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란 무엇인가
사회과학/심리학한때 MSN메신져에 '심심이'라는 봇을 제공하는 사이트가 있었다. 이 봇은 흔히 말하는 채팅 프로그램의 일종으로 말 그대로 심심할 때, 말을 걸면 대답을 해주는 그런 봇이었다. 메신져에 친구가 없다면 꽤 할 만한 일이긴 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 심심이와의 대화를 길게 지속하지 못했다. 심심이는 그저 유저가 거는 말을 어떤 장치에 따라 단어를 재배열하고 대답하는 방식으로 작동했으며, 유저들은 심심이와 두세마디만 나누어도 그 어색함을 바로 느낄 정도였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유저들이 직접 심심이에게 특정 말에 대한 응답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시스템이 도입되었으나 그 결과는 오히려 더 나쁘게 되었다. 심심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사람이 많다보니 한마디 한마디를 할 때 마다 유저들이 입력한 서로 다른 말투가 튀어나온 것이다. 이처럼 말할 때마다 말투가 바뀌는 이 괴이한(…) 화자는 그다지 감동스러운 결과물은 아니었다.
심심이가 나오기 수십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은 컴퓨터가 언젠가 사람과 대화할 날이 올거라 기대했으며 실제로 수많은 프로그램이 제작되어 사람과 대화(주로 채팅 위주였지만)할 수 있도록 되었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들의 대부분은 잊혀지거나 폐기되었으며 가끔씩 옛 자료실의 무덤에서나 발견되는 유물로 전락하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이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교훈을 주었다. 소통과 대화는 단순히 단어와 글자, 소리의 모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화 A.I.에 나오는 인간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로봇들, 역시 영화 매트릭스Matrix에 등장하는 인간을 점령하여 마음을 조종하는 기계들, 일본의 만화책 쵸비츠ちょびっツ, Chobits에 나오는 아름다운 로봇 컴퓨터와 인간 사이의 사랑은 말 그대로 영화와 만화속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컴퓨터는 다음과 같은 아주 간단한 (정말로 간단한) 대화조차 하지 못한다.
"우리 이제 그만 사귀자."
"어떤 자식이야?"
Steven Pinker,《Language instinct》
이 짧은 대화는 참 간단해보인다. 그러나 저 대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프로세스가 있었을 것인가?
그렇다면 대체 소통이란 무엇인가. 스피커와 마이크를 각각 한 쌍 준비하고 서로 소리를 나오게 하며 이를 마이크로 녹음할 수 있다고 해서 소통이라 부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저 소리의 집합을 더한 것이지 이를 해석하지도, 정보를 이해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해석할 수 없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주옥같은 말이라도 그저 노이즈(noise:잡음)에 지나지 않는다.
해석과 이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글 등을 읽다가 한 글자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그 글자가 단순히 선의 집합체로 보이며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 생긴다. 흔히 게슈탈트 붕괴라고 알려진 이 현상은 통일성의 상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게슈탈트 붕괴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전제(통일성)를 잃게 되어서 생기는 것이다.
어떤 글자를 볼 때 그 글자들의 의미가 이해되려면 이들 선의 집합을 특정한 절차에 걸쳐 처리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그 프로세스를 우리는 기본적으로 켜놓고 있으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책을 보면 바로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프로세스(당연한 전제)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면 프로세스가 작동을 멈추게 되고 이것이 바로 게슈탈트 붕괴이며 통일성의 상실이다.
수신자의 첫 단계가 바로 이것이다. 타인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소리를 그대로 인식하는게 아니라, 그 의미를 프로세스에 따라 해석해내는 것을 말한다. 손상되지 않은 소리파일을 가지고 있는 컴퓨터가 말을 더 잘 기억하고 이해한다고 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인간은 대화중 화자의 음성을 75%정도밖에 듣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문장의 해석만으로 대화가 끝나진 않는다. 그로서 얻은 정보를 평가 분석하여 자기 자신을 확장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같은 거절이라도 남의 말을 듣고 이해하여 이를 자신이 가진 상식에 비추어 생각한 뒤에 옳지 않다 생각하여 거절하는 것은 소통이 이루어진 것이다. 남의 말을 듣고 이해는 했으나 혼자의 아집으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하는것은 소통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요컨데 누군가에게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게 아니라 '당신은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다. 남의 마음을 느끼는 능력은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는 데에 반드시 요구된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없다는건 그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 중 하나를 잃고 있다는 말일 수 밖에 없다.
소통이란건 수신修身을 기본으로 한다. 대화로 타인을 깨우치기 어려운 이유는 소통이 일방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무력과는 달리 박수와 같이 양 손 사이 최소한의 맞춤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한 쪽이 높은 관용과 이해도를 지녀서 다른 쪽을 이끌어줄 수 있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도 상대가 최소한의 스스로를 평가하는 능력을 지녀야만 가능하다. 상대의 마음을 느끼는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런 능력이 없다면 어쩔 방법이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 심심이와의 대화를 길게 지속하지 못했다. 심심이는 그저 유저가 거는 말을 어떤 장치에 따라 단어를 재배열하고 대답하는 방식으로 작동했으며, 유저들은 심심이와 두세마디만 나누어도 그 어색함을 바로 느낄 정도였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유저들이 직접 심심이에게 특정 말에 대한 응답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시스템이 도입되었으나 그 결과는 오히려 더 나쁘게 되었다. 심심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사람이 많다보니 한마디 한마디를 할 때 마다 유저들이 입력한 서로 다른 말투가 튀어나온 것이다. 이처럼 말할 때마다 말투가 바뀌는 이 괴이한(…) 화자는 그다지 감동스러운 결과물은 아니었다.
심심이가 나오기 수십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은 컴퓨터가 언젠가 사람과 대화할 날이 올거라 기대했으며 실제로 수많은 프로그램이 제작되어 사람과 대화(주로 채팅 위주였지만)할 수 있도록 되었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들의 대부분은 잊혀지거나 폐기되었으며 가끔씩 옛 자료실의 무덤에서나 발견되는 유물로 전락하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이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교훈을 주었다. 소통과 대화는 단순히 단어와 글자, 소리의 모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화 A.I.에 나오는 인간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로봇들, 역시 영화 매트릭스Matrix에 등장하는 인간을 점령하여 마음을 조종하는 기계들, 일본의 만화책 쵸비츠ちょびっツ, Chobits에 나오는 아름다운 로봇 컴퓨터와 인간 사이의 사랑은 말 그대로 영화와 만화속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컴퓨터는 다음과 같은 아주 간단한 (정말로 간단한) 대화조차 하지 못한다.
"우리 이제 그만 사귀자."
"어떤 자식이야?"
Steven Pinker,《Language instinct》
이 짧은 대화는 참 간단해보인다. 그러나 저 대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프로세스가 있었을 것인가?
그렇다면 대체 소통이란 무엇인가. 스피커와 마이크를 각각 한 쌍 준비하고 서로 소리를 나오게 하며 이를 마이크로 녹음할 수 있다고 해서 소통이라 부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저 소리의 집합을 더한 것이지 이를 해석하지도, 정보를 이해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해석할 수 없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주옥같은 말이라도 그저 노이즈(noise:잡음)에 지나지 않는다.
해석과 이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글 등을 읽다가 한 글자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그 글자가 단순히 선의 집합체로 보이며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 생긴다. 흔히 게슈탈트 붕괴라고 알려진 이 현상은 통일성의 상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게슈탈트 붕괴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전제(통일성)를 잃게 되어서 생기는 것이다.
어떤 글자를 볼 때 그 글자들의 의미가 이해되려면 이들 선의 집합을 특정한 절차에 걸쳐 처리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그 프로세스를 우리는 기본적으로 켜놓고 있으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책을 보면 바로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프로세스(당연한 전제)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면 프로세스가 작동을 멈추게 되고 이것이 바로 게슈탈트 붕괴이며 통일성의 상실이다.
수신자의 첫 단계가 바로 이것이다. 타인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소리를 그대로 인식하는게 아니라, 그 의미를 프로세스에 따라 해석해내는 것을 말한다. 손상되지 않은 소리파일을 가지고 있는 컴퓨터가 말을 더 잘 기억하고 이해한다고 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인간은 대화중 화자의 음성을 75%정도밖에 듣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문장의 해석만으로 대화가 끝나진 않는다. 그로서 얻은 정보를 평가 분석하여 자기 자신을 확장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같은 거절이라도 남의 말을 듣고 이해하여 이를 자신이 가진 상식에 비추어 생각한 뒤에 옳지 않다 생각하여 거절하는 것은 소통이 이루어진 것이다. 남의 말을 듣고 이해는 했으나 혼자의 아집으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하는것은 소통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요컨데 누군가에게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게 아니라 '당신은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다. 남의 마음을 느끼는 능력은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는 데에 반드시 요구된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없다는건 그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 중 하나를 잃고 있다는 말일 수 밖에 없다.
소통이란건 수신修身을 기본으로 한다. 대화로 타인을 깨우치기 어려운 이유는 소통이 일방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무력과는 달리 박수와 같이 양 손 사이 최소한의 맞춤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한 쪽이 높은 관용과 이해도를 지녀서 다른 쪽을 이끌어줄 수 있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도 상대가 최소한의 스스로를 평가하는 능력을 지녀야만 가능하다. 상대의 마음을 느끼는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런 능력이 없다면 어쩔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