그들이 국외정세를 제대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10년 전에 북한이 이같이 행동했다면 북폭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성장한 지금 북한 정권은 두 대국의 틈에서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북한의 이같은 생존전략은 이미 과거 소련, 중국, 미국 등 대국 사이에서의 외교에서 보여진 것이며, 그들은 그 고전적 전술을 다시 활용한 것이다. 요컨데 북한의 핵실험은 이같은 변화한 국제정세에 대한 기민한 대응의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행하게도 북한의 핵보유는 중국조차도 이익이 되지 않는 사안이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정권을 최소한 당분간은 온존한다는 전제 하에 중국의 묵인을 받아낼 가능성이 높다. 유관국으로는 러시아도 있지만 동북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은 제한적이고, 러시아측이 동북아에 가지는 관심은 그렇게 크지도 않다. 때문에 중국만 협력한다면 러시아의 찬반은 현재로선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한의 핵능력을 불가역적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정지로는 충분치 않다. 설령 지금 정지한다 하여도 이후 상황이 바뀌면 태세를 전환하여 핵을 개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던 그렇지 않던, 실제적으로 핵을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북한에겐 큰 이익이 된다. 미국이 강경하게 나오면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어떤 이유로 미국의 관심이나 여유가 줄었을 때 북한은 다시 핵을 개발할 것이다. 미국이 동북아시아에 지속적으로 군사적 힘을 강대하게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미국이 어떤 사유(이를테면 국제적으론 중동 문제가, 국내적으로는 산업의 재편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로 북한에 대한 압력을 일시적으로나마 중단하게 된다면, 북한은 다시 핵실험을 하여 데이터를 축적할 것이며, 한 발짝씩 나가며 적당한 기회에 핵을 보유하려 할 것이다.

 

또한 최종적으로, 북한 문제의 해결은 북한 정권의 소거로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의 반대가 아니라 중국의 찬성, 최소한 묵인하에 이루어져야 하며, 만약 중국의 정치상황이 어떤 이유로건 변화하지 않는다면 북한과의 통일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한국은 물론 통일을 하는 것이 좋지만, 통일이 오히려 위험을 증가시킨다면 그런 정책은 하지 않음이 낫다.

 

그러나 한국이 통일을 실질적인 정책으로서 추구하건 하지 않건, 북한은 장기적으로 안정된 정권이 아니며 어떤 방식으로선 붕괴하게 되어있다. 이 짧은 순간에의 대응이 동아시아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며, 남한 정부는 북한과의 평화 또는 북한과의 전쟁이라는 기존 냉전적 프레임을 벗어나, 신질서의 도래가 다가오고 있음을 인지하고 어떻게 대응할지를 생각해야만 한다.

 

 

5. 중국 문제의 해결

 

중국 문제는 남한이 어떻게 해서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중국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은, 중국 내부에서 새로운 기류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선 중국과 미국의 대결은 결코 중국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스스로 넘쳐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저런 식의 후진적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수 십년이 지나 현재의 중국 지도자들이 교체되고 신세대들이 정권을 잡으면 아마 그들의 생각에도 변화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 내에서도 북한을 버리고 한국을 새로운 동북아시아 파트너로 삼자는 주장이 존재한다. 이런 주장은 현재로선 소수파이지만, 장기적으론 다수파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로이 번영한다는 전제 하에서는 북한같은 불안정한 정권보다는 통일 한국이 중국에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의 문제로는 중국 내의 정세가 급변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중공의 강압적 통치에 인민들이 복종하고 있는 것은, 과거에는 인민의 수준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며 현재에는 공산당 치하의 경제발전이 그들에게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많은 중국인들은 실시간으로 자신들의 삶이 좋아짐을 체감하고 있으며 이는 그들이 중공의 통치를 받아들일 충분한 유인이 된다. 많은 중국인들은 자신들도 곧 이 경제성장의 사다리를 타고 뒤이어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성장은 생각보다 빠르게 멈출 것이고, 공산당 정부가 어떻게 노력하여도 해안의 부는 내륙까지 퍼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대분열은 중국의 내부 정세를 극히 혼란스럽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남한은 이 시기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 모두가 현실화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더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힘은 결국 미국에 미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중국이 가진 장점은 교육받고 유능한 다량의 노동력과 집약적인 산업지대이다. 그러나 이런 장점은 기술의 발전에 의해 희석될 것이다. 또한 중국의 인구는 점차 노화할 것이고 중국은 이들 인구를 감당하기 어려워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필자 생각으로는 중국이 이렇게 안정적으로 연착률할 가능성에 대해서 회의적이지만, 어지되었건 정세의 급변이 없더라도 중국이 보다 더 많이 온순해지게 될 시간은 언젠가는 온다. 그리고 중국이 더 이상 패권을 추구하지 않게 되었을 때가 이 위험한 병목구간을 빠져나온 때이다.

 

제 5장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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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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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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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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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갈등을 특정공간에 묶기는 어려운가.

사회과학/인터넷
이전에 필자는 여러 커뮤니티들에서 카페 내 갈등의 해결에 지쳐 마침내 아예 자리를 펴주고 '이 곳에서 싸우라'는 취지의 콜로세움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 운영진들이 그런 콜로세움을 세울 때 바란 것은, 그곳에서 모든 갈등이 해결되고, 설령 해결되지 않는다 해도 좋으니 커뮤니티에만 악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란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갈등은 결코 그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언제나 뛰쳐나왔으며 커뮤니티를 흔들고 운영진을 당황케 하였다. 기실 이는 당연한 결과로, 갈등이 그 안에 머무르리라 생각하는것은 매우 편의적 발상이었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갈등이 자연적으로 해결되는 일은 거의 없다. 갈등은 양측 중 한측이 파멸하거나, 혹은 갈등의 요소를 없애지 않고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갈등을 적절하게 조율하거나 필요에 따라서는 강압적으로 해결하는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양측은 곧 자신들의 자원을 총동원하기 시작할 것이며 이것에는 논설, 변론, 친분, 끈기, 호소 등의 수많은 기법이 사용된다.

이러한 일들은 매우 지치는 것이며,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갈등상황에 익숙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기에 그들은 갈등이 견디기 힘든 수준이 되었을 때, 공적인 운영진을 찾아서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거나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다른 회원들을 끌여들여서 지지를 부탁하며 대중에 호소한다. 이런 과정에서 운영진이 끼어들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해도, 회원들은 그들의 호소를 보고 갈등을 읽은 뒤 이에 대해 저마다 옳고 그름을 말하거나 갈등으로 인한 불편한 심정을 투덜거리며 커뮤니티 내에 이를 확산시키기 마련이다.

요컨데 갈등상황에 처한 회원들은 갈등의 해결을 위해서(또는 자신이 올바름을 증명하기 위해서) 언제나 주변으로부터 가능한 지지를 얻으려고 하면서 갈등에 대한 정보를 뿌리고, 상대도 이에 대응하여 새로이 해석된 말을 내놓는다. 그리고 회원들이 이에 관심을 가지며 몰려드는 것을 운영진이 차단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갈등에 대한 통제도 또한 실패하는 것이다.

결국 운영진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콜로세움내의 갈등은 결코 그 안에만 머물지 않게 된다. 만약 이를 해결하고 싶다면 콜로세움을 만들 것이 아니라 아예 주변으로부터 차단된 검은 상자를 만들고 그 안에 둘을 집어넣는 건데, 사실 이렇게까지 하느니 차라리 운영진은 애초부터 분쟁에 대한 해결 절차를 만들고 스스로 거기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다.

기실 운영진의 역할이 곧 갈등의 조율이고 자원의 배분과 정책의 선택인데, 이를 그만두는 것은 운영진으로서 본분을 어기는 일이다. 콜로세움은 결국 운영진이 더 이상 갈등을 처리하고자 할 의지가 상실되었음을 표시한 것일 뿐이다.

로마의 제국화

사회과학
이전에 다른 곳에 투고했던 글을 다듬어 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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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초기엔 왕정으로 시작했다고 추측되나, 7대 왕 타르퀸을 쫒아낸 뒤엔 공화국이 된다. 이 공화국은 분명 전제정은 아니지만 민주정이라 보기엔 다소 독특한 면을 보인다. 공화국의 주권자는 분명히 SPQR(Senatus Populusque Romanus : 로마 원로원과 시민)였지만 공화국의 정치체제는 그 실제적인 운영방식이나, 포함된 정신이 아테네의 그것과는 굉장히 다른 모양을 보인다.

아테네의 경우엔 누구도 참주가 되지 않도록 제어하기 위해서 주요 공무직은 모두 추첨과 같은 제도로 뽑았으며, 또한 거의 유일한 선출직인 10명의 장군들도 계속해서 민회의 견제를 받아야 했다. 페리클레스조차 그의 정적들에 의해서 그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민회로 하여금 하도록 해야 했다. 이러한 정치체제는 아테네의 민주제가 어떤 면에선 지독한 통제주의적인 면을 지녔다는것을 말해준다. 아테네는 경쟁을 제한했고, 뛰어난 자들이 등장하여 권력을 잡는것을 극히 경계하였다. 실제로 도편추방제 등으로 추방된 인물들은 거의 아무런 죄도 없는 경우가 많았으며, 너무 뛰어난 모습을 보인것 자체가 이유인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분명 아테네의 민주정을 유지시켜주는데엔 좋은 효과를 내었지만 아테네의 힘을 갉아먹는데에도 뛰어난 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입증해보였다. 결국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하고 패권을 상실하였고, 이후 다시 제국을 재건하는 등 나름 중흥은 했지만 어찌되었건 옛 황금시대를 되찾을 수 없었다.

한편 로마는 어떠한가? 로마도 분명 독재자의 출현을 굉장히 경계했다. 로마 공화정엔 비상시를 대비한 독재관(Dictator)이라는 직위가 존재하였고, 집정관 한명의 지목을 통해서 임명될 수 있었지만(그리고 반년의 임기 동안엔 누구도 그 명령에 거역할 수 없었지만), 로마는 정말 중요한 때가 아니면 결코 독재관을 뽑지 않았고, 뽑은 뒤에도 상당한 경계를 보였다. 하지만 로마는 아테네와는 분명 다른 면이 있었다. 로마는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지배계급이라면 명예를 위하여 공적을 보이는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개선식은 로마인이 누릴 수 있던 최고의 영광이었고 개선식이 벌어지는 동안 그 주인공은 신과 동급이 될 수도 있었다(물론 그의 옆에선 '너도 언젠가 죽을 인간임을 기억하라'는 경구를 읊는 노예가 있었지만).

이러한 로마인의 의식은 이후 로마가 패권을 잡는데에도 기여했다. 로마의 지배계급은 그 자신의 의무를 지나치리만큼 충실히 수행했고, 로마의 평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전쟁에서 패배하는것을 결코 용납하지도 않았고, 명예가 더럽혀지는 것을 죽음만큼이나 두려워했다(로마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굴욕은 기록말살형이었다). 이처럼 공화국의 체제는 단순히 공화를 보존하기 위한 통제 위주의 정책이 아니었다. 통제는 존재했으나 공화국은 항상 그 이상의 유연성을 위기 때마다 보여주었다. 로마인들은 일의 균형을 잘 알았고 그에 맞추어서 공화국을 운영했다.

이와같은 공화정의 체제는 삼니움 전쟁에서, 그리고 피로스 전쟁에서 그 능력을 보여주었다. 원로원은 뛰어난 결단력과 패배를 용납하지 않는 단호함으로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였고, 그 힘으로 포에니 전쟁에서도 승리하였다. 포에니 전쟁은 당시 지중해의 패권을 결정하는 대전으로써, 로마 공화정의 역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도 세계 최고의 명장중 하나라 평가받는 한니발과의 전쟁에서 로마는 10만 이상의 병력을 잃었고, 전선에 나간 집정관의 수도 50명이 넘으며 그중 10명 이상이 전사했다. 칸나에 회전에서만도 출전한 원로원 의원 50여명의 대다수가 사망했다. 하지만 로마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고, 자마 회전에서 한니발을 패배시켰으며, 결국 3차 포에니 전쟁때 카르타고를 완전히 멸망시킴으로써 로마 공화국은 절정의 시대에 올랐다.

하지만 정작 공화정이 최고조에 오른 그때, 몰락의 기미는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포에니 전쟁으로 인해 로마는 세계의 최강국으로 떠올랐다. 로마는 지중해 각지에 그 속주를 늘려갔으며, 각지의 속주에선 엄청난 부가 쏟아지고 있었고 이 부는 로마의 최상층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효율적인 라티푼디움에서 쏟아지는 농작물은 이와 대조적으로 중산층을 몰락시켰고, 이에 로마는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을 보였다. 부유층 지역엔 수도관을 지나온 물이 흘렀지만 빈민가엔 쓰레기와 분뇨가 넘쳐났고 죽어나간 빈민들은 쓰레기에 그대로 같이 파묻혀서 처리되었다. 이것은 그리스에서도, 로마에서도 일찍이 일어난 적이 없던 상황이었다. 노예로 전락하지 않는 이상 시민이 그렇게까지 몰락하는 사건은 거의 없었다. 오로지 포에니 이후의 로마에서만 나타나는 괴상한 현상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로마의 무한 레이스에서 실패한 자의 운명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로마의 냉혹한 경쟁 체제는 탈락자를 결코 보듬어주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의 위험성을 파악하고 다시 로마를 포에니 전쟁 이전으로 돌리려 한 것이 그라쿠스 형제이다. 그들은 지나치게 양극화된 사회를 어떻게 해서든 통제해보려 했다. 중산층을 키우기 위한 여러가지 정책이 제출되었다. 이것은 지나치게 극소수 상층부에 집중된 부를 최대한 아래로 내려보내려는 행동이었다. 당연하게도, 대다수가 그 상층부에 속하던 원로원 의원들은 이러한 법안에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라쿠스 형제는 사실상 원로원과의 정치투쟁을 벌여야 했고, 법안을 가결시키기 위해서 민회를 장악하여 원로원에 대항하도록 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미 모두가 아는 바일 것이다. 로마는 과거로 돌아가기를 거부했다.

사실 하층민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지닌것은 귀족 계급도 마찬가지였다. 리키니우스 법 이후 평민에게도 주요 요직에 진출할 기회가 열렸으며, 로마에선 부모의 업적이 자식에게 계승되지도 않았다. 출생의 특권이 아예 없던건 아니지만, 평민도 그 출중한 능력을 증명할 기회를 얻으면 원로원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귀족도 몇대 동안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면 완전히 잊혀질 수 있었다. 마리우스와 키케로는 평민 계급으로써 각각 군무와 변설로 원로원에 들어갔다. 공화정 초기부터의 뿌리깊던 귀족가문인 율리우스 씨족은 수부라에서 살아야 했다.

로마에서 출세하고자 한다면 명예와 권위를 얻어야 했다. 명예는 언제나 존중되었으며, 뛰어난 공적을 세운 자는 그에 마땅한 대접을 받았다. 이것은 로마를 지중해 전체를 아우르는 패권국으로 이끄는 힘이었으나, 그 힘은 필연적으로 내부에 제정으로 향하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포에니 전쟁 전까지는 극단적으로 계층이 양극화되지도 않았고, 중산층은 자신들의 재산으로 무장하였기에 장군이 그들을 사병화시킬 위험도 낮았다. 로마 군단은 분명 질서가 있었고 그 충성의 대상은 SPQR이었다. 하지만 포에니 전쟁 이후 중산층은 몰락했고, 양극화의 결과 로마에선 군인의 대상층이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수가 얼마되지 않는 최상층만 전쟁터에 나갈 수는 없다.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계층을 무장시킬 수밖에 없었고, 이는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을 통하여 실현되었다.

이런 경쟁에서 낙후하지 않기 위해서 로마인들은 어렸을때부터 가혹한 교육을 받았다(여유있는 집안일수록 더더욱!). 아이들은 공화국의 미덕에 따른 강인한 육체를 위해서 어렸을때부터 신체를 단련했으며(여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을 다루는 법이나 수사학, 그리스 철학 등을 교육받았다. 로마의 가부장적인 시스템도 이러한 경향을 과열시켰다. 아버지는 때에 따라선 가족의 생사여탈권도 쥐고 있었고, 아이들이 아버지에게 항명하는 사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가혹한 시스템 덕분에 영아가 태어나서 성인이 될때까지 살아남는 비율은 절반도 되지 못했다(뭐 사실 이것은 시스템의 문제도 있지만 워낙 그 당시의 위생 수준이 그다지 좋지 못했던 것도 한 몫을 했다).

이런 경쟁 시스템의 결과로써 로마는 그야말로 거인이라 칭할만한 사람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평민으로써 입지적인 군사 공적을 세운 마리우스, 그리고 그 부관이었지만 마리우스를 뛰어넘은 독재자이자 자칭 행운아(Phelix)이던 술라, 술라의 지지자이자 그 시대를 이끌던 변설가 호르텐시우스, 그를 꺾은 고대 수사학의 완성자 키케로, 로마 최대의 부자였으며 또한 배후의 음모가였던 크라수스, 로마 최고의 장군중 하나였던 폼페이우스, 뛰어난 문장가였으며 또한 정치가이자 장군이었던 카이사르, 그에 필적하는 가면의 정치가였던 옥타비아누스와 아그립파, 이에 대항한 안토니우스 등의 수많은 사람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것은 공화라는 이념에는 위협이 되었다. 공화국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체제이다. 그리고 집정관과 원로원, 속주 총독, 군대의 사령관은 모두 이 공화국이라는 위대한 체제의 부품일 뿐이다. 분명 로마는 지나치게 강력한 자를 견제할망정, 그러한 사람이 받는 명예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화국의 일부로서만 인정되어야 했다. 영웅은 좋은 것이나, 영웅으로서 유지되지 않는 것이 공화국이었다. 그러나 기원전 1세기의 어느 순간, 로마인들은 그들의 영광스러운 체제가 핵심적인 몇명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강요받고 있었다.

극단적인 경쟁은 극단적인 양극화를 불러왔다. 극단적인 양극화라는 것은 승리자와 패배자가 극단적으로 나뉜다는 뜻이다. 승리자들은 언제라도 그들이 추락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 승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최상층의 계급들도 계속해서 자신들끼리 경쟁하기 시작했다. 경쟁이 과열될수록 패배자의 운명도 가혹해졌으니, 이러한 경쟁에서의 승리는 원로원에서의 변설로만 될 것이 아니었다. 군대끼리의 충돌이 시작되었고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은 군대를 장군의 사병으로 만들었으며, 내전으로 향하는 가능성을 열었다. 이후 이어지는 내전은 기존의 모든 권위(성역이던 로마, 원로원의 권위)를 무너뜨렸다. 술라의 로마 시(市) 점령은 이후 100년간 시작될 본격적인 내전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내전이 시작되면 경쟁자는 내전의 참가자로 압축된다. 내전은 모든 경쟁자가 합의하거나, 혹은 모든 경쟁자를 물리친 단일한 승리자가 등장할때까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에도 언제든지 다시 한번 내전이 시작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공화국의 극단적 경쟁시스템은 궁극적으론 오로지 한명의 승리자를 탄생시키게 될 것이었다. 이제 그 승리자가 내전의 종식을 선언했을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였겠는가?

첫번째 내전의 승리자인 술라는 스스로가 공화정의 지지자였기도 했고, 공화국을 무너뜨릴 야심은 없었다. 하지만 그 후계자들도 그러라는 법은 없었다. 술라의 다음 세대의 승리자, 율리우스 가문의 카이사르는 스스로 종신 독재관에 취임함으로써 왕(Rex)으로써의 길을 열어젖혔다. 카이사르가 동방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전제적인 체제를 도입하려 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는 암살로 저지되었지만 공화정의 붕괴는 이미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로마의 공화정, 그 자체의 역동적인 힘이 가르키는 방향은 분명했다. 3번째 내전이 종결되었을때, 오로지 단일한 승리자, 위대한 옥타비아누스는 B.C.E 27년, 존엄한 자(Augustus)의 칭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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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긴 내전을 거쳐 권력을 잡았다. 때문에 어째서 내전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도 뛰어난 판단을 가졌다. 그는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라는 칭호를 통해 권위를 획득하고, 개선식을 황제에게만 허용함으로서(황제가 아니면 아무리 잘난 공적을 세웠어도 약식 개선식에만 만족해야 했다) 군인 영웅이 나타나는 것을 견제했다. 아우구스투스가 다음 후계자를 지명하는 데에 혈족을 중시한 것도 그러한 맥락이 어느 정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신격(Divus) 카이사르의 아들로써 스스로 신의 아들이었고, 그 신성성이 피로써 승계된다면 제국의 안정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이후 이어지는 네로까지의 황조를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라 한다.

로마의 군사 전략도 바뀌었다. 공화정 시기에는 정복이 일상화된 일이었고 장군들은 자신의 공로를 높이기 위해서, 혹은 부하들의 약탈과 정착을 위하여 계속하여 정복지를 늘여나가야 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했고, 폼페이우스는 미트라다테스를 제거하였다. 옥타비아누스는 해적을 토벌했고, 크라수스와 안토니우스는 파르티아 정벌에 나섰다. 이러한 전략은 아우구스투스때에 전면적으로 바뀌어 이전의 공격 주의보다는 방어 위주의 전략이 되었다. 라인 강에서부터 도나우 강 하구까지가 제국의 북쪽 국경선으로 바뀌었고, 로마의 군단 기지들은 이 선을 따라 늘어섰다. 비록 아우구스투스 황제시대에 게르만 공략이 한번 시행되긴 했지만 다음 대의 티베리우스 황제때 로마군은 철수하고 이후 브리튼 섬의 점령 등을 제외하고는 로마의 영토는 큰 변동 없이 진행되었으며, 공적을 쌓을 기회도 줄어들었다.

제정이 성립된 이후, 경쟁은 부분적으로 제한되었다. 군권은 어찌되었건 황제가 지녔고 이것은 황제의 칭호중 하나인 임페라토르(Imperator)를 통해 증명되었다. 새 황제가 즉위하면 로마의 군단들은 모두 황제를 향해 충성 서약을 했다. 하지만 분명 이것은 공화정에 비해선 뛰어난 인재의 배출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는다. 주권자가 아무리 SPQR이라지만 원로원은 황제보다 비중이 낮아졌고, 그저 평화와 안락에 젖게된다. 경쟁의 제한은 초기엔 제한적이었지만 갈수록 심각해졌다. 로마 공화정의 붕괴가 포에니 전쟁의 승리와 패권에서 예상되었듯이 제국의 붕괴는 제정의 전성기이던 피우스 황제때에 예견되었다. 피우스 황제는 5현제의 4번째 황제로써 그의 시대는 정말 무난하고 제국이 잘 돌아가던 시대다. 그는 20년의 치세동안 수도 로마에서 벗어난 일이 거의 없었지만 제국은 계속해서 번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내부에 내포한 위험은 점차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간수의 법칙. Zimbardo, 1971

사회과학/심리학
이전에 깨진 유리창의 법칙에서도 지적했듯이 사람은 환경에 따라 태도와 행동이 바뀐다. 짐바르도는 이에 더 나아가서 보다 다양한 환경을 만들고 이에 들어간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이 바뀌는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실험목적

당연한 이야기지만 교도소는 참으로 비인간적인 환경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감옥은 왜 그렇게 험악한 환경인가? 범죄자가 가는 곳이라서 험악한 자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가? 아니면 환경이 사람을 그처럼 험악하게 만들기 때문일까? 직접적인 환경은 사람의 행동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 것인가?

실험방법

실험자들은 대학의 심리학 건물 지하에 가짜 감옥을 만들기로 했다. 그들은 복도에 10미터짜리 섹션을 구획하여 조립식 벽으로 감방을 만들었다. 실험실을 개조하여 가로 약 2미터, 세로 3미터의 조그마한 감방 세 개를 만들어 쇠창살을 달고 검은 색 칠을 한 문을 만들어 달았다. 또한 벽장을 처벌 독방으로 만들었다.

이 감옥에 들어갈 사람들은 두 종류였다. 하나는 간수로서 책임지고 감옥의 질서를 지키는 자들이다. 다른 한 쪽은 죄수로서 간수들에 의해 구금되며 통제당하는 자들이다.

참여자들은 지역 신문의 광고(미국에선 심리실험의 참여자들을 이런 식으로 모집하는 일이 자주 있다)를 통해 지원한 사람들이었다. 지원자 75명 중 심리테스트를 통해 보다 정상적이고 건전하다 판단되는 21명을 선발했다.

이들 중 무작위로 뽑힌 절반이 간수가 되었다. 그들에겐 제복과 검은 안경이 배당되었다. 남은 절반은 죄수가 되었다. 짐바르도는 팔로 알토(샌프란시스코 실리콘 밸리의 부촌) 경찰서의 경찰관들에게 이들을 각자의 집에서 '체포'하여 수갑을 채우고 경찰서로 연행하게 했다. 그런 다음 엉터리 죄목을 씌우고 눈을 가린 채 심리학부 지하실에 있는 감방으로 데려왔다. 그 다음에 죄수들의 옷을 벗기고 수인 번호가 앞귀로 적힌 죄수복을 입혔다. 이 죄수복은 구금되어 있는 동안 그들을 식별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관찰자들은 이후 약 2주간 이 가상의 교도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할 것이다.

실험결과

엄밀히 말해 이 실험은 제대로 끝마쳐지지 못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실험은 어디까지나 실험으로 끝나야 하며 실험실 바깥으로 나가면 바로 이전과의 연계가 끊어져야 했다. 특히나 실험자들은 결코 심리 실험에 영향을 받아선 안된다. 그들은 방관자로서 실험의 결과를 객관적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험은 어느 순간 실험실을 벗어났다.

간수들 중 일부는 이전에 자신을 평화주의자로 자처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은 단시간에 혹독한 감독관의 역할에 빠져들었다.

첫날 밤 그들은 새벽 2시에 죄수들을 깨워서 팔굽혀펴기를 시키고 벽에 일렬로 정렬시킨 다음 다른 과업을 수행시켰다. 이튿날 아침 죄수들이 자신들의 번호를 찢어내고 감방 안에 바리케이트를 치며 반발하자, 간수들은 그들을 발가벗겨 소방전을 뿌렸으며 반란의 지도자를 독방에 처넣었다.

"우리는 종종 권력을 남용했죠. 예를 들면 그들의 면전에서 고함을 질렀거든요."

간수 중 한 사람이 회상했다.

"그건 완전히 공포 분위기였어요."

실험이 진행되어 감에 따라 간수들은 조직적으로 점점 더 잔인하고 가학적이 되었다.

"우리가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것은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변화의 강도와 속도였습니다." 간수들은 죄수들에게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도록 시키고 수갑을 채우고 머리에 종이 봉투를 뒤집어씌운 채 복도를 행진하도록 시켰다.

또 다른 간수는 회상했다.

"지금의 내 행동과는 완전히 정반대였어요. 난 적극적으로 잔인한 것들을 고안해냈던 것 같습니다."

서른여섯 시간이 지나고 난 뒤 한 죄수는 히스테리 증상을 보여 곧 석방시켜야만 했다. 그 뒤 '극도의 정서적인 우울증 증세인 울음과 분노와 격렬한 불안' 등으로 4명 이상이 석방되었다(이들은 실험참여비도 받지 않고 떠났다).

짐바르도는 원래 이 실험을 2주간 계속하려고 의도했었다. 그러나 그는 엿새 만에 실험을 중단했다.

실험이 끝나고 난 뒤 한 죄수는 말했다.

"이제야 저는 '내 머릿속에 있는 게 나야'라고 아무리 생각하려고 해도 죄수로서의 제 행동을 통제할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다른 죄수는 말했다.

"저는 그때까지 '이게 나야'라고 불렀던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요. 이 감옥에 자원해서 나를 집어넣은 사람(왜냐하면 그것이 감옥이었고 아직까지도 내개는 감옥이니까요. 난 그게 실험이라고나 시뮬레이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은 나와는 전혀 별개였으며, 마침내 내가 그 사람이 전혀 아닐 때까지 나로부터 멀어져 갔습니다. 나는 그저 416번 이었어요. 내가 바로 그 숫자였고, 사실상 416번이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고 있더군요."

갈수록 교도소 내의 상황이 격해지자 실험자들은 수인들을 통제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논했다. 이 때 문을 열고 들어온 다른 실험자가 말했다.

'자네들 뭐하는거야? 이게 무슨 실험이지? 목적이 바뀌었나?'

그 순간 실험실 내의 실험자들은 깨달았다.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해야 할 자신들조차도 본래 실험의 목적을 잊고 가혹한 조치들을 당연시 여기고 있던 것이다. 짐바르도는 우리의 내적 기질은 특정한 상황에 의해 통제될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여기서 핵심 단어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짐바르도가 말하는 상황이란 우리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외부적인 요소가 아니다.

다시 말해 부모가 우리를 키운 것이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가 다닌 학교가 어떤 종류의 학교인지, 우리 친구들이 어떤 사람인지, 또는 우리 이웃이 우리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와 같은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은 의심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의 요점은 훌륭한 학교와 행복한 가정과 좋은 이웃 출신인 정상적인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단지 그들이 처한 상황의 세부적인 것들을 직접적으로 약간만 변화시키는 것으로도 그들의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 Zimbardo, 1969

사회과학/심리학
사람들은 스스로 주변 환경에 영향을 끼치거나 이를 바꾸기도 하지만 반대로 환경에 맞추어 유연성있게 대처하기도 한다. 특히 밀그램의 실험은 권위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분명히 보여준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다만 후속실험에서도 밝혀졌듯이, 권위있는 연구자를 두명으로 늘이고 둘 사이에 논쟁을 일으키면 스스로의 판단으로 참여자는 전기충격을 가하는 것을 중지했다. 이처럼 권위와 명령이 없을때 상당수의 사람은 직접 올바른 판단에 따라서 타인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실 권위와 명령의 중요도가 높은 군대 등의 조직에 족한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들의 사회생활에서 명령으로 인해 타인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거나 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물론 이런 경우도 있긴 하다 )

일반적인 경우 국가와 학교, 그리고 가정은 아이들이 태어날때부터 시작해서 도덕과 윤리를 가르친다. 전쟁 등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당연히 살인은 처벌받고 그 외 타인에게 해를 끼칠 만한 일은 금지되거나 최소한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는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르며 왜 악행에 빠지는가?

지금부터 여러분이 볼 실험은 이와 관련이 있다. 감옥환경의 실험과 저서 루시퍼 이펙트(Lucifer Effect)로도 유명한 스탠포드 대학의 짐바르도(Philip George Zimbardo)교수는 특정한 상황 하에서는 명령과 권위가 없이도 '자발적으로 비윤리적 행위를 자행할 수 있음'을 테스트할 것이다.

이론적 가설

도둑질은 일반적으로 금지된다. 그 이유는 그것이 해당 재화를 소유한 자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소유권이 불명확하거나 방치되었다면 당연하게도 해당 재화를 손에 넣거나 최소한 보호하려 하진 않을 것이다.따라서 만약 길에 놓여진 차에 방치되었다고 판단할 만한 정보를 흘린다면 사람들은 이에 대한 침해를 시작할 것이다.

실험방법

짐바르도는 다소 치안이 허술한 골목에 보닛을 열은 두 대의 자동차를 두었다. 요소는 모두 통제되었으며 양쪽 차의 보존 상태는 동일했다. 그리고 이제 한쪽 차의 창문을 살짝 깨서 변수에 변화를 주었다. 실험자들은 앞으로 1주일간 양쪽 차에 일어날 변화를 관찰할 것이다.

실험결과

창문을 그대로 두고 보닛만 열어둔 자동차는 1주일 뒤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창문이 깨진 자동차에는 분명한 변화가 일어났다. 불과 10분만에 배터리가 없어졌으며 타이어가 사라졌다. 이후 낙서, 투기, 파괴가 연이어 벌어졌으며 실험이 종료된 1주일 후에는 고철이 되어 폐기처분 직전의 상태로 전락했다.

이것은 유리창이 깨진 것을 통해서 해당 자동차가 보다 허술한 관리 하에 놓여있다고 행인들이 추정하게 만들었다고 추측된다. 처음엔 보다 눈에 띄지 않는 손상이 가해졌으나 해당 차가 버려진 상태라는것을 확인시키는 증거(낙서, 파괴흔적)가 늘어갈수록 차에 가해지는 행위도 더욱 심해졌다.

이를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의 법칙이라고 한다.

후속실험

네덜란드 그로닝겐 대학원생 케스 카이제르가 이끈 연구팀은 주간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 최근호에 실린 논문을 통해 주위 환경이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 깨진 유리창 이론을 뒷받침했다.

연구팀은 6가지 상황을 놓고 주변 환경이 깨끗한 경우와 벽에 낙서가 된 지저분한 경우에 사람들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했다.

첫번째로 쓰레기통이 설치되지 않은 좁은 골목길에서 사람들이 자전거 손잡이에 부착된 광고전단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관찰할 결과, 골목길 벽이 단일 색으로 깔끔하게 칠해진 공간에서는 광고전단이 길바닥에 버려진 비율이 33%였다.

반면, 골목길 벽에 낙서가 된 공간에서는 광고전단 10장 가운데 7장(69%)이 길바닥에 버려졌음을 연구팀은 확인했다. 골목길 벽에는 "낙서금지"라는 경고문구가 쓰여 있었으며 이러한 경고문에도 불구하고 낙서가 된 곳에서는 보통 사람들도 준법의식이 약해졌음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또 주위가 말끔하게 정돈된 곳에 설치된 '깨끗한' 우체통과 쓰레기가 널브러진 곳에 설치된 '깨끗한' 우체통, 지저분한 환경 속의 '낙서투성이' 우체통을 각각 준비한 후, 이곳에 각각 5유로 지폐가 든 편지봉투를 걸쳐놓았다. 편지봉투는 수신자 주소가 적히는 부위의 투명비닐을 통해 봉투 안에 5유로 지폐가 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행인들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이를 집어갈 수 있었다.

관찰 결과, 편지봉투를 집어간 비율이 깨끗한 주위 환경의 깨끗한 우체통의 경우는 13%였으나 지저분한 환경의 깨끗한 우체통에서는 25%로 높아졌고 지저분한 환경의 낙서투성이 우체통에서는 27%로 더 높아졌다. 연구팀은 6가지 상황 관찰에서 모두 유사한 패턴이 나타났다면서 깨진 유리창 이론은 현실적으로 타당성을 갖는다고 결론내렸다.

사회적용

라토가스 대학의 겔링 교수는 이 ‘깨진 유리창 이론’에 근거하여 뉴욕 시의 지하철 흉악 범죄를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낙서를 철저하게 지우는 것을 제안했다. 낙서가 방치되어 있는 상태는 창문이 깨져있는 자동차와 같은 상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교통국의 데빗 간 국장은 겔링 교수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치안 회복을 목표로 지하철 치안 붕괴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낙서를 철저하게 청소하는 방침을 내세웠다.

범죄를 줄이기 위해 낙서를 지운다는 놀랄만한 제안에 대해서 교통국의 직원들은 우선 범죄 단속부터 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낙서가 범죄율의 상승에 크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에겐 그다지 와닿지 않는 이야기였는 모양이다. 직원들은 범죄를 막기 위해선 단속을 강화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간 국장은 낙서를 지우는 것을 철저하게 행하는 방침을 단행했고, 지하철의 차량 기지에 교통국의 직원이 투입되어 무려 6000대에 달하는 차량의 낙서를 지우는 작업이 수행되었다. 낙서가 얼마나 많았던 지, 지하철 낙서 지우기 프로젝트를 개시한 지 5년이나 지난, 1998년, 드디어 모든 낙서 지우기가 완료되었다. 낙서 지우기를 하고 나서 뉴욕시의 지하철 치안은 어떻게 되었을까? 믿기 어렵겠지만, 그때까지 계속해서 증가하던 지하철에서의 흉악 범죄 발생률이 낙서 지우기를 시행하고 나서부터 완만하게 되었고, 2년 후부터는 중 범죄 건수가 감소하기 시작하였으며, 94년에는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뉴욕의 지하철 중 범죄 사건은 놀랍게도75%나 급감했던 것이다.

그 후, 1994년 뉴욕 시장에 취임한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은 지하철에서 성과를 올린 범죄 억제 대책을 뉴욕시 경찰에 도입했다. 낙서를 지우고, 보행자의 신호 무시나 빈 캔을 아무데나 버리기 등 경범죄의 단속을 철저하게 계속한 것이다. 그 결과, 범죄 발생 건수가 급격히 감소했고, 마침내 범죄 도시의 오명을 불식시키는데 성공했다.

철학적 질문?

사회과학/철학
필자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선생이 교실에서 학생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어떤 무인도에서 나무가 쓰러졌다. 그런데 아무도 그걸 모르고 알지 못한다면 그 나무가 쓰러진걸 쓰러졌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학생들이 열심히 철학적인 토론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 답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쓰러졌다'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定義 : definition)했는지가 곧 답이다. 요컨데 '그것을 인지하는 자가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를 '쓰러졌다'라는 기표(記標) 안에 정보로서 삽입하면 되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일반적인 경우 '쓰러졌다'라는 단어는 상황의 모든 정보를 내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두고 쓸모없는 토론이 오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시에 이에 대해 미리 정의하면 의미없는 토론이 없을 것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에 그것을 정의하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이것을 필요로 할 일이 그다지 없기 때문이다. 심술굳은 선생이나 멍청한 철학자가 쓸데없는 질문을 던지지만 않는다면 일상생활에서 인지되지 않은 상황에 대해 말할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언어란건 정보의 전달이 목적이며 가급적 간결할수록 좋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의미를 무한히 확장해나가다간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생각을 하는 법을 키우자는것은 좋다. 그러나 생각을 해도 무작정 아무렇게나 한다고 해서 훈련이 되는게 아니다. 생각에도 절차가 있고 방법이 있다. 아무런 의미없이 토론하게 하는것으로 사고가 유연해질거라 보는것은 아무렇게나 운동하면 몸이 강해질거라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말도 안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