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o

커뮤니티 운영론 (4)

사회과학/인터넷
"아무리 나쁜 사례라도, 그것이 시작된 계기는 훌륭한 것이었다."

- Gaius Julius Caesar


-------------------------------------------

많은 커뮤니티에서 흔히 범해지는 오류는, 회원들에게 예를 강제하려 하는것이다. 예란 무엇인가? 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규약이다. 대화를 할 때 정해진 순서나 문법을 지키지 않으면 상대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그렇기에 언어는 문법을 지켜야한다. 예라는것은 이러한 의사표시의 문법이다. 어떠한 언어가 존경을 표하는 것인지, 어떠한 행동이 애도를 표하는 것인지, 어떠한 접촉이 친분을 표하는 것인지, 이러한 것들을 표시하는 방법이 바로 예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라는 것은 언어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는 곧 습속이며 몸에 베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문화이다. 아무리 외국어를 잘 배워도 막상 외국에 나가면 해매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와 습속이 몸에 베지 않아서이며, 자칫 상대를 불쾌하게 하는 무례한 일을 저지르는 것은 그 나라의 예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라는것은 그 성장과 함께 심신에 스며드는것이다.

흔히 운영진들은 이러한 사실을 생각치 않고 글을 쓰기 전에 한번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생각을 하여 글을 쓰는것은 그것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다면 예라 할 수 없다. 애초에 예라는것은 가르치려고 해서 가르칠 수 있는게 아니다. 한번 말해보자. 어떤 글이 상대를 편하게 하는 글인가? 공손한 글은 거리감을 줄 것이며 지나치게 숙이는 글은 불쾌감을 줄 것이다. 딱딱한 글은 읽는 자의 마음을 굳게 만들 것이며 스스럼없는 글은 개인의 거리를 침해당한 느낌을 줄 것이다. 이는 억지스럽게 하는 소리가 아니다. 예의바른 듯 하나 기분나쁜 글이 있으며 옳으나 받아들일 생각이 없게 만드는 글이 있다.

이처럼 예란 의사의 표시이며 그 언행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르치는것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가능한 일이지 커뮤니티 운영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예를 지키라는 강요는 아무리 해봐야 소용이 없다. 이는 운영진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운영자라는 입장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하기에 생기는 문제이다. 아무리 잘 달리는 사람도 말보다 빠르게 멀리 뛸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커뮤니티 내의 예와 덕은 커뮤니티 내에서 시행 가능한 내용으로 한정되어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커뮤니티에는 증명 불가능한 도덕적 우월자의 집단과 개선 불가능한 도덕적 파산자의 집단이 생기게 된다. 증명이 불가능하다 함은 무엇 때문인가? 뛰어난 예를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증명이 불가능하다 한다. 개선이 불가능하다 함은 무엇 때문인가? 가르칠 수 없으며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개선이 불가능하다 한다. 이러한 예는 넘치고도 넘친다.


이를테면 어떤 커뮤니티에서 불법소프트웨어 사용자들에 대한 차별을 가한다고 해보자. 커뮤니티 운영자들은 불법소프트웨어 사용자들을 가려내거나 혹은 가려진 자들을 제거할 수 있는가? 당연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커뮤니티 운영자들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할 방법이 없는데도 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가능에도 불구하고 정품 사용자에게 도덕적 우월성을 부여하여 이를 시행하려 하면 반드시 회원들은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자를 특정할 수 없으므로) 불분명한 추측으로 누군가를 단정하여 공격할 것이며, 심지어 불법 소프트웨어를 쓰는 자들도 이에 동참하거나 최소한 반대하지 않고 지켜볼 것이다.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 아무리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자를 없애고자 해도 이를 구별할 방법이 없으면 근절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를 강제적으로 시행하는 커뮤니티에선 뒤에서 불법을 행하고 앞에서 법을 찬양하는 자들이 양산될 것이다. 시행한다 하고 시행할 수 없으니 신뢰와 권위는 추락한다. 그 결과 정작 목적인 불법 소프트웨어 근절에는 아무런 도움도 없이 커뮤니티는 뒤와 앞이 불일치하는 가식만이 존재하게 된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새나 개로 변신할 수 없다. 만약 이러한 일을 하려고 한다면 비웃음을 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강제할 수 없는것을 강제하려 함이 이와 같고 커뮤니티 내에서 할 수 없는것을 커뮤니티 내의 방침으로 삼음 또한 이와 같다.

커뮤니티 운영론 (3)

사회과학/인터넷
일이란 덜어내려고 하여도 오히려 보태지고,
보태려고 하여도 덜어지는 법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가르칠 때는,
또한 이 뜻으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老子』
-------------------------------------------

커뮤니티는 기본적으로 개방되어있기에, 서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배경이 다르면 입장이 다르며 입장이 다르면 의견이 다르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모이면 반드시 충돌이 생길 수 밖에 없으며 이는 커뮤니티의 안정을 해치는 주요한 요인이기에 이러한 충돌이 생기지 않도록 운영진은 충분한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환경 조성에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잘못된 가치을 없애고 올바른 가치를 세우는 일이다. 커뮤니티에는 흔히 네임드Named라고 불릴 수 있는 회원들이 있다. 이들은 커뮤니티에 오랜 기간동안 머문 고참일 수도 있고, 커뮤니티원들이 원하는 정보나 자료를 제공하는 사람일수도 있으며, 혹은 많은 학식을 지녀 뛰어난 논변을 지닌 자들일 수도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충분히 그들이 타 회원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쉽게 해준다.

이처럼 인터넷의 세계에서 권력은 그 정보의 격차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외국어를 읽고 번역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 외국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우세한 권력을 지니게 되며 어떤 고급 정보를 많이 아는 사람은 이러한 정보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사람에 대해 또한 우세한 권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실제로 웹하드나 P2P등을 둘러보면 자신이 지닌 수많은 자료를 가지고 '받아가고 싶으신 분은 친추해주세요. 자주 오실수록 친구 등급을 높여드려요'라고 하는 꼴을 볼 수 있다. 심지어 DC인사이드의 누드갤에 가보면 누드사진을 올리고 이것으로 '친한 분들에게만 보여드려요'라며 수많은 사람들을 차등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기껏해야 인터넷 동호회에서 권력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기묘한 이야기이나, 현실이 그러한걸 어쩌겠는가 (...)

어떤 공동체이건 권력과 권한, 압력은 오로지 운영진의 공적인 집행에 한정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회원들이 사적으로 타 회원에게 압력을 가하여 활동에 지장을 주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권력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으며 또한 이러한 미묘한 흐름을 일반 회원이 인지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야한다. 물론 이러한 권력을 독점시행하는 운영진들이 수준 미달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운영자란 자들이 그 쯤 되는 상황이라면 애초에 네임드들의 존재라던가 하는것을 논하기 이전에 이미 커뮤니티 자체가 약간 맛이 가 있을것이다 (...)

이러한 이유로, 커뮤니티에서는 이러한 권력격차를 해소하거나 최소한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른바 네임드들이 그 위신으로 타 회원을 핍박하게 두어서는 안되며 자료와 정보에 대한 제한을 최대한 해제하여 이러한 정보의 격차를 줄여야만 한다. 만약 이를 무시하면 회원 사이의 등급이 계급으로 바뀔것이며 이렇게 되면 커뮤니티는 어느 순간부터 불공정한 계급제로 향하게 되고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패쇄적인 분위기로, 편안한 분위기에서 불편한 분위기로 바뀌게 된다.

더 많이 아는, 혹은 더 많은 자료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 자체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한 회원들이 운영진에 포함되는 것 또한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을 찬양하는 분위기는 최대한 낮추어야 한다. 많은 자료를 가져오는 회원이 찬양되면 그렇지 못한 회원은 비난받을 것이며, 오래 활동한 회원이 찬양되면 새로 들어오는 회원이 없을것이며, 또한 많은 글을 번역하는 회원이 찬양되면 외국어를 모르는 회원은 무시될 것이다.

말을 잘 하는 것, 외국어를 잘 하는 것, 자료를 잘 모으는 것, 오래 활동한 것 등은 분명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을 따라야 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람을 잘 이끌고 그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데려가는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잘 하는 사람을 수영강사로 배치한다면 이것은 딱히 잘된 선택이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식이 많다거나 말을 잘 한다거나 등의 기준으로 권한이 부여된다면 그릇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만약 이로 인해 문제가 생긴다면 이는 잘못된 명분을 따르기 때문이다.

잘못된 명분이란 무엇인가? 명분은 곧 대의大義이다. 의義란 옳은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를 따르기에 대大를 붙인다. 그러나 세상에는 올바른 것 처럼 보이나 그렇지 않은것이 존재한다. 이처럼 올바른 것처럼 보이되 이를 따를 때 수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나아간다면 그것을 거짓된 명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야 할 것을 따른다면 이는 괜찮다. 그러나 잘못된 것이 올바름을 가장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현혹한다면 이는 곤란하다.

이러한 잘못된 명분은 쉽게 보이는 잘못보다 더욱 그 폐해가 크다. 불은 뜨겁기에 어린아이라도 쉽게 그 위험을 알고 접근하지 않을 것이나, 물은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 놀아도 얼핏 안전해 보이기에 친근히 놀다 빠져죽는 일이 생긴다. 이처럼 잘못된 것이 빤히 보인다면 수많은 사람들은 이를 피할 것이며 다가가지 않을 것이기에 그로 인한 피해는 적으나, 얼핏 잘못되어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것이 옳은 줄 알고 따를 것이기에 그로 인한 피해는 크다.

때문에 운영진들은 이러한 잘못된 명분을 타파해야한다. 그러나 잘못된 명분을 얕보아서는 안된다. 잘못된 명분이라 하여도 그것이 사람들의 머리속에 박힌 이상 그들은 그 명분을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애초에 키배를 잘 하는 사람이나 아무 이유 없이 격식을 요구하는 자들이 운영진에 오르는 것에 대해서 한번의 의문도 가지지 않은데 어쩌겠는가). 이러한 잘못된 명분에 사로잡힌 이들을 설득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설득하려 함은 상대의 의견에 반대한다는 것이고 그러면 설득 대상자들은 이를 자동적인 반탄으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말했듯이 잘못된 명분이라 해도 그것은 명분이며 때문에 주의해서 다루어야 한다. 명분이 다는 아니지먄 명분에서 밀리면 할 말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거의 절대적인 권한을 지닌 운영자들도 명분적으로 밀리는 상황에서 상대에게 함부로 그 권한을 행사하면 순식간에 운영의 신뢰성이 파괴되기에 결코 이를 무시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운영진조차 손쓸 수 없는 일이 생기는 까닭은 운영진이 명분의 전쟁을 택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행동이 지지받는다는것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운영진 또한 사람이기에 자신의 행동을 명분으로 정당화하며 그것을 통해서 지지를 얻고자 한다. 그러나 아직 충분한 명분이 없는 상태에서* 이를 세우려 하는것은 잘못된 명분을 타자화하여 드러나게 하는것이며, 이는 하나의 명분을 다른 하나의 명분으로 상대하는 꼴이니, 명분의 싸움을 일으키는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명분은 대의고, 많은 사람들이 옳다 하여 반박하지 못하면 그것이 대의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이러한 분쟁에서는 결국 많은 회원들을 납득시키고 설득시키는 자가 대의를 쥐게 되나, 이러한 대의명분이 반드시 운영진에게 있으리란 법은 없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하란 법 또한 없다. 이는 없는 것으로 일을 하려 함이니 실패하더라도 놀랄 일이 아니다.

승리할 수 있는 전장을 골라서, 승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싸우는 것은 전략가로서 기본적인 일이다. 자신의 강점으로 적의 약점을 치는 것과 같으니 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운영진 또한 지니지 못한 것으로 일을 진행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지닌 것으로 일을 진행해야 한다. 운영진이 반드시 가지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권한이다. 운영진이 운영진으로 있는 한 권한은 빼앗길 수 없다. 권한으로 일을 하여 명분을 숨기면 질 수가 없으며 일이 막힐 수도 없다. 그렇기에 운영진들은 커뮤니티에서 명분의 전쟁을 해서는 안되며 이러한 방향으로 끌고가서도 안된다.

정부의 국채 개입

사회과학/경제학
얼마전에 정치 여권에서 30조 이상의 국채를 발권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를 들으니까 떠오르는게 있어서 올려둔다.


http://www.kh-web.org/fin/

위는 일본 정부의 부채량을 보여주는 사이트이다. 저 사이트의 신빙성은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 일본 정부가 막대한 부채를 진것은 사실이다. 물론 일본 관료들이 그저 돈쓰는걸 좋아해서(물론 그런 이유도 없지는 않겠지만) 저런 빚이 형성된 것은 아니다. 정부가 국채를 뿌려야 할 상황이었다는 경제적 위기감이 어느정도 뒷받침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정부의 국채 발행은 반세기 이상의 경제학적 이론 기반이 있다.


경제에 대한 정부 개입은 본래 빅토리아 시대 말기까지도 용납되지 않던 이야기이다. 1차 대전의 통제경제가 비록 빛을 발하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쟁이라는 상황의 여파였고 대전이 끝나자마자 다시 각국의 정부는 그 역할을 최소화하도록 권고받았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하려고 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신고전학파의 믿음이 깔려있었는데 그 이론(물론 학자에 따른 다소의 논점 차이는 있다)에 따르면 정부가 손을 놓고 있어도 공급과 수요는 서로가 서로를 촉진하므로 가만히 놔두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일시적인 불일치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일치되는 상황에 이를 거이며, 경제는 계속하여 성장할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1929년 대공황의 발생으로 막을 내렸다. 신고전학파의 이론(당시엔 경제학 그 자체였다)에 의하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공황상태가 발생한 것이다. 기존의 이론에 따르면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거대한 공급과 수요 사이의 불일치가 드러나면서 순식간에 자본주의 세계는 심각한 균열에 직면해야 했다. 이러한 현상을 처음 예지한것은 멜서스이지만 이론적인 정합성으로 보면 마르크스가 그 시조이다. 마르크스의 주장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자본가들은 무언가 제품을 생산해야 이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냥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이 생기지 않는다. 경쟁력을 위해서는 제품의 가격을 낮추거나 질을 높여야(혹은 둘다 해야)만 한다. 그러한 방법을 위해서는 생산 기술을 발전시켜야하고,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생산과정에 노동자를 빼고 기계를 도입한다거나 아니면 아예 자동화된 공장(노동자는 최소화되므로 인건비가 줄어든다)을 건설한다거나, 내구력이 좋은 제품(예를 들면 한 10년을 사용해도 멀쩡한 밥솥이라거나)을 생산한다거나 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 모든것은, 결과적으로 수요를 감소시킨다. 노동자가 해고되면 그는 수입이 줄어들었으므로 소비량을 최대한 줄이고 절약하려고 할 것이며, 질 좋은 물건은 작정만 한다면 수십년 써먹을 수도 있기에 새로운 물품을 구입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은 공급의 증가와 함께 수요의 감소를 발생시키므로 공급의 성장을 수요가 따라가지 못하며, 이러한 격차는 불황(심하면 공황)을 불러오게 된다. 그러나 그 당시엔 세이의 판로설(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 - 물론 이때가 제국주의 시대인것을 감안하면 판로설도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편일지도) 등이 그러한 마르크스의 예언을 억눌렀으며, 실제로 주기적인 불황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신고전학파에 도전할만한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어찌되었건 유럽 경제는 발전하고 있었기에).

하지만 대공황은 신고전학파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공황은 그것이 1차 대전 이후 9년간의 황금기 뒤에 일어난 타격이었다는 점, 그리고 이 공황이 결과적으로 베르사유 체제를 파멸시키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보이지 않는 손은 파산하였고 한편에서는 생산량이 넘쳐서 팔지 못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그 물건들을 구입할 돈이 없어서 절망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상황에서 신고전학파는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했다. 이 때 등장한것이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로 추앙받는 케인즈이다. 그는 마르크스가 예언한 것과 비슷한 발견을 하였는데 이것에 대해서도 짧은 소개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

경제가 성장하는 상황(즉, 호황기)에서는 수요와 공급 모두 증가한다. 공장주는 계속해서 물건을 생산하려 할 것이며, 생산을 늘리는 방법으로는 공장 설비를 증가시키는 방법, 기술을 발전시키는 방법 등이 있지만 이것들은 단시일에 확보되지 않으므로 노동자를 추가 투입하는 방식(요컨데 8시간 돌리던 공장을 12시간 돌린다던가)을 사용하여서 생산을 증가시킬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고용이 늘어나므로 노동자들은 보다 많은 봉급을 받게 되고, 그들은 보다 많은 소비를 한다. 이것은 결국 수요를 증가시키며 증가된 수요를 위해서 공급도 늘어나는 선순환이 반복됨으로써 호황은 이어지는데 이것이 끝없이 계속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소비엔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노동자들의 소비액의 절대량은 늘어나겠지만 봉급이 늘어나면서 총 봉급에서 소비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오히려 낮아진다.

요컨데 노동자가 100만원을 받고 있었다면 그는 70만원을 소비하고 30만원은 저축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런데 호황이 계속되면서 노동자의 봉급이 150만원으로 늘었다. 그러면 그는 기존 비율(70%)대로 105만원을 소비하고 나머지 45만을 저축할까? 처음엔 그럴지도 모른다. 아마 노동자는 봉급이 100만원일때 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을 구입할지도 모른다. 늘어난 봉급으로 냉장고를 샀을지도 모르고 TV도 구입했을 것이다. 어쩌면 컴퓨터를 구입했을 수도 있고 책상을 들여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들을 다 들여놓고 나면 더 이상 뭔가 사고 싶어도 살 것이 없다(물론 쓰고자 하면 당연히 쓰겠지만 우리는 이 노동자가 정상적 판단력을 지녔다는걸 전제로 생각해두자). 아마 이 노동자는 그 뒤로는 80만원(약 53.3%)을 소비하고 70만을 저축할 것이다.

이것은 수요의 증가보다 공급의 증가가 더 빠르게 일어나는 원인이 된다. 신고전학파는 이 상황에서는 저축액의 공급이 늘어나므로 금융시장에서 이자율이 낮아지고 결국 저축된 돈이 투자를 일으킨다고 하였다. 이 말은 공급이 더욱 늘어난다는 이야기고 이것이 공급가격을 낮추므로 수요가 늘어난다는 이야기였겠지만, 당연하게도 생산 원가엔 한계가 존재한다. 때문에 이런 호황이 계속된다면 균형 가격이 생산 원가보다 더 낮은 위치에 존재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이러한 불일치가 덮어질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물품을 생산해도 팔리지 않게 될 것이며 자본가들은 생산을 중단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호황기의 종말과 불황(나아가 공황)의 시작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론을 통해서 케인즈는 호황이 계속되는것은 불가능하며 수요와 공급은 일시적인 상황을 제외하고 항상 일치한다는 신고전학파의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물론 이러한 공황도 계속되지는 않는다. 불황기에는 수요와 공급 모두가 줄어들면서 호황기에 일어난것의 반대 현상이 발생한다. 즉, 수요보다 공급이 더 빠르게 줄어들면서 어떠한 순간에 이르면 다시 수요와 공급은 일치하며 불황은 끝나고 다시 회복기가, 이어서 호황이 도래한다(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순환경제현상이다). 이처럼 케인즈의 이론은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공격은 결코 아니다. 또한 케인즈는 이 순환경기 현상에 대한 간단한 해결책도 함께 제시했다. 상기의 이론에 따르면, 불황기의 원인은 공급을 수요가 따라가지 못하는 데에서 발생한다 것이다. 원인을 알았으므로 해결책도 알아낼 수 있다. 누군가가 대규모로 소비를 하면 되는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대규모의 소비자로 기능할 수 있는 존재를 알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정부이다.

(장소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일반적으로 정부는 GDP의 수십%에 이르는 거대한 예산을 집행하는 대규모 소비자이다. 정부도 물론 서비스를 제공한다. 치안과 국방 등이 그것이다(물론 이 외에도 도로, 항구, 공항 등은 정부가 제공한다고 보아도 좋다). 하지만 신고전학파는 정부의 특성상 비효율이 계속된다는 사실과 이에 대비되는 시장의 효율성을 지적하며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할것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케인즈는 정부가 경제에 개입해야 되는 상황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불황기가 시작되면 정부가 돈을 쓰고, 그것은 그 자체로 수요이면서 또한 정부가 소비한 돈이 국민들의 주머니로 들어감으로써 국민들의 소비수준(적어도 공황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의)을 계속 유지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것은 경기의 추락을 어느정도 억제하게 되므로 대공황과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케인즈의 이론에 따르면 정부가 쓰는 소비는 반드시 전체 공급을 부양할 정도일 필요는 없다. 이는 소비의 연쇄작용으로 인해 정부가 실제 소비하는 양보다 훨씬 많은 소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만약 어떠한 공공건물을 짓는다고 해보자. 이를 위해서 정부가 노동자에게 100달러를 지급한다면 노동자는 이 100달러를 가지고 근처의 식료품점에서 빵을 구매할 것이다. 식료품 가게의 주인은 이렇게 올린 매출로 식료를 추가 주문하여 가게에 비치할 것이다. 정부는 100달러만 지출했지만 이러한 연쇄과정을 통해서 소비는 수 차례에 걸쳐 일어난다.

이러한 재정 정책에서 중요한것은 정부는 '적자를 보아야'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가 세출을 위해서 세금을 올린다거나 하면 오히려 국민들의 소비가 줄게 된다. 따라서 정부는 빚을 얻어서 재정을 확장하고 이로써 경기를 부양시켜야 한다. 또한 호황기에 이르면 반대의 정책을 펴야한다. 경기가 과열되면 그만큼 이후 다가올 불황의 쇼크도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호황기 정부는 긴축 정책을 폄으로써 과열을 방지하고 흑자가 되도록 재정을 유지하여 시장에서 생기는 문제를 보완한다.

처음 이러한 주장은 엄청난 비난을 당했다. 어느 정도 케인즈주의를 따랐다 볼 수 있는 뉴딜 정책을 추진했던 루즈벨트 대통령은 자본가들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고소당했으며 케인즈 또한 공산주의자냐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당시 공산주의는 극도로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도 오래가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미합중국 정부는 군비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셔먼 탱크를 수천대씩 생산하였고, 폭격기와 전투기도 만들었다. 이들이 사용할 폭탄도 만들었으며 항모와 함재기를 찍어(...)냈다. 또한 정부는 징집제를 실시하여 총 1,400만을 징집하였고 이 병력을 위한 식량, 군복, 총과 총탄, 그 외 수많은 무기와 보급품이 생산되었다. 전쟁중에 정부가 군비를 지출하는것은 당연한 것이기에 공산주의라는 비난을 염려할 일도 없었다. 이러한 소비는 미국 경제가 되살아나는 한 바탕이 되었다. 마침내 2차 세계 대전의 종결 후, 미합중국은 세계 총생산의 50%를 차지하는 세계 최강 경제대국의 위상을 회복하였으며, 직접 케인즈주의의 위력을 확인한 모든 제 1세계는 케인즈주의로 개종하였다. 이후 오일쇼크 등으로 신자유주의가 대두될때까지 자본주의의 황금시대가 열린다.

지금까지 서론치고는 참 긴 이야기를 했다. 이후 케인즈주의는 통화주의학파 등에 의해 비판을 받게 되지만 그것은 여기서 다루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 이후 경제학에서는 '시장 실패'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이유중 하나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인데 그 이전까지는 시장에 맡기면 보이지 않는 손이 그것을 해결해 준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또한 각국 정부는 대공황의 은행 도미노 파산을 막기 위한 각종 법규와 제도를 마련하였으며, 증시가 순식간에 폭락하는 일을 막기 위한 방법도 도입하였다. 오늘날 IMF같은 기구는 국제적 공조를 통해 국가가 견디기 힘든 정도의 쇼크에도 대비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반드시 그 방향으로 기능하지는 않지만).

자, 이제 일본 정부의 부채에 관해서 논해보자. 일본은 2차 대전 이후 1990년대까지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그 과열현상에 관해서 걱정한 사람은 소수였으며 미국에서조차도 일본에서 배우자는 이야기를 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길면서도 떠들썩했던 호황은 마침내 장기적인 불황을 가져왔다. 헤이세이 천황의 즉위와 함께 일어났다 해서 헤이세이 불황이라 불리는 이 불황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이것을 잃어버린 10년이라 한다... 아니 전세계적 공황상태로 인해 날려먹은 20년으로 불릴 기미까지 보인다.

이처럼 불황인 상황이니 일본 정부가 돈을 써야 하는것은 당연하다. 이 상황에서 만약 정부가 적자를 막기 위해서 긴축 재정을 하게 되면 경제는 더욱 공황상태에 빠질 것이며, 그러면 조세량은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정부가 부채를 얻어야 할 상황은 분명히 있다.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도 그러한 예인데, 빚을 얻은 뒤에 그것으로 무언가 투자를 해서 투자액 이상을 환수할 수 있으면 빚을 져서라도 투자를 하는게 맞다. 일본 정부의 투자는 사회, 경제 인프라를 다지는 사업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이것은 이후 일본 경제가 되살아나는 버팀목이 된다.

일본의 국방비는 GDP의 1%이하로 억제되고 있었고 그 엄청난 예산은 건물을 짓거나 항구를 건설하거나 또는 복지를 실시하거나 하는 일 등에 사용되고 있었다. 단시일이라면 탱크를 생산하건 철도를 깔건 경제학적 효과(유효수요의 상승)는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경제적 인프라를 다지는데에 돈을 쓰는것이 경제 효과면에선 훨씬 유리하다. 미사일은 경제적으로 아무 쓸모가 없지만, 도로와 공항, 항구 철도 등의 인프라는 매우 쓸모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 정부가 90년 이후 빚을 잔뜩 진 것은 당연하고도 합리적인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는)선택이다.

물론 이것이 별 필요 없어도 국채를 잔뜩 발행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필요할땐 써야하고 일본은 바로 그 필요한 때에 사용을 했다는것이 여기서의 논지다. 다만 필요할 때에 사용을 했지만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사용하였는지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듯 보인다.


필자가 역사적 배경과 함께 일본 정부의 지출에 대해 논한 이유는 이것이 현 한국의 재정정책에도 충분히 참고와 교훈이 되리라 보기 때문이다. 말했듯이 일본 정부는 필요하다 판단되는 때에 소비를 했다. 그러나 그러한 지출의 상당수는 부적절한곳에 사용되었다. 오히려 사회간접자본의 과다화는 이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증가시켰고 이는 더욱 부담을 가중시켰다.

여권에서 국채를 발행하자는 주장에는 일단 동의한다. 현재 한국 상황은 국채의 발행에 아직 여유가 있고 현 경제 상황에서 추가적인 소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적절한 때에 소비하는 것과 적절한 곳에 소비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다. 특히 현 정부가 기이할 정도로 운하와 건설에 집착하는 모습을 볼 때 이렇게 발행한 막대한 재정을 운하와 건설에 소비하려고 하는게 아닐지 생각하면 크게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환경통제의 욕구. Rodin & Metcalf, 1979 / Sherrod, 1974

사회과학/심리학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 환경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꾸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도시의 오염된 공기를 마시고 있다면 청정기를 구입하여 이를 정화하려 할 것이며, 이웃에서 시끄러운 노래를 부르고 있다면 그러한 행동을 중지하도록 요구하려 하듯이.

이러한 통제가 불가능하거나 힘들어지면 사람들은 불유쾌한 환경 뿐 아니라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외출할 자유를 뺏으려 한다면 외출할 생각이 없던 사람이라도 이에 대한 반발심이 생길 것이며, 심부름을 시키면서 이를 거부하는것을 금지한다면 이를 편히 부탁받았을 기꺼이 해줄 생각이던 사람이라도 그럴 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로미오와 줄리엣 효과).

실제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몇가지 연구가 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는 개인 영역Personal zone을 원하며 이 영역이 침범당하는 상황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이러한 불유쾌한 상황으로는 사람이 가득 찬 승강기에 탑승하는 경우가 있다. Rodin Solomon & Metcalf (1979)은 이 때 승강기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가면서 가급적이면 엘리베이터 층수 버튼 앞에 서려고 하는 부분에 주목했다.


이론적 가설

이들은 사람들이 버튼 앞에 서는것이 단순히 그저 원하는 층수 버튼을 누르기 위해 그러는 것 정도가 아니라 버튼 앞에 서는것이 어떠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닌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만약 이러한 욕구가 있고 버튼 앞에 서는것이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위라면 버튼 앞에 설 수 있던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보다 만족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고안했다.


실험방법

실험협조자들로 가득 찬 승강기에 피험자를 탑승시킨다. 이 때 한 집단은 버튼 가까이에 설 수 있도록(고통제조건) 허용하고 다른 한 집단은 그렇게 할 수 없도록(저통제조건) 막았다. 그리고 그들이 실제 그 상황을 어떻게 느꼈는지를 확인했다.


실험결과

이미 많은 사람이 예측한 바와 같이 버튼 가까이에 설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 비해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보다 더 쾌적하다고 생각했으며 승강기 내에 보다 많은 여유 공간이 있다고 느꼈다. 이는 승강기 버튼에 쉽게 손을 뻗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에게 통제력을 느끼게 했다고 추정된다.


------------------------------------------------------------------------------------

로딘 등의 실험은 상황에 대해 통제력을 지닌다는 사실이 그 통제를 원하게 만든 요인만큼이나 환경을 다르게 느끼게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에 관련된 중요하고도 유명한 연구가 하나 더 있다(Glass & Singer 1972).

실험방법

피험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고 한 집단은 소음에 노출한 뒤 과제를 주고 이를 해결할 것을 요청했다. 다른 한 집단에게도 마찬가지의 환경을 부여했으나 이들에게는 소음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굳이 버튼을 누르지 말라고 요청하며 견딜 수 없을 때 언제라도 소음을 멈출 수 있는 버튼을 함께 제공했다.

이 때 양 집단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과제 해결의 차이가 존재하는지를 확인한다.


실험결과

소음을 멈출 수 있는 환경을 부여받은 피험자들은 그렇지 못한 피험자들보다 과제를 더 잘 수행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실제로 버튼을 누르지는 않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의미를 지닌다. 실제 소음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 소음에 대한 통제력을 지닌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을 더욱 효율적으로 만든 것이다.

복종에 관한 행동의 연구.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사회과학/심리학
심리학에 어느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제목만 보고도 이미 이것이 무슨 실험인지 다들 알 것이다. 스탠리 밀그램의 이 실험은 (비인도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결과의 심각성과 파급 때문에 심리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논문이 되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심리학 교재와 관련 대중서에는 모두 이 실험이 올라가있다.

밀그램의 연구계획은 당시까지도 그 영향력이 남아있던 2차 대전의 전쟁범죄war criminal의 행위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해보기 위해 시작되었다. 이 시기 나치NAZI 치하에서 자행된 수많은 잔학행위는 문명의 야만화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드러내었다. 밀그램은 이에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단순이 명령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이처럼 비윤리적인 일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이를 확인해 보기 위해 밀그램은 "사람들은 권위자가 명령할 때 그것이 평소 가지고 있던 도덕적 규범에 어긋나더라도 복종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론적인 가설로부터 이를 실제로 실험해보기로 했다.


실험방법

이 실험을 위해서 밀그램은 다음과 같은 준비를 했다.



방은 둘로 나뉘고 여기에 사람들이 배치된다. 상단 그림에서 E는 실험자experimenter이다. 그는 지시를 내리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T가 선생teacher으로 그의 앞에는 30개의 스위치가 있고 각각의 스위치에는 15볼트에서 450볼트까지의 전압이 15볼트씩 차이를 두고 표기되어 있다. 스위치에는 묶음별로 '약한 충격', '중간 충격', '위험:심각한 충격'을 적어서 실제 그 전압에 대해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도 위험성을 알려준다. 이 버튼을 누르면 건너편 방에 있는 L, 즉 학습자learner에게 전기충격이 가해진다... 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져있다. 이 장치들은 사실 가짜로, 실제로 전기충격이 가해지지는 않는다. 이는 어디까지나 피험자들에게 전압이 가해진다고 믿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그리고 이 연구의 피험자는 신문에 낸 광고:기억에 대한 연구(study of memory)에 참여할 자원자 모집을 보고 자원한 40명의 남성으로 구성되었다(미국에서는 심리학 관련 실험을 할 때 자주 지역 신문에 광고를 내어 자원자를 모집한다). 이들은 20세에서 50세의 다양한 연령대와 여러 직업군으로 구성되어있었다.

피험자 개개인에게는 45달러씩을 지불하였으며 그 돈은 실험실을 방문한 대가이고 실험 자체와는 관련이 없음을 명백히 하여 실험중 돈의 보상과 관련하여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 개개의 피험자와 별도로 두명이 더 들어가는데 한명은 피험자인 척하는 실험 보조자로 그는 학습자의 역할을 받게 된다. 다른 한명은 실험자의 역할을 받아 선생 역할의 피험자에게 명령을 내린다.

실험자는 피험자에게 이 연구는 학습에 대한 처벌의 효과에 대한 실험이라고 (거짓으로)알려주고, 다른 한명의 가짜 피험자(말했듯이 그는 사실 피험자인 척하는 실험 보조자이다)와 제비뽑기를 통해 선생 역할과 학습자 역할을 정한다. 이 제비뽑기도 조작된 것으로, 진짜 피험자는 항상 선생 역할이 되고 가짜 피험자는 학습자 역할이 되도록 설정되어있다.

이제 학습자는 옆방으로 가서 피험자가 보는 앞에서 의자에 묶이고 전선으로 몸을 감는다. 이 전선들은 옆방의 전기충격기와 연결되어있고 학습자는 묶여있지만 선생의 질문에 답변하기 위한 a, b, c, d로 표기된 4개의 버튼에는 손이 닿을 수 있다.

선생은 단어쌍의 목록을 읽어주며 학습자가 그것을 제대로 기억하는지 확인한다. 선생은 만약 학습자가 틀리거나 무반응을 보일 때 마다 점차 강한 전기충격을 가하도록 실험자에게 지시받는다.

실험이 진행되면서 점차 강화되는 전기충격에 학습자는 점차 몸이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120볼트에 이르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선생에게 항의한다(방에는 인터폰이 있다). 150볼트에 이르면 소리를 지르고 마침내 공포에 질린 학습자는 벽을 두드리며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한다(일부 대사에서는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는 내용도 있다).

물론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실제로 전기충격이 가해지는것은 아니다. 학습자는 다만 그러한 행동을 연기하도록 요청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피험자들에게는 그것이 연기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다.

일련의 상황에서 몇명이나 되는 선생들이 최고충격의 전기충격을 학습자들에게 가할 것인가?


실험결과

이 실험의 결과를 말하기 전에, 잠시 이를 예측한 사람들의 의견을 보자. 밀그램은 실험을 시작하기 전에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4학년 학생들에게 이 실험의 결과를 미리 예측해보도록 하였다. 높게 예측한 사람조차 기껏해야 3%정도가 최고수준의 전기충격을 주리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그 예측은 완벽히 빗나갔다. 40명 중에서 26명은 실험자의 명령에 따라 최고의 전기충격을 가했다. 그들이 거리낌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밀그램은 당시 선생들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인용해두었다.

"나이가 지긋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업가가 미소를 지으며 자신있게 실험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러나 20분이 지나기도 전에 그는 말을 더듬거리고 볼을 실룩거리며 희망을 잃고 폭발 일보직전이 된 신경 쇠약증세를 보였다. 그는 계속하여 귓불을 잡아당기고 몸을 꼬으며 주먹으로 이마를 치고는 "오 하느님! 제발 중단하게 해주십시오"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는 실험이 끝날 때까지 충실히 그 명령을 수행하고 있었다(p.377)."

선생들은 전기충격이 일정 강도를 넘어서 학습자가 고통스러워 할 때 뒤쪽의 실험자를 돌아보며 실험의 지속 여부를 물었다. 실험자가 사무적인 태도로 재개를 명령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실험자에게 분노를 표하기도 하고 동시에 전기충격을 받는 학습자를 걱정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들은 계속하여 전기충격을 가했다.


추가실험

본래 밀그램은 미국에서 우선 실험을 한 뒤에 독일로 가서 한번 더 비슷한 실험을 행하려 했다. 독일인들이 특별히 권위적인 문화를 지녔다고 생각해서이다. 그러나 이 실험의 놀라운 결과를 본 밀그램은 이를 포기했다. 독일까지 갈 것 없이 이미 미국에서 충분히 권위의 위력을 보았던 것이다.

대신 그는 복종의 강도를 높이거나 낮추는 요소를 알아내기 위한 실험을 계속 진행하였다. 학습자의 모습이나 소리를 들을 수 없을 때 선생이 복종할 확률은 가장 높아졌다(93%). 학습자와 선생이 같은 방에 있는 경우엔 복종률이 반대로 30%까지 떨어졌다. 이로서 선생과 학습자가 정서적, 신체적으로 거리가 가까울수록 권위에 대한 반발도 강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편 밀그램은 명령을 내리는 자, 즉 권위자와의 거리가 멀어지는것 또한 복종을 약하게 한다는것을 발견하였다. 실험자가 더 가까이 있을 수록 복종률은 올라갔고 실험자가 방 바깥에서 전화로 피험자에게 명령하는 경우의 복종률은 가장 낮았다(21%).

또한 선생들에게 별다른 조건 없이 스스로 원하는 만큼의 전기충격을 가할 수 있도록 하였을 경우 대부분이 45볼트 이상의 충격은 가하지 않았다.

비둘기의 미신. 스키너(B.F. Skinner)

사회과학/심리학
심리학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학자 중 하나로 스키너가 있다. 그가 심리학 세계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며 오늘날까지도 심리학계에 논쟁거리가 되는 수많은 떡밥을 투척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급진적 행동주의 학파로 거의 모든 행동을 함수화하여 조절할 수 있다고 보았다.

간단히 말해 어떤 행동이건 보상과 처벌로 학습시킬 수 있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이를테면 여러분의 애완견이 지정된 곳에 배변을 하면 간식을 주는 방법으로 배변습관을 학습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이를 강화라고 한다). 가족들의 식사중에 식탁주변을 멤돌며 애절한 눈빛으로 먹이를 구걸하는 애완견들의 행동 등도 마찬가지로 식사하는 사람들이 애완견에게 먹을 것을 주면서(=강화) 학습하게 된 것이다. 스키너의 주장에 따르면 강아지가 식탁 주변을 멤돌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러한 구걸에 대해 음식을 주는 행위를 중단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x라는 행동을 넣으면 y라는 보상이 나오는 함수와도 같다. 스키너는 인간의 수많은 고도화된 의식과 행동조차도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함수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인간을 그 외의 동물과 비슷한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이러한 학설에 대해 수많은 인본주의자들은 상당히 불쾌한 입장을 보였고, 지금까지도 스키너의 학설은 논쟁거리로 존재한다.

스키너는 기존에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영역(이를테면 음악이나 그림)을 비둘기나 고양이와 같은 하등 동물들에게 학습시키는 실험을 통하여 이러한 반론들에 반박했다.

본문에서 다룰 내용은 이러한 스키너의 실험 중 하나로, 흔히 인간의 고유영역에 속한다고 생각되는 미신적인 행동을 비둘기도 하게 할 수 있다는 증명이다.

흔히 말하는 문지방을 밟고 서있으면 복이 나간다거나, 혹은 운동선수가 경기에 출장하기 전에 특정한 행동을 하는 것 등이 이러한 미신적 행동에 포함된다. 실제로는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에 대해 마치 충분한 인과가 적용된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다.


실험방법

흔히 스키너의 상자라고 불리는 장치가 이 실험에 사용되었다. 음식을 주는 접시를 빼고는 텅 비어 있는 심플한 구조로 되어있으며, 실험자는 언제 음식을 줄 지 결정할 수 있었다.

스키너는 여기에 8마리의 비둘기를 넣고 그들이 무엇을 하는것과 관계없이 15초 간격으로 소량의 음식이 접시로 떨어지게 장치했다. 즉 비둘기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는 음식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비둘기들은 실험이 행해지기 며칠 전부터 통상보다 적은 음식을 주어 배고픈 상태가 되게 하였다.

결과

8개의 사례 중 6번의 경우에 매우 명백한 행동이 생겼다. 이러한 행동들은 다음과 같다.

1. 새장 안에서 시계의 반대 방향으로 두세번씩 돌았다.
2. 새장의 한쪽 모서리의 위쪽 안으로 머리를 연거푸 들이민다.
3. 눈에 보이지 않는 막대기 밑에 머리를 두었다가 반복해서 들어올리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4. 두마리는 머리와 몸을 옆으로 흔드는 동작을 하였다.
5. 바닥을 건드리지 않고 바닥을 향해서 쪼거나 스치는 것으로 불완전하게 조건형성되었다.

비둘기들의 이러한 행동은 이전에는 관찰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둘기는 이것이 먹이의 제공과 관련이 있는듯이 행동했다.

스키너는 이어서 먹이의 배분 간격을 늘이면 어떻게 될 지를 실험했다. 머리를 까딱이는 비둘기에게 주는 음식의 간격을 1분까지 천천히 늘인 결과 비둘기는 더욱 독특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비둘기의 움직임은 더 활동적이 되었으며 발동작이 현저하여 1분의 시간동안 마치 춤을 추듯이 깡총깡총 뛰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비둘기의 이러한 미신적 행동을 소거하기 위한 실험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미신적인 행동이 완전히 사라질 때 까지 미신적인 행동을 발생하게 한 강화는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나 1분으로 배분 간격을 늘여 미신적 행동이 강화된 춤추는 비둘기는 완전히 행동이 소거되기까지 1천번 이상의 반응이 기록되었다.

커뮤니티 운영론 외전

사회과학/인터넷
"어느 곳에서나 임금은 그 이해관계가 상반되는 두 집단,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계약에 따라 결정된다. 노동자는 더욱 많이 받으려 하며 사용자는 최소한으로 주려고 한다.

그러나 보통의 분쟁에서 어느 쪽이 더욱 유리한 위치에 서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요구를 따르게 할 수 있을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용자들은 수가 적기 때문에 쉽게 담합할 수 있으며, 또한 법률적으로도 사용자들의 담합은 정당하거나 최소한 금지되지 않는데 반해 노동자들의 단결은 법적으로 금지된다.

...

모든 분쟁에서 사용자들은 더욱 오래 버틸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일자리가 없이는 대부분 일 주일도 버티지 못하며 한 달을 버틸 사람은 그다지 없고 일 년을 버틸 수 있는 자는 거의 없다.

...

노동자들의 자기방위적 단결은 언제나 시끄러우며 ...... 어리석고 방종스럽게 행동한다. 이럴 경우 사용자들은 즉각 노동자들을 강하게 비난하면서 그들을 탄압할 목적으로 제정된 가혹한 법규를 시행하라고 요구한다.

Adam Smith,《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
커뮤니티 운영론은 필자가 여러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운영 등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고 집필한 것이다. 일의 맥만 잡는다면 해결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필자는 커뮤니티의 운영진들이 그 글을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는 너무나도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존재한다. 절대적으로 운영진에게 해법을 이야기하는게 목적이며 운영진에게 높은 기대를 걸다보니 정작 그 운영진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에선 어쩔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운영진들에게 이러한 운영이 옳다고 납득시키는것도 어려우나, 옳다고 인식한 뒤에도 이를 실재로 적용할 수 있는지는 별도의 이야기다. 사실 수많은 사람들은 이를 현실과의 타협이라 명명하며 한편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도 이러한 문제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운영진들에게 고결한 품격과 뛰어난 인격을,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구하는것은 어떤 면에선 과다한 요구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는 필자로서도 어쩔 수 없던 바이다. 커뮤니티라는것은 그 속성상 운영진이 아니면 도저히 어떻게 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흔히 말하는 오프라인의 세계에서라면 심각한 차별과 불합리한 정책, 혹은 공정치 못한 판결 등이 벌어지고 있을때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적하며 분노할 것이다. 심지어 지배층이 그 통치의 공정성을 상실하면 프랑스와 수많은 역사상의 중국 왕조등에서 그러하였듯이 사회구조를 파괴하려는 무력적 시도까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오프라인의 세계에서도 민중들이 사회체제의 파괴에 성공한 예는 그다지 없(으며 새로운 사회체제를 창출해낸 예는 더욱 드물)다..

심지어 온라인의 커뮤니티에서는 더더욱 그 가능성이 낮아진다. 이들 공동체는 전적으로 운영자가 모든 권한을 지닌다. 경찰조직도 필요치 않고 군대도 요구되지 않는다. 그저 운영진으로서 가지는 권한만으로 모든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수만에서 수십만명이 가입한 인터넷 팬카페를 불과 몇명의 운영진이 팔아치우는 기가 막힌 일까지 벌어진다.

이는 커뮤니티를 기존 소유권의 개념으로 정의하는게 불가능해지면서 생긴 문제이다. 커뮤니티의 주인이라 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커뮤니티의 운영권을 지닌 자인가? 커뮤니티가 제공되는 서버의 주인인가? 아니면 커뮤니티 내에 올라온 모든 컨텐츠의 소유권을 지닌 자인가? 우리가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고 컨텐츠를 제공하는것은 이것을 운영진에게 주려고 하는게 아니라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다른 사람이 함께 공유하여 즐기기를 기대하는 것이다(덤으로 글쓴이를 칭찬해주면 좋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컨텐츠에 대한 접근 권리를 설정하는것도, 이 컨텐츠에 대한 권한을 행사하는것도 결국은 운영진이다. 이러한 컨텐츠에 접근하려면 글쓴이에게 물어봐야 하는게 아니라 운영진의 허가를 구해야 한다. 심지어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저작자에게 속해야 하는 권리조차도 운영진이 행사하고 있는 기막힌 상황을 볼 수 있다.

물론 저작자가 컨텐츠를 투고하였을 때 운영진에게 어느 정도 관리의 권한을 맡기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한편으로 이러한 권한을 주지 않았을 때 생길 혼란도 생각해 두어야 한다. 문제는 이들 운영진들이 그만한 권한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검증을 받았느냐이다.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서나 지배층이 없는 사회는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요구하는것은 지배층이라는 존재를 소멸시키는게 아니라 마땅히 걸맞는 자가 그 지배층에 올라가서 바른 통치를 하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러한 요구는 대부분 묵살되며, 심지어 일부 평회원들조차도 부당한 지배를 옹호하기까지 한다. 운영진들은 이들 평회원의 지지에서 스스로 위안을 얻고 자신의 행동이 정당함을 증명받으며 가혹한 정책을 계속하여 밀고나간다.


이러한 모든 문제점은 결국 보다 깊은 곳에 뿌리박고 있으나 그 부분엔 방법이 없다.

커뮤니티 운영론 (2)

사회과학/인터넷
③중기 커뮤니티
전기 커뮤니티 단계가 간부회원층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 목적이었다면 중기 커뮤니티는 평회원들을 필요한 방향으로 이끌어 전체 커뮤니티를 형성하는것이 중요 목적으로 떠오른다. 물론 이것은 전기 커뮤니티에서도 해야 할 일이며, 또한 커뮤니티가 중기 커뮤니티의 단계에 이른다 해도 전기 커뮤니티에서 하던 일을 멈춰선 안된다. 요컨데 양자를 적절히 이용하는것이 필요하며, 그러한 이용 능력은 최고운영자 여러분께서 이미 지니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글을 시작하기전에 최고운영자 여러분께서 인식해야하는것은 '대다수 신입회원에게 악의는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 여러분들이 커뮤니티를 운영하다보면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소란스럽게 만들거나 당황스럽게 만드는 신입회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자. 그들이 커뮤니티를 나쁘게 만들어서 얻을 이익이 무엇이 있겠는가? 물론 안티 사이트가 있다거나, 이전에 무슨 좋지 않은 트러블이 있어서 생기는 경우일 수도 있겠지만(이런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대다수의 경우에는 그것이 하면 안되거나 혹은 좋지 않은 일임을 인식하지 못한것이 주요 원인일것이다.


그렇다면 운영자 여러분께서 해야될 일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커뮤니티에 적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커뮤니티 내에서, 그리고 커뮤니티와 그 하부의 각 게시판 내에서 무엇이 적절한, 혹은 적절치 않은 행위인지를 전달해야한다.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규칙을 전달 할 것인가? 이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공식적formal인 공지이며 다른 하나는 비공식적informal인 분위기, 관습이다.

1. 공지사항은 어떻게 사용해야하는가?

공지사항은 크게 두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구별된다.
① 회원들이 아는것이 도움이 된다 판단되는 정보를 공식적으로 게시판에 들르는 모든 회원에게 알리는 일을 말한다.
② 운영진이 결정한 사항을 공식적으로 게시판에 들르는 모든 회원에게 알리는 일을 말한다.

①번의 경우는 이벤트나, 혹은 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 베스트글 등을 말한다. 이런 공지는 일종의 단발성 공지일 경우가 많은데, 정보의 가치는 시간에 따라 변동하고 만약 그 가치가 인지자원 소모 이하로 떨어질 경우 더 이상 공지가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기서 중요하게 다루는것은 ②번인데,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커뮤니티의 공식적인 이용안내를 전달하는 역할을 다루며 커뮤니티 내에서 운영진이 지니는(그리고 나아가 회원들이 따라야 할)가치관을 제시하는 공지이기 때문이다.


아마 운영자들은 가급적 많은 이용정보를 회원들에게 전달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유념해야 할 것은 아무리 내용을 많이, 길게 써놓는다 해도 대다수 회원은 이러한 공지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도 못하며 오랜 시간을 소모하여 읽으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회원들에게 알리고자 작성하는 공지가 그 본연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한다면 이는 굉장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운영진이 해야 할 일은 전달해야 하는 정보에 우선순위를 매기고 가장 중요한 순서대로 배치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요한 정보와 중요하지 않은 정보가 혼재되어 회원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정작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혹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운영진은 모든 회원들이 모든 게시판의 이용법을 숙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무슨 뜻인지 생각해보자. 혹시 커뮤니티 내에서 여러분들은 모든 게시판을 다 한번씩 둘러보시는가? 그렇진 않을것이다. 주로 이용하는 게시판이 있고 그 게시판들을 주로 다른 게시판들은 가끔 둘러보는 정도이다.

이것은 하나의 중대한 힌트를 준다. 특정 게시판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그 게시판 이용법을 알려주어야하는가? 역시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게시판 이용법은 게시판을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가까우나 그 게시판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의 눈에는 그다지 띄지 않는곳에 공지를 주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게시판마다 공지의 개수가 너무 많으면 일일이 그것을 클릭해서 보려고 하지 않으며 때문에 이 경우에도 해당 게시판 이용자에게 중요한 정보가 그렇지 않은 정보에 의해 제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결론은, 회원들이 볼 수 있는, 혹은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 인지량의 수는 제한되어있으므로 공지는 필요한 곳에 최소한 만큼만 존재해야한다는 것이다. 특히 별다른 의미도 없는 내용들이 카페 전체 공지로 띄워지는것은 굉장한 인지공간적 손실이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게시판을 클릭했을 때 공지의 수가 3개를 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중요한것은 무엇이 회원들에게 공지로 전달되어야 할 정보냐는 것이다. 커뮤니티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지로 전달하려고 해선 안된다. 말했듯이 그것은 굉장한 낭비이며 대다수 회원들은 수백줄에 이르는 정보 없이 가장 기본적인(=가장 중요한) 가이드라인만 적어주어도 게시판 자체에서 나머지 정보를 스스로 추출하여 판단할 수 있게된다.

이는 간단히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만약 운영진이 게시판에 써야 하는 글과 그렇지 않은 글에 대해서 가장 세심한 부분부터 서술하려 한다면 이것만으로도 책 한권을 쓸 수가 있다(결코 농담이 아니다). 비언어적으로 소통되는 부분조차 언어화하려고 하니 생기는 문제인 것이다.


2. 회칙(법法)은 어떠해야 하는가.

커뮤니티에서 회칙이란 당위이다. 회칙은 반드시 지켜져야만 한다.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지켜질 수 없는 회칙은 애초에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회칙은 실제 집행 가능한 범위 내에서 만들어져야하며 동시에 회원들이 가능한한 어기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기는 자가 늘어나고, 법의 권위가 없어지며, 이것은 법을 우습게 여기는 풍조를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운영진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시행하지도 못하는 어렵고 빡빡한 회칙을 만들어 놓고 있다. 이러한 운영이야 말로 회칙의 권위를 파괴하는 가장 큰 범죄이다. 지켜지는 것과 지켜지지 않는것이 혼용되어 올라가 있으니 이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물론 이것이 회칙을 무조건 지키기 쉽게 만들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회칙의 각 항과 각 호에서 시행하는게 진정 '문제를 방지(혹은 필요한 요소를 촉진하게)할 수 있는지를 수십번 다시 생각해야한다. 중앙에 정책이 있으면 지방에는 대책이 있다. 목적이 얼마나 고결하고 아름답건 간에 그 회칙이 실제 문제의 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면 이는 크게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회칙의 원래 목표를 잊어서는 안된다. 특히 보복적 성격의 법. 요컨데 형법과 같은 처벌법은 시행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인지하도록 해야한다. 그 보복적 성격은 어디까지나 범죄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만드는것이며, 따라서 범죄의 방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 형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이 글에서 말하는 범죄의 방지라는건 범죄를 아예 없앤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그렇기에 인터넷 커뮤니티상의 법은 마치 헌법과도 같이 해석의 여지가 넓도록 만들어야 한다. 현실의 성문법이 엄청나게 두꺼운 법전에 빼곡히 기입된 내용과 수많은 판례에도 불구하고 그 판결과 해석에 계속하여 의문을 주고 있음을 상기하라. 이처럼 두꺼운 현실법도 그러할진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날림으로 만든 법이 이보다 더 정밀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쓸데없이 정밀하게 만들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틈새가 넘치게 된다.

지적할것은 법이 아무리 빼곡하게 되어있어도 쓰레기 같은 판정이 내려지는 경우는 많다는 것이다. 상당수 커뮤니티들은 이러한 쓰레기 같은 판정을 내려놓고 그 근거로 이전에 정한 법전을 들이댄다. 법이란게 어떻게 되어있어도 판결을 내리는 자들이 인격적으로 덜 되어 있으면 쉽게 아전인수격으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 커뮤니티 운영진들은 법을 만들기 전에 인치人治를 배울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정으로 커뮤니티법은 기존의 관습을 보충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야지 법 자체가 주가 되어선 안된다. 둘 이상의 사람이 함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암묵적인 합의는 생긴다. 커뮤니티에서의 법은 그러한 관습적 합의를 구성하거나 보충하는 요소이지, 그 자체가 곧 합의로서 기능할 수 있는것은 아니다(물론 이는 법을 통하여 합의에 영향을 끼치거나 이를 구성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다). 한국 법전 등에서는 성문법을 중심으로 관습법이 보충하지는 방식을 취하지만 그것은 수백명의 법관과 교수들이 달라붙어서 저나마 의견을 내고, 하물며 거대한 사법기구가 존재하며 웹상의 이해관계보다 훨씬 커다란 이익이 대립하기에 그나마 가능한것이다. 그런 오프라인의 세계에서조차 그러한 빽빽한 성문법으로 말도 안되는 판결을 내리는 일이 자주 생기는데 인터넷은 오죽하겠는가?

한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의 행정력과 집행력은 현실에서의 그것보다 강하나 그 강제력은 현실에서의 강제력보다 훨씬 약하기 때문에 회칙만으로 모든 문제를 판결하거나 해결하려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간단히 생각해보자. 여러분이 부동산 등을 거래할때 관련법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막무가내로 상대와 1:1 거래를 진행하겠는가? 그렇진 않을것이다. 관련 규정을 알지 못한다면, 아니 알더라도 공인중개사에게 중개료를 지불해가면서 법에 의해 보장된 권리 등을 확보하며 안전한 거래를 하려 할 것이다. 이처럼 관련법에 신경쓰는 이유는 그러한 법을 모르고 일을 진행했을때 입을 수 있는 리스크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수천만원에서 수억을 날릴지도 모르는 거래가 아닌가?).


그러나 커뮤니티에서는 그렇지 않다. 회칙을 어떻게 정하건 간에 회원들은 그것을 항상 보려고 하지 않으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아무리 명시해놔도 꼭 어기는 회원이 생긴다. 심지어는 커뮤니티의 회칙상 위법임을 빤히 알고서도 '내가 여기서 영구 IP차단(혹은 강제탈퇴)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라는 말과 함께 자신이 하고싶은 대로 하는 회원도 있을 것이다(경우에 따라선 '난 유동 IP인데?'라거나, '세컨 아이디로 가입하면 되지'등으로 법을 완전히 조롱하는 일도 있다).

저러한 행위를 하면 분명 그 회원들은 커뮤니티에서 추방될 것이다. 그러나 저런 회원이 백에 한명만 있어도 회원수 1만짜리 커뮤니티에서 백여건 이상의 저런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처벌이 회원 개개인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기에 커뮤니티상의 법의 강제력은 심히 낮으며, 또한 그렇기에 커뮤니티 법에게 집행수단이 있건 없건간에 강제적 조항을 수백개를 박고 오타 하나에도 강탈을 내리는 혹형을 가해도 그다지 의미가 없을 것이다(만약 이런 바보짓을 한다면 이야기지만 말이다).

물론 저러한 회원들을 그냥 놔두라는 의미는 아니다. 운영진의 권위와 회칙의 당위를 무시하는 회원은 경우를 막론하고 반드시 처벌되어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올바른 표준으로서 권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다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것은, 법적으로 금지시키는것만으로 효과가 있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법에서 사용하는 금지란게 금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금지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효용을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상의 법이 기존에 형성된 합의를 기본으로 보충하거나 수정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까닭이 이것에 있다. 이러한 관습의 강제력은 약하지만 반발을 주지도 않고 회원들이 자연스럽게 지키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필자는 조금 전에 "대다수 회원들은 수백줄에 이르는 정보 없이 가장 기본적인(=가장 중요한) 가이드라인만 적어주어도 게시판 자체에서 나머지 정보를 스스로 추출하여 판단할 수 있게된다." 라는 말을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정보가 곧 관습적 합의를 말한다. 이러한 합의는 강요당하는 느낌을 거의 주지 않고도 지켜지기에 커뮤니티 등에서 가장 쓰기 적합하다.

만약 법의 제정자들이 이러한 점을 중요히 여기지 않는다면 법의 권위는 땅으로 추락할 것이다. 왜냐면 개나소나 법을 어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권위가 바닥을 해매는 법을 운영하면서 '법을 안지키다니!'라고 외쳐봐야 별다른 효과가 있을 리가 없다.


3. 게시판 분위기 유지

위에서 말한 게시판에서 정보를 추출한다는게 어떠한 의미인가? 회원들이 게시판을 이용하실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것은 엄밀히 말해 게시판 공지보다도 현재 게시판에 보이는 글들의 성격이다. 위에서도 논하였듯이 이러한 합의는 공지나 운영진이 정한 회칙에 영향을 받긴 하지만 이들과는 별도로 존재한다. 이를테면 DC-Inside의 갤러리가 회칙과 관습의 분리가 가장 심한 예이다.

이러한 관습적 합의는 그냥 게시판만 만들어두고 거기에 활동하는 회원들이 있다면 자동적으로 생긴다. 하지만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생겨나진 않는다. 따라서 운영진은 필요하다고 판단될 시, 적절한 이러한 분위기의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강제로서만 성립할 수 있는것이 아니며, 강제는 이러한 분위기의 형성을 위한 한 요소로서만 작용해야지 그 자체만으로 게시판을 제어하려 해서는 안된다.

운영진은 최대한 자연스럽고 그 개입의 흔적이 보이지 않게 일을 처리해야 하며 대다수 회원들이 저도 모르게 따르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방법을 위해 적절한 행위는 다음의 것들이 있다.

① 간단한 모범.

여기서 말하는 모범은 뭔가 도덕적인 일을 하여 타의 모범이 되는 표창을 받거나 주위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으라는 의미로 하는게 아니라, 곧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적절한 의사소통 수단, 요컨데 기준의 제시이다. 이를테면 흔히 말하는 '예문'의 역할을 하는것이다.

물론 새로 게시판을 창설할 때엔 이용안내까지만 쓰고 손을 놓아도 괜찮긴 하다. 하지만 이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 회원들은 글을 쓰기 전에 그 게시판에 맞는 주제인지 고민을 한다. 그들이 이 고민에 대한 결론을 내릴때 가장 주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공지가 아니라 기존의 글들이다. 공지가 잘 써져 있어도 스팸글들만 올라와있다면 그들 또한 게시판을 무시할 것이다. 관리가 되고 있는 게시판이라고 해도 공지와 게시판 내에서 허가된(그러니까 올라와있는) 글들이 다르다면, 일반적으로 후자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이용 안내의 가이드라인만으로 부족하다고 생각되거나 회원들이 정말 헷갈릴까 걱정이 된다면 몇몇 간부회원들에게 미리 게시판에 알맞은 글을 쓰도록 부탁해보자('1빠!' 같은 글을 말하는게 아니다). 그러면 이후에 다른 회원들은 게시판의 성격을 빠르게 파악하고 이에 맞추어 적절한 글을 쓸 것이다.


② 게시판 이용안내를 해당 게시판 공지에 둔다.

매우 쉬운 일이나 아쉽게도 매우 많은 커뮤니티에서 제대로 하지 않는 일이다. 위에서 필자가 논했듯이, 공지가 없더라도 회원들은 게시판 내의 이미 허가된 글들을 기준으로 게시판의 성격을 알아낼 수 있다(또한 이것이 오히려 공지보다도 중요하게 작용하기 쉽다). 그럼애도 불구하고 공지는 필요하며, 관습이 법적 확신을 얻지 못하기 쉬운 인터넷 환경에서 중요히 작용한다.

요컨데 갈등이 생길 때 운영진이 어떤 방침을 기준으로 일을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서 회원들에게 공시하는 것은 이처럼 이용 안내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해당 게시판을 담당하는 게시판지기에게도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다.

이용 안내를 직접 쓸때엔 간결하면서도 쉽게, 초등학교 1학년 학생부터 50세 드신 분들까지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쓸 수록 좋다. 또한 게시판에 맞지 않는 글이 올라오면 해당 글이 무통보 삭제/이동 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도록 하고, 게시판 이용 중 건의사항이나 불편사항이 있다면 운영진에게 통보하기를 부탁한다는 말도 쓰자. 많은 정보를 전달하려 하는게 아니라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가이드라인임을 유념하라.


③ 처벌자 목록을 고지해야할까?

상당수 커뮤니티들은 처벌당한 사람들의 목록을 만들어서 올린다. 이것은 과연 좋은 일일까?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보자. 각 신문과 언론에서 매일매일 범죄자, 전과자, 수감자들의 목록을 보도하며 그들이 저지른 범죄에 관해서 떠들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하지 않길 바라는게 가능할까? 그렇진 않을것이다. 실제 범죄율이 높건 낮건 간에 범죄자들의 목록을 나날이 보도하면 그 보도를 보는 사람은 '이곳은 무법천지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필자는 비밀주의로 처벌하라는게 아니다(실용적 측면에서 봐도 처벌자 목록을 굳이 밝힐 필요는 없다 생각하긴 하지만 필자가 여러분에게 그걸 요구할 이유는 없다). 굳이 그 목록을 공개한다면 열람하고자 하는 사람, 필요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위치에 두면 그만이다. 그것을 반드시 모든 회원들에게 고지하는것은 그다지 좋은 행위가 아니다.

아마 필자 생각에 저것을 고지하는 이유는 두가지가 있는듯 하다.

하나는 일벌백계의 효과를 기대하는것이다. 그런데 이게 효과가 있을까? 글쎄, 현실사회라면 일리가 있는 일이다. 이전 독재시기에 그렇듯이 군화소리가 나면서 이웃사람들이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진다면야 누가 입을 안다물겠는가? 비록 불만도가 오르고 사회는 흉흉하겠지만 공포조성의 효과는 충분히 얻을 것이다.

그렇지만 커뮤니티처럼 강제력이 약한 곳에서 그러한 일을 한다 해서 운영진이 원하는대로 회원을 통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처벌자 목록을 고지한다 해도 불만도가 오르는 효과 외에는 얻을 수 있는게 없을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커뮤니티의 운영진들이 스스로를 합리화하려는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합리화를 시키는데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게 많은 사람들의 동조다. 실제로 처벌자에 관한 글을 올리면 개미 회원들은 '잘하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운영진분들 참 수고하시네요' 식의 말을 하면서 운영진들의 결정을 찬양할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합당한것도 아니고 합리화시켜주는것도 아니다. 사실 커뮤니티에서 운영진들이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가 이처럼 무작정 찬양하는 회원들이다. 이들은 운영진의 올바른 판단력을 흐리고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며 거짓된것을 진실된것으로 혼란케 한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가 어떤 커뮤니티의 운영자라면 한번 분란이 발생했을때 부당한 판결을 내리고 처벌을 공지해보길 바란다. 판결을 내린 여러분이 보기에도 그 잘못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조차 운영진의 결정을 찬양하는 회원이 있을것이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이러한 회원들은 운영진의 올바른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회원들이 생기는 가장 큰 원인은 운영진 자신에게 있다. 운영진이 자신의 행동을 회원들에게 공지하여 평가를 얻으려 하니 당연히 호불호가 나오지 않겠는가?


④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위에서 말한 모든걸 다 해도 분위기를 좋지 않게 만드는 회원은 있다. 그러면 생각해보자. 이 사람들이 대체 왜 그럴까? 커뮤니티에 테러를 가하려고? 아니면 운영진을 물먹이려고? 글쎄 대다수의 경우엔 이렇지 않다. 보통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경우일 뿐, 무언가 악의가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그게 짜증나지 않는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지만).

따라서 대다수의 경우 해당 회원을 처벌하지 않아도, 그 회원에게 좋지 않은 표현이었음을 인식시키면 이후 동일회원에 의해 그러한 문제가 재발하는 일은 없다(요컨데 반드시 처벌을 동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인식시킬것인가? 필자의 답은 매우 간단하다. 그냥 보고있으라는것이다. 이러한 회원들은 다른 회원들에 의해 알아서 깨닫게 될 것이다.

단, 절대 주의해야하는 것은 운영진은 결코, 절대로 사적으로 저러한 회원과 관계되서는 안된다(그러니까 게시판에서 충돌한다던지). 왜냐면 이러한 사람들이 끼어서 한마디를 하게되면 순식간에 이지메에 가까운 형태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며, 설령 그런게 아니더라도 운영진이 분란에 끼는 것 자체가 죄이다. 사람들이 판결을 신뢰하는 이유는, 그 판결을 내린 자가 피고 내지는 원고의 이익과 무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 원고이면서 판사가 되면 그런 권위가 유지되겠는가?

물론 운영진이 제대로 갈등의 최종역할을 한다면 회원들은 운영진을 찾아와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판결을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분란이 발생했을 때 당해 회원들이 운영진을 찾지 않고 스스로 무장하여 이를 해결하려 한다면, 일단은 잘잘못을 가리기 이전에 상급자가 양자 모두에게 싸울 수 있도록 만드는 권한(요컨데 글 쓸 권한이나 리플을 달 권한)을 강제적으로 박탈하고, 판결을 내려야 한다. 중재 등은 의미가 없으며 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식으로 운영진이 나서야 하는 이유는, 회원에 대한 제재는 어디까지나 공식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개 무리가 다른 사람들을 린치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되서는 안된다. 올바른 행동 기준을 준수하고 있는데도 린치한다면 당연히 죄이고, 준수하지 않았다면 운영진이 나서 제재하면 그만이다. 강제력을 운영진이 독점해야만 운영권이 갈등의 최종 해결방법으로 등장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회원들이 스스로 무장하는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분위기를 여러분이 잘 만들어 놨다면 저런 분위기 흐리는 회원이 나돌아다녀도 웬만해선 커뮤니티 내의 사람들이 용인해줄 것이다. 키배 자체가 별 의미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엔 분위기를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 지나친 회원에 대해서는 운영진이 미리 제재를 가하는 것 또한 필요할 수 있다.


⑤ 처벌의 종류

성격이 상당히 모나서, 혹은 인지능력이 다소 부족해서 다른 평회원들에게 별 소리를 다 들으면서도 계속하여 뻔뻔하게 행동하는 회원도 있다(이런 경우 꽤 겪어보셨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대로 분위기와 암묵적 합의를 잘 잡아놓았다면 다른 커뮤니티에선 진작에 다굴당해서 쫒겨날 회원이 자 커뮤니티 내에선 생각보다 잘 돌아다니는걸 볼 수 있다.

아예 욕설을 퍼붓고 다닌다거나 하는게 아니라면 그냥 구경이나 하길 바란다. 특히 이 무신경한 회원들의 불유쾌한 농담 등에는 너무 진지하게 대응할 필요가 없다. 유머에는 유머로 대응하거나 방관으로 일관하도록 하자. 물론 아예 게시판 곳곳에 오버하여 이용을 방해할 정도라면 (갱생시키려 해도 말리지는 않겠지만) 활동중지를 걸고 해당자에게 쪽지로 통보할것을 권고한다.

어쨌거나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가장 관대한 커뮤니티조차도 처벌에 관한 조항은 있다. 다른 커뮤니티에서 쓰는 처벌의 규칙들을 보긴 했지만 필자 생각에는 다소 아쉬운 맛이 있었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처벌종류를 제시한다.

1)주의 : 행정상 제재는 없다. 발효 즉시 소멸된다.
2)경고 : 전항보다 강력한 제재로써, 누적시 본조 ③항, ④항 ⑤항의 성립에 영향을 준다.
3)강등 : 회원의 등급을 기존보다 낮추어 권리를 박탈한다.
4)활동중지 : 회원의 모든 활동을 동결시킨다.
5)제명(접근차단) : 회원을 카페에서 탈퇴하도록 한다.

우선 1번 주의가 필요한 경우는 이전에 말했듯이 '악의는 없는'회원들에게 일깨워주는 용도이다. 경범죄가 일일이 전과로 남게 된다면 누구라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 주의는 행정상 제재도 없고 공식적으로는 누적되지 않도록 발효 즉시 소멸된다. 주의는 쪽지 등의 발송을 통하면 좋을 것이다.

한편 주의만으로 다 되는것은 아니다. 따라서 경고와 같은게 필요한데, 상당수 커뮤니티에서는 그 경중을 가리지 않고 '*개 이상이면 강탈'식으로 하였다. 물론 이것이 불공평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경중을 나누어서 1급경고 2급경고 식으로 하는것도 우스운 일이다. 따라서 명확한 이후 처벌 수를 정하지 않고 '성립에 영향을 주는'정도로 하는것이 좋다 생각한다.

강등이라 함은 곧 권리의 박탈을 뜻한다. 왜냐하면 등급은 권리와 연계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1)장 참조]. 보통은 강등을 하면 다시 등업신청해서 올라올 수 있기에 커뮤니티에선 잘 쓰지 않는것 같다.

활동중지는 회원의 모든 활동을 동결시키는 것이다. 영구히 활동중지를 풀지 않는다면 그것은 강제탈퇴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 용도로 쓰기는 별로 좋지 않다 생각하니, 활동중지는 '잠시 생각해보는 기간' 정도로 하는게 어떨까 싶다. 최장 7일을 넘지 않도록 하는게 좋다 생각한다.

강제탈퇴는 단일 커뮤니티 내에서만 보면 해당 회원에 대한 사형선고다. 가급적이면 그 시행을 자제하도록 하는것이 좋겠다.

이러한 제재를 한 뒤에는 쪽지로 간단한 이유와 내용을 통보하길 바란다. 이런 경우 주의를 주는 주체는 '운영진 A씨' 가 아닌 '운영진'이어야하며, 책임 소재는 운영진 내에서만 명확해야 한다. 즉, '운영진 A의 결정'이 아니라 '운영진의 결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간단히 말해 일반회원이 특정 운영자에게 난리법석을 피우지 않도록 하라는 거다).


⑥ 의심스러울때는 피고의 이익을 따라서

처벌은 주로 법을 따라서 하게된다. 그런데 법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란게 있다. 요컨데 유죄임이 증명되지 않는 한은 무죄라는 뜻이다. 혹시 어떤 회원의 행위가 처벌대상인지 아닌지 모호한 경우가 있지 않은가? 아니면 처벌을 한 뒤에 회원들의 일부나마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식의 말을 한 경우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것은 판결을 부적절하게 내린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 대상이 처벌을 해야하는지 아닌지 의심스럽다면, 혹은 무거운 처벌을 해야하는지 가벼운 처벌을 해야하는지 의심스럽다면, 이 경우에는 피고의 이익을 따르는게 맞으며 그렇게 하는것이 온당하고 또한 적절하다. 회원들이 강경한 처벌을 요구할 때 조차(그런데 회원들이 이런 요구를 한다는게 이미 커뮤니티에선 막장이긴 하다) 만약 그것이 의심스럽다면 운영진은 가급적 처벌을 피해야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지 않으면 법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논했듯이, 법이란 당위이며, 당위란 곧 정의이자 올바름이다. 10명의 범죄자를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1명의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지 않도록 하는것이 법이다. 만약 이러한 구분을 하지 못한다면, 법은 정의를 실현하지 않은 강제력일것이고 그것은 곧 폭력과 압제에 지나지 않다.


4. 등급제도

(1)장에서 다루었듯이, 등급은 일반적으로 권리와 많이 연계된다. 이를테면 준회원은 게시판을 열람할 권리는 있지만 글을 쓸 권리는 없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필자 생각엔 많은 커뮤니티에서 정회원제를 시행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혹시 커뮤니티 운영진 여러분께서는 본래 정회원제가 어째서 생긴것인지 아시는지? 인터넷 커뮤니티 초창기에 흔히 말하는 '스팸'이 많이 나돌아다녔었다. 이 스패머들은 다음 카페는 물론 네이버 지식IN 등 수많은 곳에 진출(?) 하여 활약(!) 하셨는데 이러한 스패머들을 막기 위하여 커뮤니티들에선 처음 가입한 회원을 '준회원'으로 설정하고 간단한 규약을 맞추어 등업하면 '정회원'으로 인정하여 스팸을 막는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다수의 스패머들이 '프로그램'이었기에 이것은 매우 적절한 수단이었다.

이미 짐작하시겠지만 이것이 요즘 커뮤니티들이 쓰는 정회원제의 시초다. 물론 돈을 입금하면 정회원으로 올려주는 식으로 운영하는 커뮤니티도 있긴 하지만 이건 다소 예외적인 경우이며, 본래 대다수 커뮤니티들은 저러한 간단하고도 공개적인 절차로 정회원제를 실시했다.

참으로 아쉬운것은 스패머들이 이미 많이 사라진 현재까지도 정회원제가 남아 크게 변질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정회원제는 신입회원들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수단이 되었고, 수많은 커뮤니티들은 커뮤니티에 기여할것을 요구하며 신입 회원들에게 온갖 복잡한 요구를 가한다(이것도 스패머들의 탓으로 돌려야할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우울한 유산임은 틀림없다).

놀랍게도 이처럼 복잡다난한 요구를 시행하는 커뮤니티의 운영자들에게 '등업 조건이 지나치게 가혹하지 않느냐'라고 물어보면 하는 말이 아마 '시키는대로만 하면 되니까 쉽잖아?'정도의 응답일 것이다. 글쎄 그렇게 따지면 학교도 쉽고 군대도 쉽고 직장도 쉬울것이다. 쉽다/어렵다로 따지는게 무리이니 질문을 바꾸어보자. '정말 이것이 필요한가?'

우선 이러한 복잡한 등업절차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를 지원하는 명분이 몇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커뮤니티에 기여를 할 것'이라는 요구다. 그렇다면 커뮤니티에 대한 기여라 함은 무엇을 뜻하는가? 필자는 커뮤니티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를 크게 둘로 나누었다. 하나는 컨텐츠요, 다른 하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물론 상당수 커뮤니티에선 컨텐츠건 커뮤니케이션이건 딱히 나누지 않고 다음과 같은 내용을 쓴다.

'자료만 받고 떠나지 말고 글을 쓰고 리플을 달아라'

이것이 다음 둘 중 하나(혹은 둘 다)의 의미임은 분명하다.

1. '컨텐츠만 요구하지 말고 회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라'
2. '컨텐츠만 요구하지 말고 니들이 컨텐츠를 제공해라'

만약 1번의 요구라면 정말 기가 차지 않을 수가 없다. 1번과 같은 논지의 말을 하는 사람들은 마치 '돈을 줄테니 같이 놀자'라고 말하는 철없는 졸부집을 연상케 한다. 묻겠는데, 커뮤니케이션이 사교적인 교감인가 아니면 실제적 이해의 대가로 요구하는 것인가?

의사소통이란 당연하게도 서로가 서로를 느끼는 것이며, 반드시 지식적인 것일 필요가 없다. 아마 이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논리적으로 무슨 뜻인지 모르고 요구하는것이 대부분일거라 생각하긴 한다. 실제로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은 그 자체적으로 논리적 모순에 지나지 않다[정말 알고도 이러한 요구를 말짱히 하는 사람들(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은 진정으로 성장 중 정체성 형성의 어딘가 장애가 발생했음에 틀림없다].

일단 커뮤니케이션으로 오도록 컨텐츠로 낚는거까지야 괜찮은 일이다. 말했듯이 처음 오는 회원들은 컨텐츠를 보고 찾아오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 신입회원들의 뒤이은 행동이 커뮤니케이션으로 이어지는것은 이미 커뮤니티 내에 있는 기존의 회원들이 얼마나 개방적이고 즐거운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린 일이지 신입회원들에게 강제로 요구한다해서 성립하는것이 아니다.

만약 이러한 사실을 생각치 않고 이득을 내거는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촉진시키려 한다면 각각의 리플과 글에 소통의 의미가 부여되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 활동이 그저 몇몇 회원끼리의 소통을 제외하고는 이익을 얻기위해 공허하고 형식적인 말만 나오는 인형극으로 전락할 것임을 장담할 수 있다.

2번은 어느정도 일리는 있다. 이러한 호혜주의의 원칙은 여러 시대, 다양한 공간에 걸쳐 존재했고 지금까지도 그 영향이 있는 유래깊은 전통이기 때문이다.

다만 필자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것은 우리가 사는 시대의 컨텐츠는 아무리 나누어도 그 양이 줄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컨텐츠를 개방하고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며 가능한한 많은 사람이 모이게 하는것이 더욱 컨텐츠를 늘이는데에 도움이 된다. 만약 회원들이 컨텐츠를 거래의 대상으로만 생각한다면 아마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컨텐츠를 받으면 더이상 커뮤니티에 기여를 하지 않고 단순히 컨텐츠 저장고로만 볼 것이다.

물론 등급업의 조건으로 컨텐츠의 거래를 요구하는 종류의 커뮤니티에서도 수많은 회원들은 거의 자발적으로 커뮤니티에 엄청난 양의 컨텐츠를 제공한다. 이것은 이 회원들이 커뮤니티를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렇기에 컨텐츠적 요구를 벗어나서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하게 만들수록 컨텐츠 또한 크게 증진된다(그리고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을 컨텐츠에 대한 거래대상으로 제공받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은 위에서도 말한 바가 있다). 반대로, 커뮤니케이션이 감소하면 컨텐츠의 증가량 또한 감소한다.

어쨌거나, 이처럼 등급절차를 간소화하면 운영진 여러분께서 등급업 문제로 격무에 시달릴 일도 없고 회원들도 만족할것이며 컨텐츠는 더욱 늘어나고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져 모두에게 더욱 이익이 될 수 있을 것이다(주 : 필자가 이 글을 썼을 때는 스팸 방지 기술이 크게 강력해진 때이다. 그러나 현재엔 그렇지 않음이 실망스럽다. 만약 스패머가 많다면 정회원제의 시행은 필요한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컨텐츠의 호혜성 원리를 요구하며 컨텐츠를 찾아서 오는 평회원들에게 컨텐츠의 제공이나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는것은 성공할수도 없고 실제로도 실패한다.

신입회원이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커뮤니티에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것은 매우 비상식적이고 말도 안되는 것이다. 아무리 사교적인 사람이라도 전혀 알지 못하는 집단에 갑자기 투신하여 친하게 지내려 할리가 없는것이 아닌가? 컨텐츠를 통한 이익을 추구하여 오는 회원이 대다수인것은 합리적이다 못해 당연한것이다.

혹시 여러분이 어떤 자료를 찾아서 커뮤니티에 가입했는데 분위기가 영 안좋고 컨텐츠를 찾아서 온 신입회원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해보자. 이 경우에 가장 좋은 대처법은 무엇인가?

매우 간단하다. 그냥 원하는 내용을 찾고 쏙 빠져나가는게 상책이다. 존재 자체를 알리지 말아야 한다. 리플도 달지 말고 글도 쓰지 않는다. 그냥 볼 수 있는거만 보고, 정히 등급업이 필요하면 '형식적이고 공허한' 리플과 글을 달고 등업만 한다음에 역시 볼 수 있는거만 보고 나가게 된다. 이는 평회원들이 성격이 안좋아서가 아니라 그저 이러한 상황에서 이것이 상책이기에 그렇게 행하는 것이다.

이처럼 컨텐츠를 찾으러 오는 회원에 대한 공격은 글과 리플을 다는 회원은 처벌하고 그렇지 않은 회원은 그냥 두는 역차별로 발현된다. 요컨데 강제적으로 활동을 하도록 하는것은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의미다(다만, 전기 커뮤니티에선 컨텐츠를 늘이기 위해 호혜주의를 사용하는 방법이 어느정도 먹힌다. 물론 이것도 기존에 컨텐츠가 어느정도 갖추어져 있어야 하겠지만).

상당수 커뮤니티에서 운영진들이 매우 불합리하고 당황스러운 제약을 회원에게 가하면서 오히려 회원의 탓을 하는것은, 컴퓨터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 컴이 고장났을 때 컴퓨터 탓을 하는것과 같은것이다. 컴퓨터를 할 줄 모르니 자신이 컴을 잘못 다룬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이전에 회칙에 관해 다룰때 말했듯이, 회원을 금제함으로서 통제하려는 시도는, 금제만으로서 할 것이 아니라, 그 외의 조건에도 크게 좌우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할 것이다.

커뮤니티 운영론 (1)

사회과학/인터넷
한번 수도를 틀고 손으로 물을 쥐어 마시려 해보자.
만약 이러한 시도를 한다면,
이는 틀림없이 무위로 돌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이 손에서 계속 흘러내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물이 먹히기 싫어서 도망가는게 아니라 그저 그 성질에 따라 아래로 자연스러이 흘러내려간 것일 뿐이다.

여기서 물을 마시고자 한다면 물이 아래로 흐름을 탓할 필요 없이 그저 컵을 들고 이에 물을 받으면 된다.

물은 그 본성을 바꿀 필요가 없었으며 목마른 이는 물을 마실 수 있었다. 모두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



2. 최고운영자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커뮤니티의 문제점들에 대해 일반 회원들 입장에서 가해진 비판은 매우 많고 지금도 계속해서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런 상황에서 운영진들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요구한 경우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본 글은 완벽히 운영진의 입장에서 쓰여졌다. 운영자들이 어떻게 해야 커뮤니티가 원활히 돌아가는가? 운영진들이 무엇을 해야 회원들이 편안한가?...

이처럼 본 글에서 운영자를(특히 최고운영자를) 그 대상으로 하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커뮤니티에선 최고운영자가 가장 높은 권한을 지닌다. 백명을 교화하기보다 한명이 정신차리게 하는것이 쉽다. 또한 이미 권한이 있으므로 이를 적합하게 사용하는 방법만 안다면 각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쉽게 처리할 수 있다.

이전에는 커뮤니티의 개개 상황에 대해 분석하였다. 여기서부터는 각각의 상황에 따라서 최고운영자가 해야하는 정책에 대해 다루려 한다.

①초기 커뮤니티
이 상황에서는 최고운영자가 다소 노동을 해주어야 한다. 우선은 커뮤니티가 무엇을 다루는지를 명확히 알려야한다. 커뮤니티의 소개글을 적절히 써주고, 공지사항, 컨텐츠게시판, 커뮤니티 게시판(자유게시판)을 만들면 우선 가장 먼저 채워야하는것은 컨텐츠이다. 이전 장에서 말했듯, 초기 커뮤니티들은 컨텐츠가 아니면 사실상 회원이 모일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굳이 주의해야할 점은 자신의 인격이나 품위를 떨어뜨리는 짓은 어쨌건 하지 말라는것이다. 트러블은 거의 없을 것이나, 간혹 발생하더라도 원만하게 처리할것이며, 자신의 가치관은 가급적 생략하고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혹은 사실fact을 전달하는 이야기를 자주 하자(하긴 이것은 언제 어느곳에서나 대인관계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니 필자가 다룰 필요는 없는 부분인거같다).

유념할것은, 최고운영자의 존재감은 드러내되, 그 권한의 행사는 드러내지 않아야한다는것이다.

②전기 커뮤니티
이 시기에 중요한것은 간부회원의 조직/효율화이다. 간부회원들 사이에 수직적인 질서와 수평적인 질서를 부여하여 최종적으로 최고운영자에게 권한을 집중하고 동시에 간부회원들에게 그들의 적절한 의무를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진행해야한다.

이렇게 하면 평회원들과 간부회원 사이의 갈등상황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이후 중기 커뮤니티에 일어나는 병목 현상을 쉽게 방지할 수 있다(이미 때가 늦어 ③의 상황에 이르렀다거나, 혹은 아예 발생하지 않는 커뮤니티라면 별문제겠지만).

우선 이 단계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간부회원층을 최고운영자의 수족으로 두어야한다. 그러므로 그들을 손안에 완벽히 넣도록 해야한다.


0. 간부회원들이 어떤 경우에 커뮤니티에 해악을 끼치는가?

간부회원들에게 좋은것은 그들에게 안정적이고 항구적인 권위가 부여되는것이다. 그들은 커뮤니티에 기여하는 양과 무관히 높은 등급을 지니길 바라며 이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기득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회원들을 뉴비newbie와 올드비oldbie로 구분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입회원도 기존회원들보다 훨씬 많은 기여를 커뮤니티에 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기여도에 따라 권한이 주어진다면 많은 올드비들은 그들의 권한을 상실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입일에 따른 뉴비와 올드비의 구분은 마치 신분제 시대의 귀족과 농노의 구분과도 같은지라 무슨 수를 써도 이 암묵적 합의가 유지되는 한 신입회원들은 어찌 할 방법이 없다.

이는 간부회원들이 태생적으로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 이러는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 간부회원의 자리에 오른다면 누구라도 별다른 요인이 없을 때 당연히 이렇게 행동하게 되어있다. 영원히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을 만들고 그 아래에서 사람들이 돌아다니는걸 보는것은 더할 나위 없는 쾌감이 아니겠는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최고운영자들은 이러한 상태를 해소해야한다. 커뮤니티가 경직되어서는 안되며 낮은 자가 높아질 수 있게 해주어야 하며 높은 자가 낮아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커뮤니티에 많이 기여하고, 뛰어난 인격을 지니고, 올바른 조언을 할 수 있는 자들에게 그만한 존중과 경의가 표해진다면 누가 커뮤니티에 기여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것이 봉건시대의 계급처럼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아무리 커뮤니티에 높은 기여를 했다 해도 높은 회원들이 낮은 회원을 무시해서는 결코 안된다. 간부회원층에게는 컨텐츠의 제공 뿐 아니라 그들의 직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부여되는 당연한 의무가 있다. 그것은 간부회원 스스로의 도덕성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지만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이끌려면 그만한 명분과 도덕성이 요구된다. "사람을 사랑하라"와 같은 말도 연쇄살인범이 행하면 코메디가 된다. 반대로 깊은 수행을 쌓은 스님이나 사제가 말을 하면 얼핏 잘못 들리는 말도 고결한 의미가 있는것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지극히 옳은 말도 말하는 자에 따라서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잘못된(듯이 들리는) 말도 말하는 자에 따라서는 흠모와 존경의 대상이 된다.

그렇기에 높은 직위를 믿고 날뛰는 회원은 즉시 그 계급을 박탈해야한다. 갱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면 특히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간부회원과 운영진의 도덕성 자체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친분을 믿고 날뛰는 회원이 있다면, 그리고 그 친분으로 인해 실제로 누군가에게 옹호를 받았다면 그러한 잘못된 옹호를 한 회원도 장기적으로 운영에서는 배제하거나 그러한 속성을 이해하고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이러한 옹호를 하는 자는 친분과 대의의 구분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몇가지 전제만 충족되고 적절한 조절만 이어진다면 간부회원층은 충분한 존경을 받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커뮤니티에 기여할 수 있다. 간부회원층이 해악을 끼치는 이유는 이러한 제어가 없기 때문이지 간부회원층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1. 명예직과 업무직을 구분하라.

상당수 커뮤니티에서는 간부회원풀에서 운영진이 뽑히거나 혹은 간부회원들이 구분없이 운영에 직접 참여하기에 열심히 활동은 하지만 운영업무엔 적합하지 않은 회원이 운영에 참여하여 그 풍기를 어지럽히는 일이 있다.

필자는 등급을 다음과 같이 나눌것을 제의한다.
-------------------------
1. 최고운영자
2. 부운영자
3. 그외 스텝들
4. 자문을 받는 회원
-------------------------여기까지 업무직
5. 명예직 회원
-------------------------여기까지 명예직 ↓이하는 평회원

업무직이라 함은 실제로 커뮤니티의 운영 등에 참여하고 운영회의(가 열린다면)에서도 발언할 수 있으며 적절한 조언을 할 수 있는 직위의 회원들을 말한다. 명예직이라 함은 커뮤니티의 운영에는 참여치 않고 그저 등급만 높은 회원을 말한다. 말 그대로 명예인데, 물론 이러한 높은 등급은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치기에 기실 평회원들보다는 높은 대접을 받게 되어있다.

이렇게 직위를 나누는 이유는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열심히 하나 실제 운영에 참여시키기에는 부적합한 회원이 업무직에 들어가는것을 방지할 수 있으면서도 활동량에 따른 치하를 하는 의미로 그만한 권위와 명예를 부여할 수 있다. 등급만 올리는것이 무슨 효과냐 할 지 모르겠으나, 등급에 어떠한 권한이나 권리를 부여하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자문을 받는 회원은 무슨 의미인가 할 수 있는데, 이들은 두가지 이유에서 필요하다. 하나는 각 게시판에서 일어나는 행정적 처리를 뒤에서 받쳐주거나 혹은 별개의(그러나 동일한 부분의) 업무를 맡는 것이다. 이를테면, 질문 답변 게시판에서 필요한 업무는 잘못 올라온 글의 삭제나 이동 처리 뿐 아니라, 올라온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도 포함된다. 이러한 부분에선 반드시 글 관리 권한이 없어도 누구나 답변을 달아줄 수 있으므로 자문의원이 대신 답변해줄 수 있다. 또한 토론용 게시판 등에서 트러블이 발생하면 자문의원이 행정의원과 공동 보조를 취해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다.

단 이러한 경우에는 이것이 업무의 방기를 낳지 않도록 해야하는데, 책임이 분산되어있기 때문에 명백한 책임자가 존재하지 않아 혼선을 줄 수 있다. 이런 문제는 운영진이 조금만 주의를 하면 쉽게 해소할 수 있다.

한편 자문자들의 두번째 역할은 인재 풀pool이다. 이 자문의원들은 운영회의에서 이것저것 의견을 내기도 하고 자문에 응하여 좋은 조언을 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필요할때 적재적소에 배치 가능한 인원이기도 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커뮤니티의 스텝들이 항상 커뮤니티에 상주하는것은 아니며, 심지어 몇주간 자리를 비울 일도 생긴다. 이럴때 자문의원들을 전면에 배치하여 공석이 된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면 공백을 메울 수 있다.


2. 간부회원을 뽑는 기준은 명예직과 업무직에게 다르게 적용하고, 공포하지 말아야한다.

우선 명예직과 업무직을 다르게 적용해야 하는 이유는, 이 둘에게 요구되는 속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업무직을 맡는 회원은 그 업무의 처리를 위한 권한이 부여되기 마련이므로 이를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지의 요소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명예직 회원은 활동량을 주로 보아도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업무직 회원의 경우에는 단순한 활동량만 보아서는 안된다. 업무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기에 따라서 요구되는 속성도 각각 다르다. 공개모집은 절대 엄금이며, 적합하다 생각되는 회원에게 직접 몇가지 사항을 질문하고 기용하도록 하는것이 좋다.

모든 업무직 회원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것은 널널한 시간(..)과 꾸준함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생업에 바쁘거나 입시가 다가와서 학업에 정진중인 사람이 커뮤니티에서 제대로 활동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널널한 생업을 지녔거나 아니면 입시가 멀은 학생, 혹은 입시과정이 지난 대학생 등이 좋다. 보통 이러한 조건은, 커뮤니티에서 자주 눈에 띄는 회원이라면 만족하고 있을것이나, 그래도 기용 전에 한번 이상 확인은 해두는 것이 좋다.

두번째로 요구되는것은 원만한 성격이다. '절대 트러블에 휩싸이지 않거나',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거나..) 아니면 '트러블에 잘 휩싸이지도 않지만, 만약 휩싸여도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않으며 무리없이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한다. 쓸데없이 논쟁벌이기를 좋아하며 토론을 일으키거나 이에 끼어들며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는 자는 절대적으로 피해야만 한다.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를테면 네이버의 신입맞이 스텝이나 다음카페의 등업지기, 혹은 게시판 관리자 등은 자신의 주장이 회원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를 명확히 인지하는거나 아니면 갈등을 잘 이해하는, 내지는 온화한(요컨데 가급적 트러블에 휩싸이지 않을) 사람에게 적합하다. 이들에게 해당 업무를 맡기면 매우 적절하게 커뮤니티가 돌아가는것을 느낄 수 있을것이다.

또한 주장을 잘 하거나 리플 토론 등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라도 트러블이 사실상 일어나지 않거나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는 자라면 스스로 무언가 해야하는 일을 맡기면 적합하다. 다만 일을 할 의지가 있는지를 봐야하는데, 주장이나 의견이 많으나 행동은 적은 사람이 있는 한편 그 반대의 사람이 있다. 전자의 사람은 주로 조언을 얻는 쪽에 뽑고 후자의 사람은 운영진들을 통솔하는 위치에 두도록 하는것이 좋다.

이러한 사실들은 매우 당연하고도 타당하나 아쉽게도 상당수의 커뮤니티에서 지켜지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나 두번째 조건(즉, 인격적 부분)은 거의 고려되지 않으며, 심지어 많은 경우 운영진과의 친분을 인격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이러한 간부회원의 기용은 객관적인 기준(이를테면 글 00개, 리플 00개라던가)을 제시하지 않는것이 좋다. 이유는 간단한데, 객관적인 기준을 채우면 올라가는 시스템은, 열성적으로 활동하지만 불타는 개차반의 성격에 다른 사람을 통솔할 능력이 없는 회원이 당연하다는 듯 높은 등급의 회원이 되기 때문이다. 권리를 주는건 쉬워도 몰수하기는 어렵다. 애초에 등업을 거부한다면 모를까 높은 등급에 일단 올라온 자들을 잘라내려면 부담이 안 생길 수가 없다. 때문에 굳이 객관적인 기준을 적용하고자 한다면 명예직에게 적용하는 것 이상은 아니될 것이다.

또한 간부회원의 공개적 모집도 하지 않는것이 낫다. 왜냐하면 이처럼 공개적으로 뽑은 회원은 이후 자르기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약 이러한 공개모집이 여러차례가 벌어지면 그 뒤에는 공개모집의 폐지 자체가 어려워진다. 비공식적인 선발이 코드인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최고운영자가 충분한 인격적 조건만 만족시킨다면 이 코드인사들이야말로 커뮤니티를 가장 적절하게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이다.

P.S 명예직 회원은 별 일이 없으면 손대지 않도록 하는게 좋은데, 그들은 커뮤니티 내에서 일반회원보다는 높은 대접을 받겠지만 운영에 참여하지 못하고, 운영자들의 임무를 수행하는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보아야한다. 명예직 회원은 말 그대로 일반 회원보다 '명예'로울 뿐이다. 명예는 명예로 둘 뿐 권한과는 별도로 생각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명예직이 너무 남발되면 그 본연의 목적이 깨지므로 전체 명예직 회원의 수를 제한할 필요는 있다.


3. 운영진간 의사소통과 의사결정구조.

운영진은 커뮤니티 내의 기준이 되는 존재들이여야 한다. 왜냐하면 운영진이 커뮤니티 내의 모든 갈등에 대한 최종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운영진 내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터질 경우 회원들은 무엇이 옳은지 혼란해하며 저마다 맞다 생각되는 것에 찬동하고 틀리다 생각하는 것에 반대하여 갈등의 최종 해결로서 운영권을 마비시킬 수 있다. 무엇이 지켜야 할 것이고 무엇이 지키면 안 되는 것인지 알려주지 않고서 지키도록 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말은 운영진들이 의견을 내선 안된다는게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운영진의 논의도 있을 수 있고 서로 의견 차이도 있을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 회원들에게는 단 하나의 기준이 제시되어 모두가 이를 따르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로인해 회원들에게 서로 다른 여러가지 기준을 제시해선 안될 말이다. 정책의 일관성은 이렇게 확보되어야 마당하다.

누차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다양성의 부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1)장에서도 논했지만 다양성이 적고 서로간 크게 영향을 주고받는 집단의 경우 의사결정과정이 매우 단편적이고 또한 비공식적으로 이미 분위기상의 결론을 내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 힘들어진다.

우리가 다시 인식해야 하는것은, 해당 분야에 가장 잘 아는 사람만 모은 집단보다 여러 종류의 사람을 모은 조직이 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문적인 사람을 배제하자는게 아니라, 전문적인 사람을 포함하여 다양한 사람을 모아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인생의 경험과 지식이 많은 어른들조차도 아이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며 전문가도 비전문가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한다. 이처럼 전문가나 비전문가나 나름의 쓸모가 있다.

전기-중기의 커뮤니티에서는 인사권을 최고운영자가 주로 행사하기에 결국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은 최고운영자가 맡을 수 밖에 없다. 이전에 논한 바에 따라서 여러분은 편견없는 시선으로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사람과 온화하고 조용한 사람들을 함께 뽑고, 가장 전문적인 사람과 가장 비전문적인 사람을 함께 뽑고, 다소 나이있는 사람과 다소 어린 사람을 함께 뽑도록 해야 한다.

다양성을 확보한다는것은 서로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다양성이 높은 조직이 그 다양성을 유지하며 뛰어난 처리능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두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첫번째는 어떻게 '조직의 의사결정'이 내려지느냐이다. 서로 의견이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하나의 결론을 내도록 합의를 종용하는것은 그 자체로 이미 다양성의 파괴를 불러오고,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도 무위로 돌려버린다. 게다가 이런식의 분위기에서는 제대로 의견을 낼 수도 없으니 조직의 효율성과 문제의 해결능력은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의사결정은 기본적으로 '합의'가 목적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을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합의는 기본적으로 여러 사람의 생각과 이해를 반영하는 것일 뿐 조직 전체의 최선이 아님을 상기해야한다. 만약 어떻게든 다수에게서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한다면 그러한 협의제는 '회의에 회의를 끝없이 거듭하는' 결과로 귀결될 뿐이다.

그렇기에 최종결정권한은 단 한명, 최고운영자만이 지녀야 하며(부재시에 대행할 사람은 필요하겠지만) 이것이 운영진 전체의 의사보다도 강해야한다. 만약 이러한 지휘계통이 부재하다면 한 운영진의 결정을 다른 운영진이 뒤엎는 등 운영진 사이의 불협화음이 항상 들려올 것이다.

우선은 안건이 올라오면 한동안 지켜보며 자유로이 토론할 시간을 주고 나올 의견들이 다 나오면 적당한 시간(커뮤니티마다, 그리고 사안별로 그 경중과 처리의 제한이 다르므로 어느정도의 시일이 필요한지는 적절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 뒤에 최고운영자가 해당 토론을 판단하여 적합자에게 업무의 시행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한편 두번째 문제는 어떻게 회의의 참여자 사이에 흐르는 암묵적인 분위기를 타파하느냐이다. 직장이건 어디서건 회의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직급이 다른 사람들끼리 모이는 경우는 물론이고, 심지어 같은 직급의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이러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발언을 행하면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말을 하기에 곤란함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반대자들이 잠시 눈치를 살피며 시간을 보낸다면 (아무도 반대하지 않기에) 더욱 의견을 말하기 힘든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며 이것은 결국 다양성의 파괴와 사실상의 의견 억압-방기로 이어진다.

이것의 가장 큰 폐해는 이것이 문제임을 명백하게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그다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상황에서라면 '이건 좀 아닌데'라고 생각했을 사람도 운영회의에서 자신이 왜 반대발언을 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깊이 성찰하지 못하며 심지어는 자신의 생각이 이전과 완전히 다르게 바뀌어가고 있음에도 그 변화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것을 막는 방법으로는 여럿이 모이는 회의를 열지 않고, 최고운영자가 직접 각 간부들에게 1:1로 물어보는 방법이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 등을 신경쓸 필요가 없는 상태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을 조언해줄 것이며 눈치를 보거나 말을 아끼지 않을것이다(최고운영자 스스로에 관한 것이 아닌 한은 말이다).

최고운영자는 의견을 구할때 최대한 조언을 끌어낼 수 있는 말을 주로 하는게 좋다. 이를테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한다고 생각하시는지?' '해결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군요' 등과 같은 말이 적절하다. 상대의 주장이 말이 안된다 해도 의견을 막는 반론은 가급적 참는것이 좋다.

또한 1:1로 대화하면서 그들의 의견을 채택하건 하지 않건 마지막은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나 '잘 알겠습니다.'정도로 끝내길 바란다. 요컨데 의견을 채택하겠다고도, 하지 않겠다고도 표현하지 말라는 뜻이다. 당연하지만 조언은 조언일 뿐 그 조언을 항상 채택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채택하겠다는 표시를 낸다면 다음에 의견을 물어보았을때 그러한 표시를 봄으로써 최고운영자의 의사를 알 수 있고 상대가 이에 맞출 위험이 있다.

이처럼 사람들 사이의 의견을 다 모으면 역시 적당한 시간 뒤에 업무의 시행을 명령하라. 회원들은 결과만 볼 뿐 최고운영자의 두뇌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하여 간섭할 수 없으며 그저 자신의 의견을 채택받기 위해서 더욱 설득력을 높이도록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고운영자는 스스로는 의견을 내지 않도록 해야하는데, 낼 일이 있더라도 가볍게 제시하는 것으로 족해야 하며 그것이 다른 회원들의 발언에 영향을 끼쳐서는 결코 안된다(여러분께서 아무리 가볍게 의견을 내도 다른 회원들에게는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최고운영자의 침묵만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다. 그렇지만 만약 최고운영자가 자신의 발언을 자주 하고 싶다면, 스스로의 발언이 위치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민감히 살피고, 직접 그 발언의 위치를 옮길 필요가 있다. 비슷한 논지의 발언이라도 혼잣말, 권고, 충고, 명령의 각각 다른 위치를 점할 수 있다. 운영자는 자신이 별 생각 없이 쓴 글도 공식적인 포고령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4. 업무직의 경우 지침을 명확히하라.

상당수 업무직 지기들은 '~~를 관리하라'정도의 지침만 받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관리라고 해도 무엇을 하라는건지 통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특히 개인 주장을 거의 할 필요가 없는 단순 반복업무의 경우엔 지침을 명확히 하는것이 효율성을 높인다. 이러한 사람들을 위하여 필자가 몇가지 지침의 예시를 들어볼까 한다.

- '게시판지기 통합지침' -
게시판지기는 다음과 같은 일을 처리한다.
①게시판 내의 분위기를 주도하거나 띄울 수 있는 게시글의 경우 푸른색으로 색칠하고 공지로 띄운다.
②축하할 일(생일이라거나, 어떠한 시험에 합격했다거나)이 있는 게시글의 경우 붉은색으로 색칠하고 공지로 띄운다.
③담당 게시판의 공지에 따라 알맞지 않은 글을 신속하게 알맞은 게시판으로 이전해야한다. ④전항의 집행에서 알맞은 게시판이 없는 경우 '휴지통'으로 이전해야한다.
⑤게시판 내에서 인신공격적인 분란이 발생하는 경우 게시판의 취지와 상관없이 게시판지기는 양쪽 회원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 이는 다음 각 호에 규정된 바에 따른다.
1. 양측이 이성을 잃었을 경우 분란 발생 글을 휴지통으로 이송한다.
2. 논점이 최초의 주제를 벗어났을 경우 분란 발생 글을 휴지통으로 이송한다.
3. 추가 문제의 발생 위험이 있을 경우 해당자(들)의 글쓰기 권한을 정지하고 운영회의에 보고한다.
⑥전항의 집행으로 글쓰기 권한이 정지된 회원들의 처분은 운영회의에 따라 3일 이내로 결정된다.
⑦전항의 집행에서 3일 이내로 아무런 처분이 내려지지 않으면 그 회원의 기존 권리를 회복시킨다.
-----------------------------
물론 이것은 단순 예시이긴 하지만 잠깐 설명해야할 것이 있다. ⑤항을 보면 회원들 사이의 트러블이 발생한 경우의 지침을 써놓고 있는데, 회원들에게의 경고 등은 아예 써놓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이성을 잃은 회원들에게 어떠한 경고를 주는것은 게시판지기가 지녀 마땅한 권한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게시판지기가 양측 사이를 중재할 수 있거나 혹은 높은 권위와 신뢰를 지닌 사람이라면 매우 다행이나 대다수의 게시판지기에게 그런 능력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또한 한 개인의 빠른 결론은 당사자의 불신을 불러올 수 있다. 때문에 한 개인 게시판지기에게 회원을 제재할 권리를 주는 것은 사태의 확산 방지엔 그다지 의미가 없다. 운영진은 판결이 한 개인의 손에 달린게 아니라, 운영 기구에서 일률적으로 제시하는 엄격한 기준임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급적 게시판지기는 직접 판결을 하기보다 운영회의에 이를 보고토록 하는 것이다.

또한 지침은 해당 지침을 받는 사람이 수행하는데에 무리가 없어야 하며, 따라서 최고운영자가 주어야 할 지침은 해당 글을 휴지통으로 이송하는 것 정도이다. 만약 글을 삭제했는데도 계속하여 문제를 발생시킨다면 3호에 써놓았듯이 해당자들의 글쓰기 권한을 중지시키고 그 처분을 상부에 물어보도록 지침을 내리면 될 일이다.

또한 각 게시판지기는 담당하는 게시판이 다르며 게시판마다 성격이 다르다. 질문/답변 게시판과 자유게시판, 혹은 기타 컨텐츠용 게시판 등은 이용하는 방법이 다를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각 게시판지기들을 위한 지침을 따로 마련해주는것이 좋다.

- '문화산책 게시판지기의 지침' -
1. "문화산책"게시판은 추천하는 음악, 요리, 명소,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느끼는 것 등의 게시물을 올리는것을 목적으로 한다.

2. 상기의 목적에 맞지 않는 게시물이 올라오는 경우 해당하는 게시판으로 보낸다.
ex)질문글은 질/답 게시판으로.

3. 해당하는 게시판이 없는 경우 휴지통 게시판으로 보낸다(혹은 삭제한다).
(삭제해도 별 무리는 없겠지만 요즘 상당수 커뮤니티들은 글을 보존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지라 휴지통 게시판을 따로 만드는 일이 많다)
-----------------------------

이처럼 명확하게 규정해놓아도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게시판지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편 업무직을 통솔하는 임무를 맡은 회원(부운영자라 할 수 있다)의 경우에는 딱히 지침을 주기보다는 업무직 사이를 조율하거나 최고운영자의 단순한 명령을 세부화하는 임무를 맡겨라. 이들은 스스로 행동과 생각이 있는 타입이므로 지침을 그다지 줄 필요는 없다.


5. 친분과 커뮤니티 업무는 구별해라.

이상한 일이지만 상당수 커뮤니티들은 채팅방의 이용을 권장하는 한편 아예 이에 관련된 규정까지 따로 마련해서 지니고 있다.그만큼 이들은 채팅방을 중요시하는데, 이것은 참으로 좋지 않은 관행이다. 게다가 운영진/간부회원의 상당수를 채팅방 멤버에서 뽑는것은 그야말로 치명적이 아닐 수 없다.

어째서 그런지 한번 생각해보자. 우선 채팅방은 커뮤니티 전체 멤버중 극히 소수만이 이용한다. 이러한 소수를 위한 방이라는 오명을 없애기 위해 회원들에게 채팅방의 이용을 권장하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짓으로 채팅방은 다수가 이용하려고 하면 오히려 난장판이 되어 그 시끌벅적함을 감당할 수가 없다. 요컨데 채팅방은 언제나 '소수'를 위한 공간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소수의 회원을 죽돌이-_-로 만든다고 해도 전체 커뮤니티의 이용량에 크게 도움이 될 리 없으며, 이전이라면 게시판에서 이야기했을 일도 채팅으로 해버리기에 차라리 마이너스 요소가 되면 됬지 플러스요소는 될 수가 없다. 게다가 채팅방은 게시판에 비해서 실시간으로 일이 진행되기에 운영진이 개입/처리하기도 매우 곤란하다. 그렇기에 채팅방은 커뮤니티의 '부속'이지 커뮤니티가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채팅방을 소중히 여기는 현상이 발생하는가? 매우 간단하다. 운영진/간부회원의 상당수가 채팅방을 이용하고있기 때문이다. 또한 채팅방이 활성화될수록 회원간의 채팅방 내 트러블은 점차 커지며, 이러한 트러블의 발생에 간부회원들과 운영진들은 자신들의 평화로운 채팅시간이 파괴당했다는 사실을 느끼고 분노를 표하기 마련이고, 이러한 욕구가 정리되어 간부회의 게시판을 통하여 채팅방 관련 회칙의 발포로 이어진다.

따라서 대다수 회원들은 거의 이용하지도 않는 채팅방이 커뮤니티의 메카 마냥 사용되는 괴상한 현상이 발생하며, 또한 채팅방은 간부진간의 친분을 크게 하는 한편 동질화 현상을 심화시키는데, 이러한 동질화 현상에서 대다수 회원은 소외되기에 간부진과 평회원 사이의 괴리는 더욱 심해진다. 이러한 상황이 진행되다보면 채팅방이 커뮤니티와 사실상 분리되고 채팅방을 기반으로 이른바 고참 회원들은 커뮤니티가 커지면서 새로 들어오는 회원에 대한 반감까지 지니며 적대시한다.

경우에 따라서 이 채팅방을 자주 이용하는 운영자들은 채팅방 내의 의견이 커뮤니티 전체의 의견인것처럼 착각하기도 하고 혹은 채팅방 내의 고참회원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커뮤니티 전체의 정책을 설정하기 쉽다. 커뮤니티에선 그다지 활동하지 않으면서 채팅방에서만 활동하는 회원을 간부진으로 뽑는것은 그야말로 최악의 결과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명예직으로만 뽑는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대다수 커뮤니티는 명예직 회원과 업무직 회원의 구분이 없다!).<

거듭 말하거니와 채팅방은 회원간 괴리를 양산시키며 트러블을 만들고 운영자의 판단력을 흐리는 존재다. 물론 운영진에게 채팅방에 출입하지 말라는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채팅방을 패쇄하라는건 더더욱 아니다. 다만 채팅방에 출입하여도 회원들과의 트러블을 일으키지 말것이며, 업무직 회원들에게는 이러한 점을 적극 숙지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채팅방을 굳이 홍보 하는것은 결코 필요하지 않은 행위이며, 채팅방 관련 규정을 만들어 공포하는 일은 권장하지 않는다.

굳이 채팅방 내에서 사용될 회칙이 필요하다면 채팅방 내에서 생긴 일에 대한 처벌을 채팅방 내에만 한정시킬 필요가 있다(이를테면 커뮤니티 내의 등급은 상관없이 채팅방에 대한 출입을 금지한다던가). 특히나 채팅방의 의견을 전체 커뮤니티의 의견으로 착각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아니된다.

운영자 개인적으로는 채팅방에 출입하여도 좋지만 거기에서 운영자로서의 권위는 행사하되 권한과 권력은 행사하지 않도록 하자. 또한 친분이 생겨도 그것이 공적인 일로 번지게 하는것은 곤란하다. 채팅방 내의 사건은 절대 커뮤니티에 번져서는 안되고, 만약 운영진이 얽힌 트러블이 커뮤니티에 공개적으로 번진다면 운영자의 권위 자체가 흔들리는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운영자가 어떤 이유로건 다른 회원과 싸웠고 그것이 커뮤니티에 알려진다면 공정성이 의심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친분과 공무가 혼재되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뭐, 여러분께 훌륭한 아부를 하고 기분을 좋게 한다면 명예직 정도를 주는것까지는 허용될 수 있겠다.


- 계속 -

커뮤니티 운영론 (서론)

사회과학/인터넷
- 해제

"인터넷은 자유롭다."

이러한 명제는 흔히 옳다고 여겨져왔다. 누구라도 특정 네티즌에게 한도적인 제재를 가할 수는 있어도 인터넷 전체에서의 활동을 규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다). 다만 만약 그 네티즌의 인격 자체에 대해 어떠한 제한을 가하려 한다면 그것은 인터넷 상의 제재가 아니라 이미 오프라인의 협조로 가능한 일이라는 점에선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터넷 내에서만이라고 해도 하나의 커뮤니티만 두고 볼 때에는 이러한 자유가 크게 제약된다. A커뮤니티에 있던 사람이 B커뮤니티로 간다 해도 이전 A커뮤니티에서 있었던 일로 인해 제재를 당하지는 않을 것이나, 단일 커뮤니티내에서는 이러한 일이 불가능하거나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단일 커뮤니티 내의 각 네티즌들 사이에는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인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이러한 위계질서에서 보다 위에 있는 사람은 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더욱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참으로 아쉬운것은 이러한 커뮤니티의 체계가 심각할 정도로 잘못 돌아가기 쉽다는 사실이다. 많은 경우 운영자들은 자신이 해야 할 마땅한 행위가 무엇인지를 모르며 이러한 상황은 커뮤니티의 최고운영자로부터 가장 낮은 등급 회원들까지 커뮤니티 이용의 만족을 크게 저하시킨다. 특히 우려해야되는것은 이러한 현상이 특정한 일부 커뮤니티에 한정되는게 아니라, 매우 보편적 현상으로 수많은 커뮤니티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 글에서는 단일 커뮤니티의 생성, 발전과정과 어떻게 권력이 발생될 수 있는지를 논하고자 한다.


0. 용어의 정의

①커뮤니티community

커뮤니티라는 단어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첫번째는, 명확한 사회조직으로서 공간적, 지역적 단위이며, 둘째로는 이러한 단위와 관련되는 심리학적인 결합성 또는 소속감을 지칭한다. 다만 본 글에서는 커뮤니티라는 용어를 인터넷상의 단위로서만 지칭한다.

특정한 언급이 없을 경우 본 글에서 사용하는 커뮤니티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지닌다.
1. 기본적으로 네티즌자치하에 운영된다.
2. 비패쇄적 조직으로, 요건을 지키면 가입이 가능하다.
3. 단일 조직에 의해 동질적으로 관리된다.
4. 게시판을 통하여 의사소통이 일어난다.
5. 동일 커뮤니티원으로서의 소속감이 존재한다.

네이버 카페, 다음 카페, 네이트 클럽, 파란 클럽, 기타 몇몇 홈페이지 등이 이에 속한다.


②컨텐츠Content

컨텐츠의 사전적 의미는 '내용, 알맹이, 목록(목차)'이며 이에 '만족시키다, 기쁘게하다'라는 의미가 더해진다. 본 글에서는 일반 회원들을 만족시키게 하는 모든 정보와 자료를 지칭한다.


③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s

커뮤니케이션의 사전적 의미로는 '상호 이해, 친교와 교신, 보도와 전달' 등이 있다.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상호 소통하고자 하는 사회적 욕구가 있다. 게임 커뮤니티 등에서 게임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자신의 생활을 이야기하거나, 예전에 있었던 일 등을 이야기하는것은 컨텐츠와는 별도의 의사소통행위라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사교적 욕구의 충족도 커뮤니티가 수행할 수 있는 하나의 서비스라 볼 수 있다.


④권리·권한

권리는 '특별한 이익을 누릴 수 있는 법적으로 인정된 힘'을 뜻하며 이러한 권리의 종류로는 주로 커뮤니티나 커뮤니티 내의 특정 게시판에 대한 접근 권리가 있다. 때문에 권리는 주로 아래항에서 다루는 '등급'과 사실상 동급으로 취급된다(왜냐하면 게시판에 접근가능한 권리는 주로 등급 위주로 설정되기 때문이다).

한편 권한은 사전적 의미에서 '타인을 위하여 일정한 법률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자격'으로, 권리가 '자신을 위한 것'임에 반하여 타인에게 해당하는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를테면 게시판 관리 권한을 지닌 자는 해당 게시판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타회원의 의사소통을 제한할 수 있다.


⑤회원등급·운영진

대다수 커뮤니티는 회원에게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등급은 주로 특정한 요구를 충족하면(이를테면 00개 이상의 글을 쓰고 00개 이상의 리플을 달면..) 그에 맞는 등급을 수여하는 방향으로 행해진다. 공식적으로는 높은 등급의 회원은 낮은 등급의 회원이 접근하지 못하는 게시판 등에도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며, 비공식적으로는 높은 등급의 회원일수록 보다 강력한 발언력을 지니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상위등급의 회원들은 자신들의 기여와 발언력을 바탕으로 트러스트를 일으켜 카페 운영진에게 강력한 요구를 할 수도 있다. 상위등급을 부여받은 뒤에 해당 등급의 유지를 위한 계속적인 요구가 이루어지느냐는 커뮤니티마다 다르다.

본 글에서는 편의를 위하여 일반적으로 커뮤니티에서 최다수를 차지하는 하위-중위의 회원들을 평회원이라 칭하고, 소수를 차지하는 상위 등급의 회원을 간부회원(혹은 주류회원)으로 칭한다.

한편 운영진의 경우는 자동적으로 높은 등급(=권리)을 지니는 한편 권한을 함께 지닌다. 어떠한 권한이 부여되느냐는 커뮤니티에 따라 다른데, 이를테면 네이버 카페와 다음 카페, 그리고 파란 클럽의 경우엔 다음과 같다.

네이버카페 NAVER cafe
1. 신입맞이 스탭 : 가입 조건 관리, 가입 신청 리스트, 전체 메세지, 멤버 환영 메일
2. 디자인 스탭 : 레이아웃, 스킨, 세부 디자인, 로고 타이틀, 대문 꾸미기
3. 이벤트 스탭 : 전체 메세지, 질문마법사 관리, 이벤트 마법사, 공지권한, 멤버글 공지 설정
4. 게시판 스탭 : 전체 메세지, 질문마법사 관리 - 공지권한, 멤버글 공지설정, 게시글 삭제, 게시글 이동, 덧글 삭제, 개별태그 삭제, 추천글 제외
5. 멤버등급 스탭 : 카페 멤버 보기, 멤버 등급 관리, 탈퇴관리, 전체 메세지
6. 부 매니저 : 메뉴관리, 스탭관리, 카페 폐쇄, 매니저 위임을 제외한 카페 매니저의 모든 권한
7. 매니저 : 모든 권한

다음카페 DAUM cafe
1. 게시판지기 : [지정된 게시판]의 공지권한, 게시글 삭제, 게시글 이동, 덧글 삭제, 글쓴이 등급 변경
2. 운영자 : 카페 패쇄, 운영자 임명을 제외한 모든 권한
3. 카페지기 : 모든 권한

파란클럽 Paran Club
1. 게시판지기 : [지정된 게시판]의 공지권한, 게시글 삭제, 게시글 이동, 덧글 삭제
2. 부클럽장 : 기본정보 관리, 클럽장 위임, 클럽 패쇄 등을 제외한 모든 권한
3. 클럽장 : 모든 권한


⑥권력

명확한 정의는 힘드나 여기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하기 싫은 일을 하게 할 수 있는 힘'정도로 사용한다. 현실적 제재(강제탈퇴, 활동중지, 등급)부터 시작해서 넓게는 권위, 발언력, 친분관계 등까지 고려된다.


0. 커뮤니티상에서 어떻게 권력이 발생하는가?

커뮤니티 내의 권력 발생은 기본적으로 정보의 불평등에서 기인한다. 남이 가지지 못한 특정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혹은 그러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더 우월한 위치에 선다.

때문에 일반적인 경우 대다수의 평회원에 운영자가 행사 가능한 가장 강력한 권력은 각 회원의 컨텐츠에 대한 접근의 가부결정이다. 커뮤니티에 따라 다르지만 대다수 커뮤니티들은 주로 어떠한 컨텐츠의 공유를 목적으로 하며 회원들은 해당 컨텐츠를 얻기 위하여 커뮤니티에 온다. 그렇기에 컨텐츠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것은 매우 강력한 제재로 작용하며 그러한 제재를 받지 않기 위해서 회원들은 운영자의 명령을 따른다.

다른 한편으로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목적인 회원들이 있다. 이러한 회원들은 운영진이나 간부회원들보다는 아래쪽이나 대다수 평회원보다는 위에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커뮤니티 활동량의 상당수를 이 회원들이 차지하는데, 이러한 회원들에게 커뮤니티에 접근치 못하게 하는 권한을 지니는것도 일종의 권력을 창출해낼 수 있다.

또한 커뮤니티의 운영자는 회원들에게 더 높은 위계로의 승급을 통하여 등급체계의 상위에 서게 해주거나 혹은 운영직을 주어 실리적인 권한을 부여하여 이러한 권력을 행사 할 수도 있다. 물론 이 반대의 일- 즉 등급을 낮추거나(강등), 혹은 권한을 빼앗음을 통한 행사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은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왜냐하면 대다수 회원들에게 있어서 카페 내의 권한과 등급은 그다지 상관이 없으며 따라서 몇몇 최고위 회원들에게만 이러한 권력의 행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운영자가 행사 가능한 권력은 각개의 회원에게 행사되는 권력과 관련이 없지는 않으나 이보다는 총활동회원의 수와 관계가 깊다. 회원의 수가 많으면 그들을 다소 막다루어도 상관이 없지만, 회원이 적으면 권력을 행사할 일도, 행사할 생각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1. 커뮤니티의 발전단계.

커뮤니티는 발전의 단계를 지니며 각 단계마다 나타나는 특징과 양상이 존재한다.

①초기 커뮤니티

처음 커뮤니티가 탄생하였을 때에는 커뮤니케이션도 거의 형성되지 않았고 컨텐츠가 커뮤니티의 주류를 차지하며 회원간 트러블도 거의 없기에 이러한 문제로 고생할 일은 거의 없다.

이처럼 미약한 초기의 커뮤니티의 발전 성패는 주로 해당 커뮤니티가 지닌 컨텐츠의 매력을 통하여 결정된다. 초기 커뮤니티에 네티즌이 몰려올 유인 동기는 컨텐츠 외에 달리 찾아보기 힘들며, 양질이고 가치높은 컨텐츠일수록 회원들은 더욱 기뻐하고 네티즌들도 더욱 많이 가입할 것이다.

초기 커뮤니티에서 각 등급의 회원이 차지하는 비율(여기서 비율이라 함은 머릿수를 말하는게 아니다)은 '운영직'이 가장 높으며, '간부회원'이 그 다음이고 평회원의 비율이 가장 낮다.

이 단계에서 커뮤니티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게시판의 수는 적으며 주로 컨텐츠 위주의 게시판이 다수를 차지한다.

소규모의 커뮤니티에서는 커뮤니케이션 현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컨텐츠가 주류일 수 밖에 없다. 단, 애초에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만남 정보 사이트 등은 예외다.. 라기보다 이런 사이트는 커뮤니케이션이 곧 컨텐츠이다.


2. 운영진이 커뮤니티의 행정적 관리와 컨텐츠 제공을 동시에 행한다.

작은 마을에는 촌장 한명이면 족할 뿐 촌장 밑에 여러 사람 둘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 원리로 따로 간부회원이 많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3. 커뮤니케이션이 거의 없다.

회원이 적으니 당연히..


②전기 커뮤니티

한편 초기의 난관을 뚫고 어느정도 큰 카페로 성장하면 회원의 수가 크게 늘어난다. 이 발전단계에 도달하면 카페의 성장비율은 상당히 높다. 이 시기에도 몇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1.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한다.

이전 시기에 없었거나 미약했던 커뮤니케이션은 이 단계에 이르러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간다. 이 단계의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한 자들은 자신들끼리 친목을 다지기 쉬운데 통칭 올드비란 이 단계에서 등장하기 쉽다.


2. 주류회원층의 발생

초기에 혼재되어있던 운영진과 간부회원 사이에 분리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운영진은 주로 행정적인 관리를 맡고 주류회원은 컨텐츠의 제공을 하게 된다. 이전 단계와는 달리 규모가 커지면서 생겨나는 현상이다.


3. 컨텐츠의 질/양이 크게 늘어나며 카페 성장 비율이 상당히 높다.

③단계에 등장하는 고참회원들은 이 단계에서 주로 많이 형성된다.


③중기 커뮤니티

이 단계에 이르면 일부 커뮤니티 내에 병목 현상이 발생한다. 특히 이전 단계에서는 굳이 고려할 필요가 없었던 회원간의 충돌이 카페내의 주요 문제로 발생하면서 간부회원과 평회원들 사이의 갈등이 심화된다.

회원의 수가 많아진것도 한 이유이지만 그것만으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건 아니다. 이 병목 현상을 원만하게 해결한 카페의 경우 회원의 수는 더욱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트러블이 더 많은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우선 다음과 같은 상황이 주요 요인으로 추측된다.


1. 간부회원층의 성립·발전

②의 시기에 분화되기 시작되었던 간부회원층은 이 단계에 이르면 확고한 계급으로 등장한다. 본 글은 이른바 계급에 대해 논할 것이며, 여기서 말하는 계급은 '정치적'세력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즉, 필자가 본 글에서 계급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 이것은 단순히 사회 내의 계층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니는 공동 배경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가지는 공동 이익을 성취하는 방향으로 정치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포함한다고 봐야한다. 계급으로서 간부회원층이 특별히 성립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장 잘 알려진 예는 간부직 이상의 회원들이 게시판 외의 방법(이를테면 채팅방, 메신져, IRC 등)으로 교신하며 이 상황에서 친분이 생기는 경우이다. 이 경우 서로 같은 그룹으로서의 소속감과 동질감이 커지며, 이러한 친밀감은 자주 교신을 할수록 서로 상승세를 일으킨다. 결국 이것은 간부회원들이 닮아가도록 만들고, 간부회원층을 직급 외의 끈끈함으로 묶여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이러한 동질화를 가속시키는 요인에는 이들 간부회원의 입맛에 맞추어 새로운 간부가 수혈된다는 것도 있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의견을 지닌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이미 게시판 외적 소통을 통하여 어느정도 동질성이 확보된 간부회원들은 자신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쪽의 회원들을 좋아할 것이고 이처럼 간부회원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사람이 간부가 되기 쉽다. 결국 간부회원들은 모두 비슷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모이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흔히 말하는 '인터넷 친목질'이다. 친목질과 이로 인해 형성되는 파벌에 대해서는 수많은 곳에서 이미 비판이 나와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은 국내의 매우 많은 커뮤니티에서 보편적으로 등장하고 있고, 많은 커뮤니티의 퇴행을 촉발시키는 가장 큰 원인중 하나로 현재도 남아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의 계급 사태에 대해 접근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논한 시각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우리가 흔히 사회내에 어떠한 계급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특정한 사람들 사이에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 받고 연락하며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을 반드시 내포하지는 않는다. 규모가 작아 모든 구성원이 서로 알고 지낼 수 있는 규모의 공동체에서는 친목을 통한 접근법이 유효하며 실제로 이를 통한 해석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규모가 수만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이런 방법의 접근은 보다 어려워지며 이런 경우엔 다른 방법론을 택할 필요가 있다. 만약 반드시 계급이 친목을 내포한다고 정의한다면 이 땅의 수많은 부르주아들은 어떻게 계급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며 그보다 배이상 많은 프롤레타리아들은 어떻게 계급투쟁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이런 방법론을 선택치 않고 단순히 친목에 의한 파벌만을 계급으로 따진다면 계급이 존재하며 그들에 의한 차별이 실존하는 커뮤니티에서도 그것을 증명하지 못하는 황당한 사태에 몰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그 존재를 증명하는 목적을 수행하는데에 적합하지 않은 방법을 통해 접근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정부가 대부분의 국민이 바라는 바에 부응치 못하고 엉뚱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정부로부터 보다 많은 관심을 끌어 정책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상황에서 보다 상위의 계급은 보다 하위의 계급보다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훨씬 많은 방법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전투에서의 패배자는 주로 하위 계급이다.

이러한 상황은 커뮤니티에서도 실제로 발생할 수 있다. 운영진은 주로 상위 계급에서 충원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것은 운영진과 상위계급이 동일한 가치관으로 묶이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자들이 이른바 '주류' 계층이 되며 이들의 의견은 곧 커뮤니티 전체 여론을 좌지우지할 능력을 가지게 된다.

주류 계급은 상호간에 전투를 벌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을 주류 계층으로 분리시킨 바로 그 요소들이 그들이 같은 가치관에 동의하거나 최소한 직접적인 반대행위는 하지 않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처럼 상호간 불가침 조약이 맺어진 상태에서 그들의 가치관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을 공격하거나 배제하는 행위가 이어진다면 이들이 바로 계급이다. 그들 사이에 학연이나 지연, 혹은 혈연 등의 관계가 있는지의 여부는 오로지 이러한 상황과 연결되었을 때 중히 다루어질 가치가 있다. 이해관계는 인간관계를 넘어선다.

이들 주류 계층에는 주로 많이 배우거나, 지적이거나, 혹은 학벌이 뛰어나거나, 성실하거나, 커뮤니티에 대한 충성도가 높거나, 등이 주요 구성 요소가 된다. 물론 친목질로 인해 주류 계층이 발생할 수도 있으며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에 끌어주는 일도 있다. 그러나 친목질이 발생하지 않아도 주류는 항상 등장하며 그들은 언제라도 계급화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2. 주류회원층의 영향력

그렇다면 계급화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는 다음의 조건들을 요구한다.

1. 이데올로기(언론의 주요 축)를 장악한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팔을 움직이려고 한다 해보자. 이 때 뇌는 팔에 어떠한 양해를 구할 필요가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들어올리면 된다. 팔이나 다리가 뇌의 명령에 거역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다른 사람들을 이처럼 움직이고자 한다면 단순히 명령만으로 가능하지는 않다. 여기에는 반드시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논리, 사상이 요구된다. 이것이 바로 이데올로기이다.

만약 이데올로기가 억압적으로 작용하다면, 이 때 이데올로기의 역할은 중요한 것과 중요치 않은 것 사이의 분별을 흐리게 하거나 혹은 반드시 전제로 해야 할 것을 장막의 뒤로 감추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이른바 비 주류회원들은 자신들이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그것이 왜 그런지 설명하려 할 때 이데올로기의 벽에 가로막히며 자신들이 이미 미로에 갇혀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2. 공적 권한의 집행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명분이야 어찌되었건, 이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언제든지 존재한다. 사회적인 비난만큼 중요한것은 물리적인 집행이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도 주류 계급은 비주류에 비해서 거의 항상 우월하다. 주류 계급은 비주류 계급에 비해 운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보다 많은 수단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것이 이데올로기로 정당성을 확보하기 때문에 비난의 대상조차 되지 않을 수 있다.

기실 공권력의 집행에서 하층 계급이 피해를 입는 다른 이유는 그들의 자기방어적 단결이 매우 한심한 수준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시끄럽게 떠들며 많은 관심을 집중받으면 자신들이 진리를 말하고 있음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리라 생각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것은 그저 착각일 뿐이며 이에 대해 공권력은 곧 진압을 강행한다.

주류 계급은 비주류계급에 비해서 이 외에도 수많은 수단을 지니고 있고 항상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물론 이들 간부회원들이 충분히 인격적으로 성숙되어있다면 공사의 구분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러한 능력을 기대하기란 무리이며 일반적으로는 공과 사를 구분하기보다 자신에게 옳은것이 모두에게 옳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정당화는 스스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루어지며 때문에 누군가가 이에 대해 이야기하기까지, 혹은 지적이 가해진 뒤에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물론 이것이 실제로 공익과 사익이 충돌할 때 이를 알아차린 사람이 반드시 전자를 선택한다는 의미로 표현한 것은 아니다. 후자를 우선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여기서 가장 우려되는것은 간부회원 층 내에 다양성이 파괴된다는것이다. 다양성이 낮을수록 조직의 판단능력은 떨어지며, 특히 보고 싶은거만 보거나, 혹은 결론을 내놓고 이에 맞는 정보만 취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리고 다양성이 파괴된 간부회원층 사이의 회의는 집단극화현상(비슷한 판단을 지닌 집단 사이의 회의는 각 개인이 결론을 내릴 때보다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현상)으로 인하여 보다 강경하고 가혹한 방향으로 가기 쉽다.

물론 이들이 스스로 정당하지 못한 일을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야기한 바와 같이 간부회원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정당한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진지한 자문을 하기보다 명백한 인식 없이 이미 여러 곳에서 자주 사용된 명분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행동을 충분히 설명할 이유를 내놓는다. 이는 주로 다음과 비슷한 내용을 표방한다.

1. 평회원들은 제공되는 컨텐츠만 찾고 떠날 뿐 타 회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하지 않으며, 신규 컨텐츠의 제공에도 기여치 않는데다가 공지와 규칙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
2. (이에 비해)간부회원들은 커뮤니티에 열심히 참여하며 여러 시기를 거쳐 수많은 컨텐츠를 제공하고 기여를 하며 공지를 읽고 규칙을 지켜가며 제대로 활동한다.

우선 알아두어야 할것은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들 계층이 기본적으로 어떠한 악의를 지닌것은 아니라는것이다. 스스로 옳지 못하다고 인정하고 있으면서 그러한 행동을 지속할 만한 인간은 그다지 많지 않다. 평회원에 대해 강경한 간부회원은 존재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가장 강경한 회원이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강경한 주류회원이 존재하면 이 소수의 회원들이 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주로 온건한 방향의 판단을 지닌 회원은 권위가 있다 해도 이러한 의사결정과정에서 한 발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으며 주류층 내에서의 영향력은 한정되기 쉽기 때문에 더더욱 이러한 현상이 심화된다.

이러한 강경파 간부진, 혹은 운영진은 애초에 그러한 성향으로 시작되어 들어오는게 아니다. 이전에 온건에 가까웠던 사람이라 해도 커뮤니티 내에서의 분란이 만성화되거나 회원들 사이의 심각한 트러블 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선 자동적으로 이에 대한 반동으로 강경하고 가혹한 정책을 주장하게 되기 마련이다.

①,②의 시기를 거치면서 운영진들은 이들 주류 회원들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또한 운영진은 간부회원의 집단에서 뽑히기 마련이므로 자주 그 구분이 모호해진다. 이러한 친분으로 인하여 간부회원층이 부적절하고도 규정을 완벽하게 어긋나는 행동을 해도 그들에 대한 제재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도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평회원들의 반발은 대다수의 경우 매우 미흡하거나 초보적이다(이를테면 인신공격을 퍼붓고 커뮤니티에서 탈퇴한다거나). 이러한 대응으로 인해 간부회원과 이에 영합한 운영진들에게는 자신들이 행하는 억압적 행동의 당위성을 부여해주며 동시에 커뮤니티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더욱 강압적 규정을 만들어 신규가입하는 평회원들에게 규정에 동의할것을 서약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이 성립되어도 카페의 질서가 딱히 나아지지는 않으므로 주류회원-운영진층은 규정에 이러저러한 제재사항을 추가하여 내용을 보다 복잡하게 하는 한편 혹형주의를 택하여 회원들에 대한 강압적인 처벌을 시행하기도 한다.

사실 어떠한 상황에서 문제가 있다고 느낄 사람은 많으나 그 문제를 진단할 수 있는 자는 소수이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더욱 소수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웬지 '분위기가 나쁘다'는 정도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3. 운영진의 혼미

일반적으로 운영진은 커뮤니티가 잘 돌아가고 더 많은 회원이 즐겁기를 바란다. 아무런 분란이나 트러블이 존재하지 않으면 더욱 좋으며 덤으로 자신들에게 약간의 경의를 표해주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커뮤니티는 종종 운영진들의 바람을 벗어난다. 운영진들은 종종 회원들의 돌출 행동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며 이러한 상황에서 어찌 할 바를 몰라하다가 결국 공정함과 가혹함의 분별을 잃고 회원들에게 냉혹한 공격을 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혹하고도 빡빡한 규칙에도 불구하고 운영진들은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일반적으로 운영진의 권한과 권력이 엄청남을 볼 때, 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대다수의 경우 운영진들은 커뮤니티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지니며 경우에 따라선 회원 몇명쯤은 자기 마음대로 강탈할 수 있기도 하다. 이들은 게시판의 생성, 삭제 뿐 아니라 자신의 하위 회원들(특히 평회원들)의 모든 인사권을 자유로이 행사한다.

이러한 강력한 권한이 운영진의 활동을 쉽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운영진이 주류회원층의 시선을 받아들여 평회원들에게 가혹해지는 것은 최악의 수지만, 운영진이 실제로 빠지기 가장 쉬운 수이기도 하다. 만약 운영진이 이들 주류회원층의 관점을 거부한다면 그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힐 것이며, 이 상황에서 평회원들은(설령 운영진의 정책이 그들에게 이익이 된다 해도) 운영진에게 그다지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 손해가 확실한 사람들은 반드시 반발하지만 수혜자들이 반드시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영진이 자칫 그들을 잘못 다루면 이것은 운영진의 권위에 심대한 손상을 입힐 것이다.

운영진이 회원과 커뮤니티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는것은 그들에게 권한이 없어서가 아니라 권한을 사용하는 법을 알지 못해서이다. 이는 운영진이 많이 배웠느냐, 지적이냐, 혹은 학벌이 뛰어나느냐, 성실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이 지적인것은 그들에 대한 반론을 막는 역할을 하며, 학벌이 뛰어난것은 타인의 개성을 죽이며, 성실함은 잘못된 방향으로의 가속역할을 한다. 이는 운영진이 지적이라서 생기는 문제도 아니며 성실해서 생기는 문제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들이 다스리는 원리治道를 알지 못할 뿐이며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뿐이다. 이 원리를 안다면 쌓인 지식과 성실함은 올바름을 보충하고 강화할 훌륭한 요소로 재탄생할 것이다.

사실 커뮤니티라는거 자체가 10년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고 그 폐해가 드러나기 시작한것 또한 굉장히 근래의 일(PC통신 시절에도 이러한 폐해는 있었으나 그 규모 등을 생각할 때 많은 사람이 신경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이니 커뮤니티 운영의 철학이나 방법론 등이 벌써 등장한다면 그게 더 놀랄 일이긴 하지만 그것이 커뮤니티 운영진들을 위한 변명이 될 만한 것은 아니라 본다.

누차 이야기하지만 최고운영자는 권한을 지니지 않는것이 아니다. 그저 그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는 법을 모르고 있거나, 혹은 해당 권한의 행사를 막는 '비공식적informal'인 압력이 존재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한편 모든 커뮤니티가 이러한 단계를 명확하게 거치는것은 아니다. 커뮤니티가 다루는 키워드(주제)에 따라서 모이는 회원의 성향들도 다르므로 특히 다음과 같은 경우라면 유의할 필요가 있다.

1. 사회적이고 가치판단적인 이슈가 다루어지는 커뮤니티.(정치, 사회, 역사, 경제)
2. 컨텐츠의 질이 매우 중요한 키워드를 다루는 커뮤니티.(정치, 역사)
3. 간부회원들의 질이 낮을 가능성이 높은 커뮤니티 (애니, 코믹스, 게임)

한편 다음과 같은 경우라면 이러한 병목현상은 거의 없거나 미약하다고 볼 수 있다.

1. 이공계 커뮤니티 (수학, 기계, 공업, 물리, 화학 등)
2. 중년을 위한 인생의 휴식과도 같은(?) 커뮤니티 (시, 사랑, 문학, 음악 등)
3. 커뮤니케이션의 발생이 매우 어려운 커뮤니티 (자격증, 시험, 고시, 유학, 외국어 등)


④ 후기 커뮤니티

이 커뮤니티의 진행 양상은 ③의 상황이 어떻게 타개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첫번째로, ③에서 있었던 강압적 상황이 애초에 거의 발생하지 않거나, 혹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법을 찾아내는 분기이다. 공식적 규칙과 비공식적 분위기가 상호 조화를 이루며 균형적인 커뮤니티로 발전하는 가장 좋은 스토리이며, 이러한 상황은 자주 있지는 않으나 가끔은 존재한다.

두번째 경우는 강압적인 분위기와,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해당 커뮤니티가 다루는 소재가 굉장히 인기있거나, 기타 다른 요인으로 인하여 커뮤니티의 크기는 지속적으로 커지고 활발함도 유지되는 상황이다. 이처럼 기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계속하여 커뮤니티가 발전할 시 무분별하고도 무질서한 분위기는 만성화된 질병처럼 커뮤니티에 달라붙는다.

세번째 경우는 이러한 상황이 커뮤니티의 발전을 왜곡하거나 방해하여 활발함이 죽어버리고 쇠퇴하는 현상이다. 운영진이 웬만큼 강력한 금제를 가한다 해도, ③의 단계에서 이미 컨텐츠가 확보되어있으므로 그러한 컨텐츠를 찾아오는 회원은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는 매우 드무나 역시 가끔은 존재한다. 특히 대체할 만한 커뮤니티가 있다면 회원들이 그쪽으로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네번째 경우는 간부회원 사이의 내분(!)이 발발하는 현상이다. 세번째와 구별되는것은, 커뮤니티가 어느 정도 크기가 있어야하며 동시에 최고운영자의 권위가 완벽하게 부정되어야 한다는 전제이다. 두가지 다른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내분이 만성화 되는 현상이다. 간부회원 사이의 싸움은 매우 자주 발생하지만 커뮤니티를 무너뜨릴 정도로 진행되지는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이것이 당연한 현상처럼 되어 갈등상황과 평시상황 사이의 차이가 미묘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오래갈수록 커뮤니티에는 매우 무리가 오게 되며 심한 경우에는 커뮤니티 자체의 쇠퇴로 이어진다. 두번째 경우는 갈등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다가 (그러나 물밑으로 분위기로 형성되기는 한다) 갑자기 폭발하는 경우인데, 이것은 보통 어느 한(쪽의) 간부진(들)이 물러나며 해소된다. 이러한 상황들은 드무나 간혹 존재하긴 한다.




⑤ 말기-쇠퇴기 커뮤니티

커뮤니티들은 영원하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쇠퇴하거나 파괴되는데, 이러한 경우는 주로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발생한다.

1. 게시공간의 파괴.
예를 들어 서버를 대준 기업이 더 이상의 지원을 중단한다거나 하는 경우, 혹은 카페가 저작권 문제에 걸린다거나 하여서 커뮤니티 자체가 파쇄되는 상황이다. 대신 서버를 지원할 사이트가 생긴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커뮤니티 자체는 파쇄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런 경우 보통 대체할 만한 사이트가 생기면서 그쪽으로 회원들이 피난하는 경우가 많다.

2. 커뮤니티가 다루는 소재의 고갈
소재가 고갈된다 함은, 예를 들어 게임을 주제로 다루는 커뮤니티라면 해당 게임의 신작이 발매되지 않게 되거나, 아니면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거의 없어지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의 방지를 위해서는 비슷한 부류의 소재를 계속하여 발견, 다루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3. 회원간 분란으로 인한 내부갈등 파멸
이는 보다 상위에서 다루었지만 이러한 경우도 있긴하다. 이것 또한 강제적인 파쇄에 해당하므로 계기만 주면 흩어진 회원을 어느 정도 모아 재기할 수 있다. 물론 타격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것으로 커뮤니티의 각 단계를 고찰해보았다. 이러한 각 상황들은 자주 혼재되어있으며, 다른 발전상황이 겹쳐서 등장하기도 하고 또한 기타 복잡한 여러가지 요인이 존재함을 유념해주기 바란다. 사실 어떠한 상황을 분류하려고 하는것은 상황에 대한 인식의 언어화이기 때문에 인식 자체를 왜곡시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