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o

원말 농민봉기의 배경

중국中國/명明
 잘 알려졌듯이 주원장은 빈농출신 황제이다. 그가 어렸을 때 관리들은 수탈과 직위보존에만 급급하였고 농민들을 배려하지 않았다. 주원장은 농민들을 착취하면서 스스로는 고고한 척 하는 신사층과 관료들에 대해 깊은 원한을 지닐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신사층을 기반으로 하는 봉건제국의 황제로 즉위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당시 그가 거병할 수 있게 했던 홍건적(紅巾賊)의 배경에 대해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원 조정이 세력을 잃고 점점 쇠퇴해갈 무렵,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 종교들이 있었다. 당시 하층사회에서는 크게 세가지의 종교를 믿었는데, 백련교白蓮敎와 미륵교彌勒敎, 그리고 명교明敎였다. 서계西系 홍군을 일으킨 팽형옥彭瑩玉은 미륵불彌勒佛과 명왕明王을 신으로 받들었다. 이들은 주로 회서에서 포교했기 때문에 남파南派라고도 한다. 이른바 북파北派라고 불린 또 다른 계통은 몇 대에 걸쳐 백련교의 교주를 맡아온 한가韓家의 한산동韓山童이다.

 본래 명교의 연원은 페르시아의 마니가 창시한 마니교(摩尼敎, Manichaeism)이다. 마니교는 조로아스터교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는데, 이를테면 이종삼제二宗三際가 그것이다. 마니교는 세상을 명明(=선善)과 암暗(=악惡)의 두 세력으로 보았으며 이것이 이종이다. 삼제는 초제初際, 중제中際, 후제後際의 세 시대다. 초제에선 천지도 없고 명과 암만 존재한다. 중제에서는 암의 세력이 발전하자 명왕明王이 출세出世하여 암을 물리친다. 후제에 이르면 명은 대명大明으로 돌아가고 암은 적암積暗으로 돌아간다. 이 셋이 삼세로서, 초제는 과거를, 중제는 현재를, 그리고 후제는 미래를 의미한다. 명교는 당나라때 중국에 들어왔으며 구세적인 교리로 인해 하층민들이 주로 믿었다. 당 무종武宗때 사회 혼란을 우려하여 금지되자 이후 비밀종교화되어 여러 교리가 뒤섞이며 혼합된다.

 미륵교는 이름 그대로 미륵불(彌勒佛, Maitreya)을 중심으로 하는 교이다. 미륵은 불교에서 말하는 미래불로 본래 국왕이었다. 여래 생전에 옆에서 설법을 듣기도 하였으며,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이후 56억 7천만년이 되었을 때 도솔천에서 이 세상으로 하생(下生)한다고 한다. 미륵은 하생하기 전까지 도솔천(兜率天)의 보살로 머물면서 중생을 교화하고 있다한다. 본래 불교의 성격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미륵이 현세하는 순간 모든 중생이 구원받는다는 이야기는 세상살기가 어렵고 팍팍했던 하층민들에게 상당히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백련교는 아미타불(阿彌陀佛, Amitabha)을 공양하는 종교이다. 아미타불은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이나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이라고도 하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의 부처로 중생을 서방극락정토에 왕생시키는 공덕이 있으며 불법이 실현된 정토에서 지금도 늘 설법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아미타불의 속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종교는 신도들에게 선행을 쌓으면 사후 서방정토의 백련지白蓮池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쉽게(?) 구원을 약속하는 교리는 어려운 현실을 피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는 희망의 소리였다.

 이 세 종교는 시작은 달랐으나 모두 현세부정적이며 이 세계를 말세로 보았다는 특징 때문에 현실에 불만이 많았던 하층민들에게 빠르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이후 오대五代와 송대宋代를 거쳐 서로 혼합되어 구별이 어려워진다. 이들 종교는 원대元代에 이르면 조정이 무력해진 틈을 타 비밀결사를 구성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며 구세를 약속하며 수많은 농민들을 포섭하는데에 성공하였다.

 원말에 일어난 각지의 반란군들은 크건 적건 대부분 이 비밀결사들과 연관이 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북파 홍건적의 수장 한산동은 스스로 송 휘종(宋 徽宗)의 8세손이라 주장하며 명왕明이라 칭했다. 명왕 한산동은 지정 11년에 죽었지만 그 아들인 한림아(韓林兒)가 홍건의 장군 유복통(劉福通)에 의해 황제에 즉위하여 소명왕(小明王)이라 칭한다. 그리고 다음해인 지정 12년, 호주(濠州)에서 곽자흥(郭子興)이 거병한다. 주원장은 그 부하로 들어가 곽자흥의 양녀와 결혼하며 두각을 나타낸다. 미래의 홍무황제(洪武皇帝)는 여기에서 군벌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많은 동북아인들에게 군웅할거의 시기로 가장 유명한 때는 누가 뭐라해도 소설 삼국지연의의 배경이 되는 후한말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나오는 자들 중 신분이 빈천한 자는 상당히 드물다. 심지어 허저조차도 호족출신으로 유력자의 집안이었다. 원말 농민봉기도 점차 시간이 지나면 호족들이 중심이 되어가지만 그럼에도 원 조정을 향해 최초의 칼날을 들이밀었던 홍건적은 후한말의 황건적과는 다르게 이후 수십여년간의 혼란기동안 천하의병의 명분이 되었다. 곽자흥은 물론이고 주원장조차도 명분상으로나마 소명왕을 의병의 수장으로 인정했었다.

 그렇지만 이들 종교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현세부정적인 종교나 사상들은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동안에만 존재할 수 있으며 만약 어떠한 이유로건 현 질서가 붕괴되고 있다면 반드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질서의 사상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현세가 부정됨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신질서에선 그 가치를 잃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세의 파괴에 기여할 수는 있었으나 구체제 이후 생겨날 신질서에서 배제되고 몰락할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

 농민봉기가 일어나고 조정이 약하되자 각지에서 할거가 시작되고 군웅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 중 상당수는 지역의 유력한 호족들(이나 그들의 지원을 받는 자)로서, 명교가 아니라 자신이 유력자로 있는 지역을 기반으로 거병한게 대부분이다. 비록 소명왕이 천하의병의 명목상 수장이었다 하나 시간이 갈수록 반란군들의 비밀결사적 색체는 점점 옅어졌고 군웅들은 빈민들이 아닌 유력 호족들의 지원을 받으며 병마와 군량을 모았다.

 지정 23년, 남쪽에서 오나라를 세운 장사성(張士誠)이 여진(呂珍)을 보내 유복통과 소명왕을 공격했다. 당시 금릉(후일의 남경)을 차지하고 세력을 키우던 주원장은 군대를 이끌고 한림아를 구출하여 저주(滁州)로 맞아들였으나, 불과 3년후 쓸모없어진 소명왕은 주원장이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로 사망했다. 그로부터 십여년 뒤 각지의 군벌을 물리친 주원장은 남경에서 대명제국을 개창하여 초대 황제로 즉위했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홍무 3년, 칙명에 의해 명교와 미륵교, 백련교는 좌도左道로 규정되어 금지되었다.

자유와 질서

사회과학/철학
자유라는 말은 흔히 통제와 반대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요컨데 자유는 오로지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으며 통제로부터 벗어나야만 가능하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집에서 나와 길거리를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게 하려면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이를테면 행인을 습격하는 강도라던)가 제거되어야만 한다. 자유는 방치함에서 탄생하는게 아니라 그것을 유지하고 지켜나가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자유라는 말은 '누군가(혹은 무엇인가)'가 구속받지 않음을 의미하며, 여기서 그 누군가는 곧 주체(주관:主觀)이다. 정치사상이나 사회학에서 그 주체는 인간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보면 자유는 인간의 본성(마음)대로 행동함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요컨데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마음이 규정한 방향으로 행하는 것이 곧 자유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는 결코 무질서일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라는 단어의 기의가 곧 엔트로피의 특정 방향으로의 역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생명은 작동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 유기체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며 이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인간은 설계도에 쓰여진 대로(질서있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만들어져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자유와 통제는 상충하는게 아니라 완벽한 동일선상에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통제를 거부하는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통제나 절제가 방향이 잘못되어 필요하지 않은 곳에 적용되었거나 혹은 본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으나 결과가 실패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이를테면 맨 처음의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는 권리'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행인을 습격하는 강도의 통제'를 다시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범법자가 처벌을 받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통제당한다 느끼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도 해를 당할 수 있고 자기가 남을 해입힐 수도 있는 사회보다는 자기도 당하지 않고 자기가 남을 당하게 할 수도 없는 사회를 더 선호한다(당연하게도 내전중인 국가나 무정부상태인 국가는 여행이나 이민에서 기피 대상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보행자의 통행을 막거나 집에서 나서지 못하게 한다면 이 경우엔 대부분의 사람이 반발하며, 자신들의 당연한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느끼며 답답해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를테면 먹고 살 길)이 막힌다면 그저 답답해 하는 수준을 넘어서 국가와 사회를 적대하기까지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통제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다. 결국 자유는 인간이 하려고 하는 것을 하게 해주는 것이며 그러지 않으려는 것을 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러한 원리를 모르는 자들이 그저 '사회엔 질서가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필요하지도 않고 비용만 들며 누구에게도 도움되지 않는 통제를 강요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당연히 사회엔 질서와 통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어떠한 종류의 질서와 어떠한 종류의 통제도 허용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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