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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갈등을 특정공간에 묶기는 어려운가.

사회과학/인터넷
이전에 필자는 여러 커뮤니티들에서 카페 내 갈등의 해결에 지쳐 마침내 아예 자리를 펴주고 '이 곳에서 싸우라'는 취지의 콜로세움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 운영진들이 그런 콜로세움을 세울 때 바란 것은, 그곳에서 모든 갈등이 해결되고, 설령 해결되지 않는다 해도 좋으니 커뮤니티에만 악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란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갈등은 결코 그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언제나 뛰쳐나왔으며 커뮤니티를 흔들고 운영진을 당황케 하였다. 기실 이는 당연한 결과로, 갈등이 그 안에 머무르리라 생각하는것은 매우 편의적 발상이었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갈등이 자연적으로 해결되는 일은 거의 없다. 갈등은 양측 중 한측이 파멸하거나, 혹은 갈등의 요소를 없애지 않고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갈등을 적절하게 조율하거나 필요에 따라서는 강압적으로 해결하는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양측은 곧 자신들의 자원을 총동원하기 시작할 것이며 이것에는 논설, 변론, 친분, 끈기, 호소 등의 수많은 기법이 사용된다.

이러한 일들은 매우 지치는 것이며,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갈등상황에 익숙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기에 그들은 갈등이 견디기 힘든 수준이 되었을 때, 공적인 운영진을 찾아서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거나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다른 회원들을 끌여들여서 지지를 부탁하며 대중에 호소한다. 이런 과정에서 운영진이 끼어들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해도, 회원들은 그들의 호소를 보고 갈등을 읽은 뒤 이에 대해 저마다 옳고 그름을 말하거나 갈등으로 인한 불편한 심정을 투덜거리며 커뮤니티 내에 이를 확산시키기 마련이다.

요컨데 갈등상황에 처한 회원들은 갈등의 해결을 위해서(또는 자신이 올바름을 증명하기 위해서) 언제나 주변으로부터 가능한 지지를 얻으려고 하면서 갈등에 대한 정보를 뿌리고, 상대도 이에 대응하여 새로이 해석된 말을 내놓는다. 그리고 회원들이 이에 관심을 가지며 몰려드는 것을 운영진이 차단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갈등에 대한 통제도 또한 실패하는 것이다.

결국 운영진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콜로세움내의 갈등은 결코 그 안에만 머물지 않게 된다. 만약 이를 해결하고 싶다면 콜로세움을 만들 것이 아니라 아예 주변으로부터 차단된 검은 상자를 만들고 그 안에 둘을 집어넣는 건데, 사실 이렇게까지 하느니 차라리 운영진은 애초부터 분쟁에 대한 해결 절차를 만들고 스스로 거기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다.

기실 운영진의 역할이 곧 갈등의 조율이고 자원의 배분과 정책의 선택인데, 이를 그만두는 것은 운영진으로서 본분을 어기는 일이다. 콜로세움은 결국 운영진이 더 이상 갈등을 처리하고자 할 의지가 상실되었음을 표시한 것일 뿐이다.