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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 Zimbardo, 1969

사회과학/심리학
사람들은 스스로 주변 환경에 영향을 끼치거나 이를 바꾸기도 하지만 반대로 환경에 맞추어 유연성있게 대처하기도 한다. 특히 밀그램의 실험은 권위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분명히 보여준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다만 후속실험에서도 밝혀졌듯이, 권위있는 연구자를 두명으로 늘이고 둘 사이에 논쟁을 일으키면 스스로의 판단으로 참여자는 전기충격을 가하는 것을 중지했다. 이처럼 권위와 명령이 없을때 상당수의 사람은 직접 올바른 판단에 따라서 타인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실 권위와 명령의 중요도가 높은 군대 등의 조직에 족한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들의 사회생활에서 명령으로 인해 타인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거나 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물론 이런 경우도 있긴 하다 )

일반적인 경우 국가와 학교, 그리고 가정은 아이들이 태어날때부터 시작해서 도덕과 윤리를 가르친다. 전쟁 등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당연히 살인은 처벌받고 그 외 타인에게 해를 끼칠 만한 일은 금지되거나 최소한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는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르며 왜 악행에 빠지는가?

지금부터 여러분이 볼 실험은 이와 관련이 있다. 감옥환경의 실험과 저서 루시퍼 이펙트(Lucifer Effect)로도 유명한 스탠포드 대학의 짐바르도(Philip George Zimbardo)교수는 특정한 상황 하에서는 명령과 권위가 없이도 '자발적으로 비윤리적 행위를 자행할 수 있음'을 테스트할 것이다.

이론적 가설

도둑질은 일반적으로 금지된다. 그 이유는 그것이 해당 재화를 소유한 자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소유권이 불명확하거나 방치되었다면 당연하게도 해당 재화를 손에 넣거나 최소한 보호하려 하진 않을 것이다.따라서 만약 길에 놓여진 차에 방치되었다고 판단할 만한 정보를 흘린다면 사람들은 이에 대한 침해를 시작할 것이다.

실험방법

짐바르도는 다소 치안이 허술한 골목에 보닛을 열은 두 대의 자동차를 두었다. 요소는 모두 통제되었으며 양쪽 차의 보존 상태는 동일했다. 그리고 이제 한쪽 차의 창문을 살짝 깨서 변수에 변화를 주었다. 실험자들은 앞으로 1주일간 양쪽 차에 일어날 변화를 관찰할 것이다.

실험결과

창문을 그대로 두고 보닛만 열어둔 자동차는 1주일 뒤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창문이 깨진 자동차에는 분명한 변화가 일어났다. 불과 10분만에 배터리가 없어졌으며 타이어가 사라졌다. 이후 낙서, 투기, 파괴가 연이어 벌어졌으며 실험이 종료된 1주일 후에는 고철이 되어 폐기처분 직전의 상태로 전락했다.

이것은 유리창이 깨진 것을 통해서 해당 자동차가 보다 허술한 관리 하에 놓여있다고 행인들이 추정하게 만들었다고 추측된다. 처음엔 보다 눈에 띄지 않는 손상이 가해졌으나 해당 차가 버려진 상태라는것을 확인시키는 증거(낙서, 파괴흔적)가 늘어갈수록 차에 가해지는 행위도 더욱 심해졌다.

이를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의 법칙이라고 한다.

후속실험

네덜란드 그로닝겐 대학원생 케스 카이제르가 이끈 연구팀은 주간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 최근호에 실린 논문을 통해 주위 환경이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 깨진 유리창 이론을 뒷받침했다.

연구팀은 6가지 상황을 놓고 주변 환경이 깨끗한 경우와 벽에 낙서가 된 지저분한 경우에 사람들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했다.

첫번째로 쓰레기통이 설치되지 않은 좁은 골목길에서 사람들이 자전거 손잡이에 부착된 광고전단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관찰할 결과, 골목길 벽이 단일 색으로 깔끔하게 칠해진 공간에서는 광고전단이 길바닥에 버려진 비율이 33%였다.

반면, 골목길 벽에 낙서가 된 공간에서는 광고전단 10장 가운데 7장(69%)이 길바닥에 버려졌음을 연구팀은 확인했다. 골목길 벽에는 "낙서금지"라는 경고문구가 쓰여 있었으며 이러한 경고문에도 불구하고 낙서가 된 곳에서는 보통 사람들도 준법의식이 약해졌음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또 주위가 말끔하게 정돈된 곳에 설치된 '깨끗한' 우체통과 쓰레기가 널브러진 곳에 설치된 '깨끗한' 우체통, 지저분한 환경 속의 '낙서투성이' 우체통을 각각 준비한 후, 이곳에 각각 5유로 지폐가 든 편지봉투를 걸쳐놓았다. 편지봉투는 수신자 주소가 적히는 부위의 투명비닐을 통해 봉투 안에 5유로 지폐가 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행인들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이를 집어갈 수 있었다.

관찰 결과, 편지봉투를 집어간 비율이 깨끗한 주위 환경의 깨끗한 우체통의 경우는 13%였으나 지저분한 환경의 깨끗한 우체통에서는 25%로 높아졌고 지저분한 환경의 낙서투성이 우체통에서는 27%로 더 높아졌다. 연구팀은 6가지 상황 관찰에서 모두 유사한 패턴이 나타났다면서 깨진 유리창 이론은 현실적으로 타당성을 갖는다고 결론내렸다.

사회적용

라토가스 대학의 겔링 교수는 이 ‘깨진 유리창 이론’에 근거하여 뉴욕 시의 지하철 흉악 범죄를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낙서를 철저하게 지우는 것을 제안했다. 낙서가 방치되어 있는 상태는 창문이 깨져있는 자동차와 같은 상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교통국의 데빗 간 국장은 겔링 교수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치안 회복을 목표로 지하철 치안 붕괴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낙서를 철저하게 청소하는 방침을 내세웠다.

범죄를 줄이기 위해 낙서를 지운다는 놀랄만한 제안에 대해서 교통국의 직원들은 우선 범죄 단속부터 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낙서가 범죄율의 상승에 크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에겐 그다지 와닿지 않는 이야기였는 모양이다. 직원들은 범죄를 막기 위해선 단속을 강화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간 국장은 낙서를 지우는 것을 철저하게 행하는 방침을 단행했고, 지하철의 차량 기지에 교통국의 직원이 투입되어 무려 6000대에 달하는 차량의 낙서를 지우는 작업이 수행되었다. 낙서가 얼마나 많았던 지, 지하철 낙서 지우기 프로젝트를 개시한 지 5년이나 지난, 1998년, 드디어 모든 낙서 지우기가 완료되었다. 낙서 지우기를 하고 나서 뉴욕시의 지하철 치안은 어떻게 되었을까? 믿기 어렵겠지만, 그때까지 계속해서 증가하던 지하철에서의 흉악 범죄 발생률이 낙서 지우기를 시행하고 나서부터 완만하게 되었고, 2년 후부터는 중 범죄 건수가 감소하기 시작하였으며, 94년에는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뉴욕의 지하철 중 범죄 사건은 놀랍게도75%나 급감했던 것이다.

그 후, 1994년 뉴욕 시장에 취임한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은 지하철에서 성과를 올린 범죄 억제 대책을 뉴욕시 경찰에 도입했다. 낙서를 지우고, 보행자의 신호 무시나 빈 캔을 아무데나 버리기 등 경범죄의 단속을 철저하게 계속한 것이다. 그 결과, 범죄 발생 건수가 급격히 감소했고, 마침내 범죄 도시의 오명을 불식시키는데 성공했다.

철학적 질문?

사회과학/철학
필자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선생이 교실에서 학생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어떤 무인도에서 나무가 쓰러졌다. 그런데 아무도 그걸 모르고 알지 못한다면 그 나무가 쓰러진걸 쓰러졌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학생들이 열심히 철학적인 토론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 답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쓰러졌다'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定義 : definition)했는지가 곧 답이다. 요컨데 '그것을 인지하는 자가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를 '쓰러졌다'라는 기표(記標) 안에 정보로서 삽입하면 되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일반적인 경우 '쓰러졌다'라는 단어는 상황의 모든 정보를 내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두고 쓸모없는 토론이 오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시에 이에 대해 미리 정의하면 의미없는 토론이 없을 것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에 그것을 정의하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이것을 필요로 할 일이 그다지 없기 때문이다. 심술굳은 선생이나 멍청한 철학자가 쓸데없는 질문을 던지지만 않는다면 일상생활에서 인지되지 않은 상황에 대해 말할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언어란건 정보의 전달이 목적이며 가급적 간결할수록 좋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의미를 무한히 확장해나가다간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생각을 하는 법을 키우자는것은 좋다. 그러나 생각을 해도 무작정 아무렇게나 한다고 해서 훈련이 되는게 아니다. 생각에도 절차가 있고 방법이 있다. 아무런 의미없이 토론하게 하는것으로 사고가 유연해질거라 보는것은 아무렇게나 운동하면 몸이 강해질거라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말도 안되는 일이다.

최첨단 법제

사회과학
여기 어떤 망치가 있다고 하자. 이 망치는 머리와 자루가 모두 옥玉으로 되어있으며 뛰어난 장인이 긴 시간을 두어 조각했다. 그 결과 빛을 비추면 몸에서 광채가 나며 그 예술성으로 인해 보는 사람마다 찬탄을 아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망치로 못을 박으려 하면 오히려 망치가 손상되었으며 강하게 힘을 주면 망치가 부숴졌다. 때문에 이 망치로는 못을 박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망치는 과연 망치로서 제대로 됬다고 할 수 있을까?

李노동 "국내 비정규직 보호제도는 최첨단"(종합)

필자는 위 기사를 읽으면서 다소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글은 현실을 무시하고 엉뚱한 것을 기준 삼아서 정책을 합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법이건 간에, 그 용도는 반드시 사회와 세속에 적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세계 어느 지역 어느 시대의 법조문이라도 그 자체를 읽는것만으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혹은 시대를 뛰어넘는 최첨단인지 오히려 반동적인지는 알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법은 현실에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시대의 현실을 모르고서는 법조문 자체를 읽는것만으로 그것이 악법인지를 판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 예시했던 망치는 예술품으로서는 훌륭할 지 모르나 공구로서는 그렇지 못했다. 법조문이 얼마나 예술적으로 만들어지고 이상적으로 계획되었건 간에, 현실에 작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떤 창조적인 예술가가 망치의 형상을 따서 예술품을 만들어도 그것은 그 예술가 개인에 속한다. 때문에 그것이 맘에 안든다면 새 망치를 하나 사면 그만이다. 그러나 한 국가에 법은 오로지 하나이다. 법은 오로지 법으로서 작용해야하지 사상적 유희로 사용할 수 없다. 법은 만드는 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법의 본래 목적(本)이다.

프로그래머들의 고전인 "프로그래밍 심리학"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실려있다.

                 *                  *                  *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향하던 프로그래머는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다시 의뢰 회사로 돌아왔다. 프로젝트 팀들과 진행자들 앞에서 그는 그 새로운 프로그래밍 구조에 대해 설명했다. 기존 프로젝트 팀의 반응은 냉랭했다. 한 프로그래머가 물었다.

"당신의 프로그램은 얼마나 빠르게 일을 처리합니까?"
"10초에 한 장 정도일 것입니다."

물어본 프로그래머가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은 초당 한 장을 처리할 수 있다며 새 프로그램을 비웃자, 새 프로그램을 들고온 프로그래머가 답했다.

"하지만 당신이 만든 프로그램은 작동하지 않잖아요. 작동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면 나는 초당 10장을 처리하는 프로그램도 만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