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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운영론 (3)

사회과학/인터넷
일이란 덜어내려고 하여도 오히려 보태지고,
보태려고 하여도 덜어지는 법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가르칠 때는,
또한 이 뜻으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老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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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는 기본적으로 개방되어있기에, 서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배경이 다르면 입장이 다르며 입장이 다르면 의견이 다르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모이면 반드시 충돌이 생길 수 밖에 없으며 이는 커뮤니티의 안정을 해치는 주요한 요인이기에 이러한 충돌이 생기지 않도록 운영진은 충분한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환경 조성에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잘못된 가치을 없애고 올바른 가치를 세우는 일이다. 커뮤니티에는 흔히 네임드Named라고 불릴 수 있는 회원들이 있다. 이들은 커뮤니티에 오랜 기간동안 머문 고참일 수도 있고, 커뮤니티원들이 원하는 정보나 자료를 제공하는 사람일수도 있으며, 혹은 많은 학식을 지녀 뛰어난 논변을 지닌 자들일 수도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충분히 그들이 타 회원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쉽게 해준다.

이처럼 인터넷의 세계에서 권력은 그 정보의 격차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외국어를 읽고 번역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 외국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우세한 권력을 지니게 되며 어떤 고급 정보를 많이 아는 사람은 이러한 정보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사람에 대해 또한 우세한 권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실제로 웹하드나 P2P등을 둘러보면 자신이 지닌 수많은 자료를 가지고 '받아가고 싶으신 분은 친추해주세요. 자주 오실수록 친구 등급을 높여드려요'라고 하는 꼴을 볼 수 있다. 심지어 DC인사이드의 누드갤에 가보면 누드사진을 올리고 이것으로 '친한 분들에게만 보여드려요'라며 수많은 사람들을 차등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기껏해야 인터넷 동호회에서 권력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기묘한 이야기이나, 현실이 그러한걸 어쩌겠는가 (...)

어떤 공동체이건 권력과 권한, 압력은 오로지 운영진의 공적인 집행에 한정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회원들이 사적으로 타 회원에게 압력을 가하여 활동에 지장을 주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권력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으며 또한 이러한 미묘한 흐름을 일반 회원이 인지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야한다. 물론 이러한 권력을 독점시행하는 운영진들이 수준 미달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운영자란 자들이 그 쯤 되는 상황이라면 애초에 네임드들의 존재라던가 하는것을 논하기 이전에 이미 커뮤니티 자체가 약간 맛이 가 있을것이다 (...)

이러한 이유로, 커뮤니티에서는 이러한 권력격차를 해소하거나 최소한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른바 네임드들이 그 위신으로 타 회원을 핍박하게 두어서는 안되며 자료와 정보에 대한 제한을 최대한 해제하여 이러한 정보의 격차를 줄여야만 한다. 만약 이를 무시하면 회원 사이의 등급이 계급으로 바뀔것이며 이렇게 되면 커뮤니티는 어느 순간부터 불공정한 계급제로 향하게 되고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패쇄적인 분위기로, 편안한 분위기에서 불편한 분위기로 바뀌게 된다.

더 많이 아는, 혹은 더 많은 자료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 자체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한 회원들이 운영진에 포함되는 것 또한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을 찬양하는 분위기는 최대한 낮추어야 한다. 많은 자료를 가져오는 회원이 찬양되면 그렇지 못한 회원은 비난받을 것이며, 오래 활동한 회원이 찬양되면 새로 들어오는 회원이 없을것이며, 또한 많은 글을 번역하는 회원이 찬양되면 외국어를 모르는 회원은 무시될 것이다.

말을 잘 하는 것, 외국어를 잘 하는 것, 자료를 잘 모으는 것, 오래 활동한 것 등은 분명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을 따라야 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람을 잘 이끌고 그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데려가는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잘 하는 사람을 수영강사로 배치한다면 이것은 딱히 잘된 선택이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식이 많다거나 말을 잘 한다거나 등의 기준으로 권한이 부여된다면 그릇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만약 이로 인해 문제가 생긴다면 이는 잘못된 명분을 따르기 때문이다.

잘못된 명분이란 무엇인가? 명분은 곧 대의大義이다. 의義란 옳은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를 따르기에 대大를 붙인다. 그러나 세상에는 올바른 것 처럼 보이나 그렇지 않은것이 존재한다. 이처럼 올바른 것처럼 보이되 이를 따를 때 수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나아간다면 그것을 거짓된 명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야 할 것을 따른다면 이는 괜찮다. 그러나 잘못된 것이 올바름을 가장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현혹한다면 이는 곤란하다.

이러한 잘못된 명분은 쉽게 보이는 잘못보다 더욱 그 폐해가 크다. 불은 뜨겁기에 어린아이라도 쉽게 그 위험을 알고 접근하지 않을 것이나, 물은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 놀아도 얼핏 안전해 보이기에 친근히 놀다 빠져죽는 일이 생긴다. 이처럼 잘못된 것이 빤히 보인다면 수많은 사람들은 이를 피할 것이며 다가가지 않을 것이기에 그로 인한 피해는 적으나, 얼핏 잘못되어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것이 옳은 줄 알고 따를 것이기에 그로 인한 피해는 크다.

때문에 운영진들은 이러한 잘못된 명분을 타파해야한다. 그러나 잘못된 명분을 얕보아서는 안된다. 잘못된 명분이라 하여도 그것이 사람들의 머리속에 박힌 이상 그들은 그 명분을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애초에 키배를 잘 하는 사람이나 아무 이유 없이 격식을 요구하는 자들이 운영진에 오르는 것에 대해서 한번의 의문도 가지지 않은데 어쩌겠는가). 이러한 잘못된 명분에 사로잡힌 이들을 설득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설득하려 함은 상대의 의견에 반대한다는 것이고 그러면 설득 대상자들은 이를 자동적인 반탄으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말했듯이 잘못된 명분이라 해도 그것은 명분이며 때문에 주의해서 다루어야 한다. 명분이 다는 아니지먄 명분에서 밀리면 할 말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거의 절대적인 권한을 지닌 운영자들도 명분적으로 밀리는 상황에서 상대에게 함부로 그 권한을 행사하면 순식간에 운영의 신뢰성이 파괴되기에 결코 이를 무시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운영진조차 손쓸 수 없는 일이 생기는 까닭은 운영진이 명분의 전쟁을 택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행동이 지지받는다는것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운영진 또한 사람이기에 자신의 행동을 명분으로 정당화하며 그것을 통해서 지지를 얻고자 한다. 그러나 아직 충분한 명분이 없는 상태에서* 이를 세우려 하는것은 잘못된 명분을 타자화하여 드러나게 하는것이며, 이는 하나의 명분을 다른 하나의 명분으로 상대하는 꼴이니, 명분의 싸움을 일으키는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명분은 대의고, 많은 사람들이 옳다 하여 반박하지 못하면 그것이 대의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이러한 분쟁에서는 결국 많은 회원들을 납득시키고 설득시키는 자가 대의를 쥐게 되나, 이러한 대의명분이 반드시 운영진에게 있으리란 법은 없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하란 법 또한 없다. 이는 없는 것으로 일을 하려 함이니 실패하더라도 놀랄 일이 아니다.

승리할 수 있는 전장을 골라서, 승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싸우는 것은 전략가로서 기본적인 일이다. 자신의 강점으로 적의 약점을 치는 것과 같으니 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운영진 또한 지니지 못한 것으로 일을 진행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지닌 것으로 일을 진행해야 한다. 운영진이 반드시 가지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권한이다. 운영진이 운영진으로 있는 한 권한은 빼앗길 수 없다. 권한으로 일을 하여 명분을 숨기면 질 수가 없으며 일이 막힐 수도 없다. 그렇기에 운영진들은 커뮤니티에서 명분의 전쟁을 해서는 안되며 이러한 방향으로 끌고가서도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